[MBN스타 이다원 기자] “지금은 솔직히 이런 코미디 하기 힘들죠. 아! 심도 있는 정치 풍자 코미디가 가능한 시즌이 있긴 있죠. 대선 땐 뭘 해도 용인돼요. 현직 대통령 레임덕 기간이기도 하니까요. 재밌죠?”
국내 정치 풍자 코미디가 사라졌다는 아쉬움은 시청자만 큰 게 아니었다. 오히려 현장에서 뛰는 제작자, 개그맨, 관계자 등 종사자들의 갈증은 상상 이상이었다. 익명을 전제로 이들의 솔직한 얘기를 들어봤다.
개그관계자 A씨는 코미디의 최고는 풍자와 해학이라며 이에 제약을 두는 현실에 아쉬움을 표했다.
“촌철살인의 코미디를 만드는 게 쉽지 않지만, 지금은 그것보다 정치풍자 코미디를 못하는 여러 상황이 있잖아요? 대통령 레임덕 시즌엔 할 수 있지만 지금은 언론 통제가 심한 편이라서요. 풍자 코미디의 근간이 ‘디스’인데, 이를 정재계 인사들이 웃음으로 승화한다고 받아들이기 보다는 희화화한다고 생각하니 참아내지 못하는 게 아닐까 싶어요.”
↑ 디자인=이주영 |
개그맨 B씨도 국내 미약한 풍자 인식에 대해 말했다.
“제일 좋은 정치 풍자는 당사자들이 직접 나와서 연기할 대 이뤄지거든요. 아무리 심각한 사안이라도 이런 풍자 코미디는 시청자들이 웃으며 이해할 수도 있고요. 하지만 우린 이걸 ‘희화화’라고 생각하잖아요? 왜 웃음으로 승화한 거라 생각하지 못하는 걸까요. 뉴스를 보다가 사람들이 가려운 곳을 코미디로 긁어줘야 하는데 이게 안 되잖아요.”
또 다른 개그맨 C씨는 여러 이유에서 정치적 사안을 건들기 힘들다고 털어놨다.
“정치적 사안을 ‘확실하게 안다’는 건 정말 힘든 일이예요. 양측의 입장이 있으니까요. 그만큼 ‘팩트’를 이해하는 게 어려우니 ‘상식적으로 말이 안 된다’는 사안들만 건드는 거죠.”
이미 1990년 프랑스 ‘르팽 사건’에선 풍자 코미디는 예술 표현 행위라 팩트만을 전달하는 기사의 객관성을 요구할 수 없다고 판시했지만, 국내 실정은 아직도 선진 수준으론 발전하지 못한 모양새다. 이런 해외 코미디 수준과 비교에 부러움을 표한 관계자도 있었다.
“약자가 강자를 대상으로 한 풍자 코미디가 재미, 희열, 통쾌함을 준 건 이미 오래된 일이죠. 영화 ‘왕의 남자’나 ‘광해, 왕이 된 남자’ 등을 봐도 광대가 임금을 상대로 풍자극을 펼치는 장면이 나오잖아요? 그런데 지금 우리는 나쁜 걸 알면서도 힘 있는 사람을 왜 건드리지 못하는 것일까 너무나도 아쉽습니다. 코미디가 약자의 편에 설 때 가장 큰 박수를 받는 게 아닌가요?”
외압설 논란이 터질 때마다 제작진이 “시청률 저조로 코너를 폐지했다”는 해명을 내놓는 것을 지적하기도 했다.
“가끔 그런 얘기 하시죠. 다른 프로그램은 정치 풍자를 안 해도 시청률이 잘 나오는데 왜 굳이 시청률도 나오지 않는 그런 코미디를 하느냐. 하지만 이건 시청률과 관계없이 하는 거예요. 만약 시청률만 중요했다면 차라리 아이돌을 섭외해서 콩트를 꾸몄겠죠. 정치인의 행동이 코미디보다 더 웃기다면 코미디가 이를 대신 표현해줘야 하는 것 아닐까요.”
입을 모아 지금의 현실에 대해 목소리를 높였지만, 앞으로 미래에 대해선 대부분 고개를 가로저었다. 특히 A씨는 풍자 수위가 높지 않았던 KBS2 ‘개그콘서트-민상토론’이 방송통신심의위원회로부터 제재를 받은 것을 두고 절망했다며 미래에 대한 바람까지도 덧붙였다.
“지금까지 ‘공감’이라는 코드가 코미디 프로그램을 주도했다면, 이젠 또 다른 코드를 찾아야 할 때예요. 만약 누군가 이런 코드를 제대로 잡는다면 향후 5년간 리드하는 프로그램으로 성장할 수 있겠죠. 하지만 분명한 건 정치 풍자 코미디가 다시 부활하려면 자신에 대한 비평을 여유롭게 받아들이는 풍토가 조성돼야만 한다는 겁니다. 또한 개그맨이나 코미디 장르를 하대하는 사회적 인식도 개선돼야 해요. 그렇다면 오바마를 디스하는 개그맨과 오바마가 악수하는 장면처럼 우리나라에서도 제대로 된 풍자 개그가 나오지 않겠어요?”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