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어머나, 세상에. 저 인터뷰 할 만큼 대단한 사람 아닌데요? 꺄핥핥핥.” 전화 너머로 들리는 황재근의 목소리는 TV 속 자막과 다를 바 없었다. 디자이너 신분으로 예능계에서 빛을 발하고 있는 황재근은 줄곧 자신을 가리켜 ‘대단치 않은 사람’이라 표현했다. 하지만 황재근만큼 독특한 캐릭터가 또 있을까. 꼭 그를 만나서 이야기를 들어보고 싶었다.
최근 서울시 마포구 한 카페에서 만난 황재근은 요즘 바쁘지 않느냐는 질문에 “생각만큼 바쁘진 않다”고 웃음을 터뜨렸다. 하지만 그는 MBC ‘복면가왕’의 복면을 만드는 일 외에도 특강이나 다른 방송 일정 등으로 누구보다 바쁜 나날을 보내고 있었다. 특히 지난 달 MBC ‘나 혼자 산다’에 출연한 후로는 ‘용기’ ‘열정’과 같은 키워드로 진행되는 특강에 초대가 된단다.
![]() |
↑ 사진=곽혜미 기자 |
“사실 ‘나 혼자 산다’에 제 모습이 그렇게 불쌍하게 나올지 몰랐다.(웃음) 하지만 그 안의 제 모습이 진짜인 걸. 그 상황을 한탄하거나 저를 불행하게 여기거나 그러진 않는다. 전에는 ‘이렇게 안 좋은 일만 올까’ 싶을 때도 있었지만 지나고 보니 그런 생각들이 다 시간 낭비인 것 같더라. 저는 그저 저의 모습을 보여줬을 뿐인데 감사하게도 그런 부분을 많은 분들이 ‘크게’ 봐주셨다.”
‘나 혼자 산다’에서 황재근은 작은 집에서 소박하게 사는 자신의 일상을 과감하게 공개했다. 방송이 나간 다음 날 황재근이란 이름은 실시간 검색어에 하루종일 올라가 있었고, 많은 시청자들이 황재근에 응원을 보냈다. 소감을 물으니 “그 날 정말 펑펑 울어서 전화를 받기도 힘들 정도였다. 감사한 마음에 눈물 밖에 안 나더라”고 그 날을 회상했다.
“처음에 ‘나 혼자 산다’ 섭외 제의를 받았을 땐 이렇게까지 다 보여줄 줄 몰랐다.(웃음) 정말 다 보여주니 찍을 때 어렵더라. 가끔은 짜증도 냈는데 죄송하네.(웃음) 당시 제작진이 제게 ‘황재근 씨가 모든 사람들에 치열한 삶, 애환, 좋은 삶과 나쁜 삶 다 보여줘야 시청자가 공감할 수 있다’고 설득했었는데 처음엔 안 믿었다. 그런데 그게 진짜였다. 저의 ‘진짜 모습’이 공감 포인트가 됐다. 그래서 방송 나가고 나서 제작진에 고맙다고 인사했다.”
![]() |
↑ 사진=곽혜미 기자 |
사실 디자이너라는 직업상 자신의 소박한 모습을 전부 공개하는 건 어려운 결정이었을지 모른다. 하지만 이를 들은 황재근은 “사람들이 저보러 ‘금수저’인줄 알았다고 하던데 왜 그렇게 생각하는지 모를 정도”라며 “꾸밀 필요 뭐 있나. 전 원래 이런 사람”이라고 말했다.
“물론 디자이너 중에서도 정말 풍족한 사람들이 많다. 하지만 저는 그런 위치가 아니다. ‘화려한 저’는 진실이 아닌 걸. 직업이 화려해보일지 몰라도 속은 그렇지 않다. 그럴 주제도 못 되고, 그리 거창한 사람도 아니다. 그건 맞지 않는 옷이다. 저는 ‘생계형’이 맞는 사람이다. 생계형인 게 흉도 아니고, 저도 이게 솔직하고 편한데 왜 굳이 꾸며야 할까. 제가 그 ‘풍족한 분들과 똑같이 할 필요는 없다. 무리할 필요도 없고. 전 제 방식이 좋고, 이게 편하다.”
그의 솔직한 모습에 많은 시청자들이 긍정적인 반응을 보였지만 일각에서는 각종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하는 그의 모습을 곱지 않게 보기도 한다. 디자이너 세계에서도 ‘너무 튀는’ 행보일지도 모른다. 황재근은 이를 듣자마자 “전 원래 개척자처럼 살았다”며 웃음을 터뜨렸다. 그리고는 이내 진지한 얼굴로 “전 연예인이 아니다”라고 입을 열었다.
“저를 연예인으로 보는 시선이 있다는 건 안다. 하지만 그건 바꿀 수 없고, 제가 처신을 잘 하는 것 밖에는 없다. 평소에도 ‘제가 연예인이 아니라서’라는 말을 많이 한다. 그간 출연했던 프로그램도 그나마 제 진솔한 모습을 보여줄 수 있는 프로들이었고, 제가 웃겨야 하거나 꾸며야 하는 분위기도 아니었다. 물론 방송 일이 경제적이나 위치적으로 도움을 주긴 하지만, 전 방송을 못하게 되더라도 상관없다. 디자이너라는 본래의 길이 있으니까.”
![]() |
↑ 사진=곽혜미 기자 |
황재근은 ‘나 혼자 산다’에서 공개한 것처럼 ‘넉넉한 형편’은 결코 아니다. 브랜드를 론칭하기 위해 돈을 쏟아부었기 때문이라고 설명한 그는 “방송 일로 돈을 벌어도 어차피 다 제 브랜드 해외진출 할 때 쓰게 될 것”이라며 미소를 지었다. 종일 브랜드 생각을 하는 황재근이 이처럼 방송에 출연하게 된 이유는 ‘호기심’이 가장 컸다.
“‘라스’나 ‘세바퀴’ ‘나 혼자 산다’는 게스트성이어서 부담은 없었다. 출연한 후에야 ‘예능인들이 갈고 닦아야 나갈 수 있는 무서운 곳’이라는 걸 알았지만.(웃음) 방송에 출연한 계기? 전 일단 해보자는 주의다. 일단 도전하면 후회하더라도 배우는 것이 있다. 전엔 그렇게 안 해서 잃어버렸던 기회가 많았다. 늘 새로운 걸 좋아하는데, 방송도 똑같다. 호기심이 가장 컸고, 디자이너로서의 역량을 보여줄 수 있다는 것도 좋았다”
그럼에도 아직까지 방송에 적응이 된 건 아니라고 황재근은 말했다. 방송 카메라가 돌아가면 온전히 자신이 책임져야 한다는 걸 느낀 후부터는 어떻게 중심을 잡아야 할지 마음이 무겁다고 했다. 자문을 구할 사람이 없다는 것도 큰 어려움이었다. 그럼에도 그는 ‘복면가왕’의 복면을 만들고 방송 활동을 이어가겠다는 뜻을 밝혔다.
“사실 방송하는 건 힘들다. 전 미친 듯이 일하다가 택시 잡아타서 거기서 메이크업 하고 헐레벌떡 달려간다. 방송이 끝난 후엔 작업실로 다시 와서 일한다. 힘들지만 ‘복면가왕’은 특히 프로에 애정이 있고, 제가 ‘복면’을 만드는 유일무이한 디자이너가 되고 싶기에 계속 할 예정이다. 방송도 비슷하다. 디자인처럼 제가 하고 싶어서 하는 거다. 누군가는 ‘왜 그렇게 힘들게 사냐’고 어리석다 여길지 몰라도 계속 이렇게 살고 싶다.”
![]() |
↑ 사진=곽혜미 기자 |
현재 옷, 복면 디자인과 방송 활동을 병행하고 있는 황재근은 자신의 ‘방향성’에 대한 확신이 있었다. 자신에 대한 ‘프라이드’와 ‘명예’를 중요시했고, 디자이너로서의 가치관에 대해선 한치의 양보 없이 지켜내야 할 부분이라고 말하는 황재근의 목소리는 꽤나 단호했다. 자신만의 ‘길’에 대한 자부심이 있는 황재근. 그렇다면 ‘디자이너’로서의 남은 꿈은 무엇일까.
“많은 콘텐츠, 다양한 분야에 도전하고 싶다. 최종적으로는 종합 라이프 스타일을 디자인하는 디자이너가 되고 싶다. 패션 디자이너이기 때문에 어떤 소재, 어떤 분야를 만나더라도 그걸 ‘패셔너블하게’ 만들고 싶다. 다양한 방송에 출연하는 것도 많은 콘텐츠에 도전해보고 싶은 마음에서 비롯된 것이다. 현재 옷도 꾸준히 하고 있고, 복면도 영역확장의 일종이라고 할 수 있다.”
TV 속에서 비춰지는 ‘웃긴 예능인’ 정도로 생각했던 것이 무색할 만큼, 황재근은 자신의 가치관과 열정에서만큼은 한없이 진지한 사람이었고, 디자이너라는 이름에 누구보다 자부심을 가지고 있는 사람이었다. 그런 흔들리지 않는 그이기에 더욱 대중은 황재근을 응원하고 있을지 모른다. 늘 ‘초심’을 잃지 않는 디자이너 황재근의 미래가 기대되는 이유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
디자인=이주영