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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수란 |
사랑의 양면성 사이로 어쩌면 영원히 지워지지 않을 빛이 스며든다. 그 빛은 아무리 짧은 순간이었어도 가장 뜨겁고 치열하게 서로를 사랑했던 시간이었으리라.
인생에서 누군가를 그토록 사랑했던 시간들이 결코 흔하지 않기에, 천천히 희미해질지언정 영원히 꺼지지 않는 빛으로 남을 시간들.
여기 그 시간을 닮은 여자 가수가 있다. 요즘 재개봉해서 큰 화제를 모으고 있는 미셸 공드리 감독의 영화 '이터널 선샤인'에서 조엘 (짐 캐리)이 사랑한 여자 클레멘타인(케이트 윈슬렛)을 닮은 초록색 머리의 가수다.
수란이다.
최근 발표한 그의 노래 '콜링 인 러브(Calling in Love feat.빈지노)'는 사랑하는 상대를 찾아 즐겁게 헤매다니는 여자의 모습이 보인다.
여자는 "하늘에 뜬 별빛은 우리 둘의 미래의 어디쯤과 같고, 그 옆에 달은 마치 피자처럼 몇 조각 없을 때도 있다. 그 조각들을 모아 맞출 땐 꼭 너와 함께 있을 때처럼 기분 좋아져. 나에겐 너가 세상이야"라고 사랑으로 충만한 순간을 묘사한다.
햇살이 쏟아지는듯 상큼한 신디사이저를 기반으로 한 역동성 있는 사운드 속, 들뜬 수란의 보컬은 행복의 포만감을 전달한다.
이 곡과 함께 수록된 '예아(Yeah ah feat.얀키)'는 연인의 밤을 이야기한다.
시작하는 연인에게 밤은 얼마나 소중한가. 밤의 정적 가운데 오직 빛나는 건 두 사람의 눈빛과 마음. 연인은 온 마음과 온 몸을 다해 서로를 아끼고 어루만지며 화려한 불꽃을 꽃피운다.
'시간이 멈췄지 불 붙은 fire inside us 이건 단하나 널위한 나의 verse 차가웠던 내 몸에 퍼지는 virus Nobody can’t love like we do'
연인의 손길에 차가운 세상에 지친 여자에겐 비로소 온기가 흐르고 상대를 향한 사랑의 시가 저절로 지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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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이터널 선샤인" 속 장면 갈무리 |
사랑의 시작이자 잊지 못할 인연의 탄생. 어쩌면 길게 보면 불행의 예고. 혹은 재회의 가능성. 아니면 무덤덤하거나 가슴 아플 추억. 모든 가능성을 품고 있는 첫 만남을 미셸 공드리 감독은 초록색으로 표현했다.
(뮤직비디오 감독 출신인 미셸 공드리 감독은 영상 미학의 대가답게 색의 의미에 심혈을 기울였다. 클레멘타인의 헤어컬러는 조엘과의 관계 변화에 따라 초록(만남의 시작)-레드(연애 시기)-블루(헤어짐)로 변한다.)
세상에 우리만큼 사랑하는 연인도 없다는 확신의 시간이 흐르고나면 언젠가 조엘과 클레멘타인처럼 서로 싫증이 나고 권태로워질 것이다. 서로의 일상이 더이상 궁금하지도 않고 상대의 간섭에 짜증까지 나고, 다른 사람의 매력이 눈에 들어오게 되는 순간 해가 지고 밤이 찾아오듯 이별을 맞는다.
두 사람의 이별 결심은 서로 다른 시간에 찾아온다는 것이 최고의 비극이다. 어쩌면 허무할정도로 '쿨' 하게 끝날수도 있지만 최악의 경우 서로의 밑바닥까지 확인해야할만큼 싸우고 싸우다 헤어지게 될 수도 있다.
얼마나 아프고 지긋지긋했으면 클레멘타인은 기억을 지워버리려 했을까. 기억을 지워주는 회사로 찾아가 조엘과의 시간을 모두 지워버린 클레멘타인을 따라 똑같이 기억을 지우려했던 조엘.
그럼에도 조엘이 끝내 이 기억만은 지우고싶지 않았던 시간. 그 시간들이 바로 수란의 노래 속, 순도 100%의 반짝이는 사랑의 시간들일 것이다.
마침내 눈부신 시간의 기억의 힘으로 두 연인은 임창정의 '또 다시 사랑'을 실천이라도 하듯 미치도록 아프지만 찰나의 쾌락을 선사하는 주사기같은 사랑을 다시 시작하게 된다. 바로 그 초록빛깔의 순간들 때문에.
프라이머리의 2-2 앨범에서 여러 곡들을 공동 프로듀싱하고, 곡의 사운드를 디자인한 실력파 싱어송라이터 수란. 빈지노가 격하게 아끼는 보컬이자 작곡가. 김예림, 브라운아이드걸스의 노래를 만든 감각적 작곡가.
수란은 이번 싱글 앨범에서 더 쉬운 대중적인 곡으로 승부할 수 있었다. 하지만 결코 쉽지 않고 흔하지도 않은 독특한 지점에서 스스로 빛나는 두 곡을 발표했다.
그동안 마니아들의 사랑을 받아온 수란은 이제 수면 위로 올라와 한국 음악계에 지울 수 없는 초록빛깔의 시간을 만들 준비를 마쳤다.
내년 이맘때면 자이언티나 혁오처럼 지금 '핫'한 동네 카페들에서 그의 음악이 흐르고, 수란의 송라이팅과 노랫말을 사랑하는 대중들이 눈에 띠게 많아질 테다. 그리고 그건 다 '이터널 선샤인'을 떠올리게 만든 초록색 헤어 컬러로 시작된 나비효과가 아닐까?. 신의 한 수다.
※ 필자는 가요·팝·공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