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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래하는 음유시인, 루시드폴이 돌아왔다. 2년에 한 번씩 정규 앨범을 내겠다던 스스로에 대한 약속이 이제는 팬과 대중을 향한 '공약'처럼 돼 버린 탓에 얼마간의 부담감 혹은 스트레스도 있었을 법 한데, 그럼에도 루시드폴 특유의 담담한 톤은 여전하다.
지난 15일 발매된 루시드폴 정규 7집 '누군가를 위한,'은 그의 지난 2년간의 기록이다. 무엇보다 전작들에 비해 사이즈가 커진 점이 눈에 띈다. CD 시대가 저물어간 지도 벌써 10년 가까이 됐는데, 스케일을 더 키웠다. 15곡이 빼곡하게 채워진 앨범에는, 무려 루시드폴이 직접 쓴 동화까지 함께 수록됐다.
앨범은 2014년 정착한, 제주도에서 출발했다. 40년 가까이 이어진 도시 생활을 정리하고 훌쩍 연고도 없는 섬마을로 향한 그는 "떠날 땐 미련 없이 훌쩍 떠났다"고 말했다.
"예전부터 막연하게 생각은 하고 있었어요. 굳이 제주는 아니더라도 태어나서 계속 도시에서만 살았는데, 시간이 지나면서 나도 몰랏던 나에 대해 알게 되면서 막연하게 애기했던 걸 실행에 옮기게 됐죠. 당시 제 피앙세(현 아내)도 도시보다 시골을 훨씬 좋아하는 친구였고, 짐이 많은 것도 아이 교육 걱정도 없으니 미련 없이 떠났죠."
서울을 떠나기 이틀 전 장만한 중고차에 단촐한 짐을 집어넣고, 완도를 거쳐 배를 타고 도착한 곳은 '귤'의 고향, 제주도였다. 그 곳에서 그는 감성 뮤지션, 싱어송라이터, 음유시인 등의 타이틀을 모두 내려놓고 농부가 됐다.
"시골 생활이 처음인데 좋은 분들을 많이 알게 되고, 이웃의 도움도 많이 받았어요. 거기서 만나 사귀게 된 사람들이 농사 짓는 친구들이라 자연스럽게 농사일을 하게 됐고요. 어쩌다 시작한 일당이 점점 규모가 커지다 보니 음악에 지장이 생길까 싶어 밭농사는 빠지기로 했는데, 다른 형님이 선뜻 귤밭 350평을 빌려주셔서 귤 농사를 하게 됐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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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 중순이었으려나요. 데모 작업을 하러 기타를 들고 사무실에 왔다가 모처럼 사무실 사람들과 회식을 했어요. 희열이형도 오랜만에 봤죠. 앨범 이야기를 하면서 프로모션에 대한 고민을 했는데, 500개 정도 택배 한정판을 할까 했었는데, 희열이형이 홈쇼핑에 연결해보라고 하시더라고요. 옆에 있던 사람들이 대박이라고(웃음). 다들 술 취한 상태에서 좋다고 박수치며 신나서 사무실로 돌아왔던 기억이 나요."
실제 홈쇼핑 방송이 연결되기까지는 우여곡절이 많았다. "7~8개 홈쇼핑 회사에서 다 거절했다. 실제 매출로 연결이 되지 않기 때문이었을 것"이라는 게 루시드폴의 설명이다. 다행히 최종적으로 CJ 오쇼핑에서 이들의 비밀병기에 손을 들어줬고, 결과는 '대박'이었다.
그는 "귤은 너무 고마운 존재다. 1년 동안 열심히 뭔가 하긴 하지만 실제로 수확하러 가면 마냥 고맙고 미안하다. 내가 한 건 아무 것도 없는데, 너무 많이 달린다. 고마운 마음 뿐"이라고 말했다.
한정판을 통해 전달된 귤 중엔 루시드폴 아닌, 특별한 이들의 손길도 담겼다. 유일한 제주도 연예인 친구, 이상순-이효리 부부 말이다. 루시드폴은 "이상순이 이번 한정판 앨범 홈쇼핑 작업을 할 때, 귤을 따주고 갔다. (해 질 무렵인) 다섯 시까지 해주고 갔다"며 웃어 보였다.
그와 같은 삶의 변화가 음악에 준 영향이 있을 법도 한데, 루시드폴은 고개를 저으며 "그대로인 것 같다"고 말했다.
루시드폴은 "나는 스스로 죽기 전까지 노래를 하는 사람이라고 생각하지만, 사람에게 언제 어떤 일이 생길 지 모르는 것이니 내가 정말 사랑하는 것들, 사랑하는 사람들을 많이 노래하고 남겨야겠다는 생각을 했다'며 "그런 마음으로 계속 노래를 만들어왔다"고 설명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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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아노 연주곡 '집까지 무사히'를 시작으로 세월호 침몰사고 희생자를 떠올리게 하는 '4월의 춤', '아직, 있다' 등을 비롯해 앨범과 함께 제작된 동화 '푸른 연못' OST 차원에서 수록한 '별은 반짝임으로 말하죠' 등 총 15곡이 수록됐다.
그는 "음악적으로 내가 할 수 있는 모든 것을 최상으로 담아보고 싶었고, 욕심을 많이 부린 앨범"이라며 "손에 쥐고 느끼실 수 있는 앨범을 드리고 싶었다"고 밝혔다. "음반 구성, 기획, 사운드, 편곡적인 면에서 6집보다 성장했다고 생각한다"는 그는 "그런 의미에서 한 사람으로서, 프로듀서로서 성장했다 생각한다"고 자평했다.
타이틀곡 '아직, 있다'는 '꽃다운 나이에 세상을 떠난 영혼이 부르는 노래'라는 게 공식적인 곡 설명이지만, 소속사 관계자가 "제주도 수학여행 이야기를 담고 싶었다"던 뮤직비디오 감독의 기획의도를 귀띔했을 정도로, 세월호 침몰 사고로 천사가 된 학생들이 친구들에게 보내는 편지 같은 곡이다.
'따뜻한 집으로 나 대신 돌아가줘', '친구야 무너지지 말고 살아내주렴' 등의 가사는 살아남은 자들에 대한 희생자들의 당부로 들린다. 하지만 루시드폴은 그저 "들으시는 분들이 노래를 듣고 드는 느낌이 맞을 것"이라고만 설명할 뿐이었다.
그는 "곡을 만들어놓고 나서, 이런 현실에 있는 어떤 일로 모티브 받았다는 설명은 안 하는 게 좋겠다는 생각을 했었다"며 "각자 자신만의 방법으로 해석해주신다면 만든 사람 입장에서 고마울 것 같다"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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