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세상에서 제일 행복한 건 ‘사랑하는 일’이죠.”
흰머리 지긋한 SBS 최태욱 아나운서의 입에선 의외의 말이 흘러나왔다. 연애를 쉰 지 꽤 오래됐다는 그는 혼자 사는 외로움을 털어놓으며 진솔한 인간 냄새를 풍겼다. 입사 27년이 넘어가는 베테랑이었지만, 대화 곳곳에서 자신을 내려놓는 겸손함도 빛났다.
지난해 별이 된 배우 김자옥의 동생으로도 유명한 김태욱 아나운서의 속깊은 얘기를 들어봤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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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 키워드 총평 : 김태욱, 로맨티시스트의 새로운 사랑 기대할게요
키워드1. 누나 김자옥, 그리고 1주기
지난달 고 김자옥의 1주기가 지났다. 1년이 훌쩍 지났다고 하니 새삼 빠른 시간을 느꼈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사실 누나가 암 발병했을 때 이미 마음의 대비를 하고 있었어요. 우리 부모가 60대에 일찍 돌아가셨거든요. 자옥 누나는 엄마보다도 더 일찍 간 셈이죠. 누나는 뭔가 아름다운 이별을 위한 준비를 해야겠다고 생각했던 것 같아요. 항암 치료 이후 재발병되기 전 6년이란 시간을 정말 열심히 살아왔거든요. 그러다가 죽기 한 달 전쯤이었나. 갑자기 누나가 병원에서 날 찾는다는 연락을 받았어요. 원래 평소엔 연락도 잘 안하는 사람인데, 그때 병원으로 가면서 ‘뭔가 왔구나’ 싶었어요. 누나가 날 보고 말을 횡설수설하다가도 괜찮은 척 씩 웃는데 나도 모르게 누나 손을 잡았어요. 그러니 조용하게 '자주와'라고 속삭이더라고요. 와, 집에 가는데 어찌나 눈물이 나오던지 집에 가지도 못하겠더라고요. 전 죽음을 아름답게 보는 사람이라, 누나도 휴식을 취하러 가장 좋은 곳으로 가는 거라고 생각했어요.”
그 뒤로 단 한 번도 울지 않았다고 담담하게 말했다. 그러면서도 한편으론 누나를 사랑하고 오래 기억하는 이들을 보면서 인간적으로 그의 삶이 부럽게 느껴지기도 했다고 솔직하게 털어놨다.
“누나 빈소에 톱스타들도 조문오고 정말 많은 사람들이 와서 그리워하는데, ‘행복한 인생을 보낸 사람이구나’ 싶더라고요. 평생을 연기, 방송밖에 모르던 사람인데 죽고 나니 사람들이 슬퍼하고 그리워하는 사람이 된 거 아녜요? 어떻게 보면 최고의 인생을 산 거예요. 그런 면에서 누나의 삶은 아름다웠다고 말할 수 있는 거죠. 그래서 지금도 누나를 생각하면 마음이 참 괜찮아요.”
키워드2. 남다른 예술家의 피
고 김자옥 뿐만 아니라 김태욱의 형제자매들은 저마다 예술적 끼를 지닌 집안이었다.
“아버지가 과거 조병화 시인 추천을 받아 모더니즘, 풍자시를 많이 쓸 정도로 글쓰기에 조예가 깊었어요. 수필도 쓰고, 음악 선생도 하시고. 또 영화 쪽 일도 하시면서 평생을 예술에 몸담으셨죠. 그래서인지 우리 칠남매가 아버지의 기운을 다들 조금씩 나눠가진 것 같아요. 큰 누나는 피아노를 쳤고, 둘째 누나는 지금도 캐나다에서 난타를 하고 있으니까요. 셋째누나(김자옥)는 아예 그 기운을 따라갔고요. 저 역시도 우리나라에 없는 세계 영화잡지들을 보면서 자랐어요. 타고난 재질이 있는 건 아니지만 흐르다보니 이렇게 아나운서 길까지 걸어온 것 같아요.”
키워드3. 의사 대신 아나운서
그가 유년시절 꿈꿨던 건 아나운서가 아닌 의사였다. 그래서인지 또 다른 길에 대한 미련도 남아있던 터다.
“아직도 미련이 남죠. 가까이서 사람을 챙기는 걸 좋아하고 굉장히 행복해하는 성격인데 의사라는 직업을 가졌다면 정말 보람을 갖고 했을 것 같거든요. 그렇다고 후회하는 건 아니에요. 아나운서란 직업은 제게 가장 잘할 수 있는 건 아니었지만 행복했던 일이거든요. 이만큼 버텨온 것도 정말 다행이고요. 새내기 땐 적응을 못하다가 30대 중후반부터 일이 재밌어지고 희한하게 뉴스, 교양 쪽에서 절 많이 찾아 일도 많이 했죠. 그렇게 바쁘게 보내면서 아나운서에게 중요한 건 억양, 외모, 표정 등이 아니라 짧은 순간 방송에 전적으로 몰입하는 것이라고 깨달았죠. 그러니 보는 이에게도 괜찮은 평가를 받게 되고, 방송을 정말 재밌게 했던 것 같아요.”
키워드4. ‘백발’의 아이콘
김태욱 아나운서는 ‘백발’의 아이콘이다. 기자의 말에 “그래요?”라며 피식 웃었다.
“머리가 일찍 하얘졌어요. 이십대부터 희끗희끗해졌는데 보기엔 재밌더라고요. 흰머리 아저씨 느낌이 따뜻하게 나서 좋았어요. 뉴스 진행이 마음에 걸려 염색을 하긴 했지만, 어느 순간부터 그것도 귀찮고 싫더라고요. 그래서 내버려뒀죠. 흰머리로 뉴스를 진행하기 시작했더니 당시 사장님이 난리가 났어요. 앵커가 성의가 없다고. 하하. ‘내가 연예인도 아니고 왜 염색을 해야하지’ 싶어서 혼자 절충한 게 머리를 톤 다운해 회색으로 만들었죠. 그러다보니 지금의 백발에 익숙해진 거예요. 요즘은 너저분하지 않고 깨끗해 보이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키워드5. 갑작스러운 공황장애
오랜 아나운서 생활 도중에 갑작스럽게 공황장애가 왔다. 가장 좋아하던 라디오 뉴스도 진행하기가 두려웠다고. 당시를 떠올리는 그는 머리를 내저었다.
“40대까진 날아갈 듯이 방송했는데, 50줄 넘어가면서 이상한 긴장감이 생겼어요. 공황장애 증상까지 나타났죠. 신기하게 다른 방송은 괜찮았는데 라디오 뉴스를 진행할 때만 그 증상이 나타나서 정말 신기한 경험들을 겪었던 것 같아요. 마이크 앞에 앉으면 숨도 못 쉴 것 같았고 못 걸을 것 같았거든요. 한번은 병원에 갔더니 의사가 ‘잘 왔다. 너무 참고 살아서 터진 것’이라고 진단하더라고요. 스트레스가 쌓이면서 한 분야에서 터져나온 거라고요. 다행히 지금은 많이 호전됐어요. 스스로도 극복하는 중이고요.”
키워드6. ‘사랑’이 그립다
‘인간’ 김태욱을 가장 행복하게하는 건 뭐냐고 하니 ‘사랑’이라는 답이 돌아왔다.
“연애를 참 좋아했어요. 40대 초중반까지는 이어졌는데 그 이후 혼자 지내니 정말 할 일이 없던데요? 그 기간이 꽤 길어져서 이젠 외로움을 즐기는 수준이고요. 하하. 인생 전체를 놓고 제일 기억에 남는 순간이 언제인지 떠올리면 결국 ‘사랑했던 순간’이예요. 매번 열심히 사랑하고 상대를 나의 아기처럼 소중히 여겼지만 제가 여자에게 미래를 줄 수 있는 사람은 아니었던 거 같아요. 지금은 그 기억으로 살고 있고요.”
또 하나, ‘친구’가 자신이 가진 복이라고 했다. 사람 속에서 행복을 찾는 가치관이 엿보였다.
“남들보다 제가 많이 가진 건 ‘좋은 친구’예요. 초등학교 때부터 대학교 친구까지 한 그룹으로 엮여서 서로 순수하게 위해주고 위로해주거든요. 이렇게 좋은 친구를 많이 갖고 있다는 건 누구도 가지지 못한 복 아니겠어요?”
[김태욱은 누구?] 1960년생으로 1988년 CBS 공채 아나운서로 방송가에 첫 발을 내디뎠다. 1991년 SBS 제1기 공채 아나운서로 입사해 ‘생방송 투데이’ ‘SBS 뉴스와 생활경제’ 등 다수의 프로그램 진행을 맡아왔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