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유지혜 기자] 심의와 재미의 사이, 그 아슬아슬한 균형을 위해 진땀을 흘리는 각종 예능프로그램. 도대체 어디까지 ‘공익’을 추구하고, 어디서부터 ‘웃음’을 뽑아내야 할까.
지난 4일 방송통신심의위원회는 MBC ‘마이 리틀 텔레비전’(이하 ‘마리텔’)이 방송심의에 관한 규정 중 방송언어 관련 조항 위반했다며 제작진 의견진술을 받았다. ‘마리텔’이 위반한 조항은 제51조(방송언어)로, ‘방송은 바른말을 사용하여 국민의 바른 언어생활에 이바지해야 한다’와 ‘방송은 바른 언어생활을 해치는 억양, 어조, 비속어, 은어, 저속한 조어 및 욕설 등을 사용하여서는 안 된다. 다만 프로그램의 특성이나 내용 전개 또는 구성상 불가피한 경우에는 예외로 한다’(제 3항)고 명시하고 있다.
이 조항을 위반한 사례는 다음과 같다. 음식을 조리하는 소리에 ‘소리 쥬금(죽음)’, 겨드랑이 땀을 놀리는 말로 ‘겨터파크 임시개장’ 등의 용어였다. 최근 온라인에서 많이 사용하는 ‘돌직구’ ‘케미’ ‘심쿵’ 등도 위반 대상이 됐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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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마이리틀텔레비전 방송 캡처 |
‘마리텔’은 채팅을 기반으로 시청자와 방송 진행자의 소통을 그려내는 프로그램이다. ‘채팅’이 중심인 프로그램에서 ‘채팅용어’를 사용하지 말라고 전천후 통제를 한 셈이다. 물론 욕설이나 지나친 신조어는 걸러내야 하는 게 당연하지만, 지금은 언론에서도 자주 볼 수 있는 ‘심쿵’ 같은 단어가 위반 사항에 포함됐다는 것은 언뜻 이해가 가지 않는다.
이처럼 각종 예능프로그램들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방송언어 규제를 두고 고민을 거듭하고 있다. 시청자에 친숙한 줄임말이나 신조어를 사용해야만 하는 경우가 있거나 MC가 무심코 한 말이 전부 방송통신심의위원회의 ‘레이더망’에 걸리니 말이다. 규제의 작은 불씨라도 차단하기 위해 예능프로그램들은 다양한 노력을 하고 있지만 쉽지 않다.
특히 한 단어로 재미가 갈리는 개그 프로그램들은 고충이 심하다. ‘말장난’이 코너의 핵심이 되는 경우도 많은데, 외모 비하나 차별적인 언어라는 이유로 ‘저질언어’로 지적 받기 때문이다.
지난 9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발표한 ‘코미디 프로그램 저질 언어 사용 실태 조사’에 따르면, 8월23일 방송된 KBS2 ‘개그콘서트’에서 김지민이 “제가 매너 빼면 시체입니다”라는 유민상의 말에 “매너 빼면 살이나 빼지”라고 말하는 부분은 ‘외모 비하’ 발언으로 저질 언어에 포함됐다. 이 대사가 웃음 포인트인데, 지양을 요구하는 ‘저질 언어’에 포함돼 있으니 해당 프로그램은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실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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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사진=개그콘서트 방송 캡처 |
라디오 프로그램들도 비슷하다. 지난 11월 방송통신심의위원회가 발표한 ‘청소년 청취자 대상 라디오 프로그램 언어 실태 조사’에 따르면, SBS ‘케이윌의 대단한 라디오’에서 케이윌이 “음색깡패”라는 단어를 썼다며 이를 ‘비속하거나 거친 표현’으로 규정했다. KBS ‘유인나의 볼륨을 높여요’에서 유인나가 “바보”라는 단어를 썼다가 이 또한 ‘비속하거나 거친 표현’으로 분류됐다.
언뜻 보면 마치 70~80년대 규제라고 착각할 만 하지만, 위의 사례는 모두 2015년 하반기에 방송통신심의위원회에서 명시한 사례들이다. 저들이 법적인 제재를 받거나 하진 않았지만 일단 ‘불량한 언어 실태’에 포함됐다는 것만으로도 시청자의 눈엔 다소 시대와 동떨어진 처사라고 느껴지기 쉽다.
물론 대중에 영향을 미치는 방송이라는 점에서 더욱 주의해야 한다는 의견은 맞다. 하지만 심의규정의 지나친 규정이 시청자가 용납할 수 있는 폭과 많은 차이가 난다는 점에서는 부정할 수 없다. ‘마리텔’과 같은 특수한 포맷의 프로그램에서도 규정이 똑같이 적용된다는 점도 시청자를 납득시키기엔 부족해보인다.
시청자의 눈높이에도, 프로그램을 만드는 제작진의 입장에서 언어 관련 심의 규정은 시대에 맞지 않는 모양새다. 이 때문에 웃음과 규제 사이에서 쓸데없는 힘을 낭비해야 하는 예능 프로그램 제작진의 불만도 점점 높아지고 있다. 적어도, ‘마리텔’에서 채팅용어를 아예 쓰지 말라고 규제하는 것은 신선한 프로그램의 의도를 왜곡하는 수준의 규제로 비춰지기 쉽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