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이다원 기자] 크리스마스가 코앞이다. 거리를 가득 채우던 캐럴이 예전보다 많이 줄었지만 예전과 달리 아이돌 가수들의 시즌송이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서양 노래로만 여겨지던 캐럴, 한국엔 언제부터 뿌리를 내렸고 어떻게 변해온 것일까.
국내 최초 캐럴을 살펴보려면 시간을 한참 거슬러 올라가야 한다. ‘사의 찬미’로 유명한 윤심덕이 1926년 8월 니토(Nitto) 레코드를 통해 ‘싼타크로쓰’를 발표한 게 한국 대중 가수가 부른 첫 캐럴이었다.
그가 부른 ‘파우스트 노엘’은 지난 2013년 디지털로 복원돼 또 한 번 화제가 됐다. ‘퍼스트 노엘’이란 캐럴을 번안한 곡으로 동생 윤성덕의 피아노 연주가 함께 실린 이 노래는, 녹음하던 당시인 1926년 8월 윤심덕이 연인인 극작가 김우진과 현해탄에 투신해 더욱 슬프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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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디자인=이주영 |
이후 캐럴이 대중화된 것은 광복 이후부터다. 미군에 의해 외국 팝가수들의 캐럴 음반이 유통되기 시작했고, 1950년대엔 가수 한복남이 첫 국내산 캐럴을 발표했다. 또한 인기가수 송민도가 10인치 캐럴 음반을 내는가 하면, 현인, 김용만, 김정애 등도 캐럴 음반 작업에 뛰어들었다. 당시 최고 인기 장르였던 트로트풍으로 만드는 게 유행이었다고.
1960년대엔 한국전쟁 피해를 복구하고 나라를 다시 일으키는 데에 온국민이 앞장서면서 밝고 경쾌한 캐럴이 인기를 얻기 시작했다. 또한 한때 대한민국을 주름잡았던 코믹 캐럴의 씨앗도 이때 움트게 된다. 인기 희극인 서영춘과 갑순을순의 ‘징글벨’은 큰 인기를 얻으며 코믹 캐럴의 가능성을 열었다. 이후 심형래를 비롯한 수많은 개그맨들의 캐럴 음반이 쏟아져 나왔다.
1970년대엔 김추자, 정훈희, 이장희, 양희은, 조영남, 김세환, 패티킴, 조용필, 이미자 등 당대 최고 가수들이 캐럴 작업에 합류했다. 포크 문화가 꽃피웠던 시대라 포크 가수들의 캐럴은 이후 CM송이나 여러 방송에 삽입될 정도로 큰 인기를 누렸다.
1980년대와 90년대에는 국내 캐럴의 전성기였다. 1984년 발표한 ‘심형래 코믹캐럴’은 “달릴까 말까 달릴까 말까”라는 유행어까지 남기며 크게 히트쳤다. 이 인기는 ‘쓰리랑 부부’ 김한국-김미화의 ‘쓰리랑부부 메리크리스마스’(1988)로 이어졌다.
또한 어린이가 부른 캐럴의 인기도 무시하지 못했다. 1970넌대 초 ‘검은 고양이 네로’를 부른 여섯 살 박혜령의 ‘징글벨’이 유행하는가 하면 아역배우들 이름값이 높아지면서 ‘똑순이’ 김민희가 부른 ‘똑순이 캐럴’(1981)도 ‘대박’ 앨범 대열에 함께했다.
영원할 것 같았던 캐럴의 인기는 1997년 IMF 외환위기를 겪으면서 바닥을 쳤다. 간간이 개그맨들이나 가수들이 캐럴 음반을 발표해 반짝 인기를 얻었지만, 예전처럼 오랫동안 사랑받는 명곡은 더 이상 탄생하지 못했다.
이런 이유에 대해서는 설이 분분하다. 2009년 개정된 저작권법 상 캐럴 시장이 위축됐다는 의견도 있고, 일각에서는 정부의 생활소음 규제 때문에 캐럴을 크게 틀지 못한 탓이라고 분석하기도 했다.
이다원 기자 edaone@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