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드라마 꿀팁]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이 꿈꾼 조선과 정도전이 꿈꾼 조선은 어떻게 달랐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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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유아인 정도전/사진=SBS |
이번주 본격적인 이방원과 정도전의 대결이 시작됐습니다. 사실 이 둘은 '조선'이라는 같은 꿈을 꿨지만 추구하는 미래는 달랐습니다. 이방원은 강력한 '왕권 중심'의 조선을 꿈꾼데 반해 정도전은 '사대부의 나라' 조선을 꿈꿨기 때문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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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사진=SBS |
실리를 주장하는 듯한 정도전은 사실 성리학자였습니다.
젊은 시절 정도전은 '맹자'를 탐독하면서 유교적 왕도정치를 실현하기 위해서는 '역성혁명'도 가능하다는 명분을 얻었으며 고려왕조를 전복하고 민본 중심의 유교적 이상국가를 실현하겠다는 결심을 더욱 굳힐 수 있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그는 '한 명의 왕'이 아닌 '현명한 사대부들'이 다스리는 나라를 꿈꿨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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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정몽주/사진=SBS |
건국 초기 이방원이 없었으면 '조선'은 없었을지도 모릅니다. 이방원이 온건파의 반격을 받아 혁명파가 패망 직전의 위기에 놓인 상황에서 온건파의 중심인물인 '정몽주'를 제거해 혁명파 인물들이 다시 정권을 장악할 수 있었기 때문입니다. 뿐만 아니라 공양왕 4년에는 정도전, 조준 등과 이성계를 왕위에 올리기 위해 공양왕을 폐위시키고 옥새를 빼앗아 이를 들고 이성계를 찾아가 혁명을 완수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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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정도전/사진=SBS |
이렇게 공고했던 둘의 관계는 역성혁명이 끝난 뒤 깨어지기 시작합니다. 건국 직후 책정된 개국공신 명단에 이방원의 이름이 없었고 이방원은 자신의 정치적 입지가 약해진다는 생각에 이같은 조치를 반기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또 훗날 '왕자의 난'으로 이어지는 방석의 세자책봉은 이방원과 정도전의 관계를 극으로 치닫게 만들었습니다. 특히 정도전이 원했던 '사병혁파' 역시 이방원의 지지기반을 위협했고 결국 정도전은 1차 왕자의 난에 정치적 생명을 다하게 됩니다.
이방원이 원했던 중앙집권체제, 즉 왕권 중심의 정치는 그가 권력을 잡은 직후부터 그 기틀이 다져지기 시작됩니다. 정종 2년에는 자신이 반대했던 사병혁파를 단행하고 의정부 서사제 대신 6조 직계제를 시행합니다. 6조 직계제란 의정부를 거치치 않은 채 바로 국왕에게 재가를 받아 처리하도록 하는 방식을 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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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육룡이 나르샤 이방원 유아인/사진=SBS |
큰 틀에서 본다면 이방원과 정도전이 추구했던 '조선'은
[MBN 뉴스센터 선효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