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방송진단] ‘화려한 유혹’ 정진영, 덕분에 참 설렜었습니다

[MBN스타 유지혜 기자] 70대 노인에 이렇게 설렐 수 있었던 걸까. 소지섭도, 송중기도 포기하게 만들었던 정진영. 그가 만든 강석현이 있었기에 지금의 ‘화려한 유혹’이 있었다.

지난 8일 오후 방송된 MBC 월화드라마 ‘화려한 유혹’에서는 갑작스럽게 죽음을 맞이하는 강석현(정진영 분)과 죽은 줄로만 알았던 신은수의 남편(이재윤 분)이 살아 돌아오는 모습이 그려졌다.

앞서 강석현은 자신의 비자금 문제와 딸 강일주(차예련 분)가 신은수(최강희 분)의 아이 미래를 밀어 코마 상태에 빠뜨린 사실을 기자회견을 통해 폭로하고 죗값을 치르기 위해 준비를 마쳤다. 하지만 이는 강일주가 기자들 앞에서 강석현의 치매 사실을 폭로하며 수포로 돌아갔다.

↑ 사진=화려한 유혹 방송 캡처

이에 충격을 받고 심장을 움켜쥐고 쓰러진 강석현은 신은수에 “그동안 많이 힘들었다. 갈 때가 됐다”는 말을 남기며 세상을 떠나고 말았다. 진형우(주상욱 분)는 갑작스러운 강석현의 죽음에 의문을 품고 조사를 해나갔다. 담당 주치의가 권수명(김창완 분)의 사주를 받고 심장 제세동기가 작동하지 못하도록 했을 것이란 의심을 하게된 것.

강일주도 자신의 시아버지인 권수명이 아버지를 죽인 배후일 수 있다는 사실을 진형우에 전해 듣고 충격을 받은 모습이었다. 권수명은 신은수를 찾아가 자신을 캐고 다니는 진형우를 멈추지 않으면 희생자가 끝나지 않을 것이라 협박했고, 신은수는 권수명의 음모로 강석현을 죽인 혐의로 검찰에 소환되기까지 했다.

마지막에는 죽은 줄 알았던 신은수의 남편이 권수명의 부름을 받고 나타나는 장면이 전파를 타면서 반전을 안겼다. 권수명은 45회 만에 진정한 ‘악의 축’ 면모를 드러냈고, 진형우와 신은수, 어쩌면 아버지의 죽음으로 충격을 받은 강일주까지 합세해 권수명과 마지막 전쟁에 나설 것을 예고했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반전은 45회 동안 ‘화려한 유혹’을 끌어왔던 인물인 강석현이 갑작스레 사망한 것이다. 강석현은 자신의 첫사랑과 닮은 신은수를 사랑하게 되고, 코마 상태에 빠진 그의 딸을 돌보고, 외부로부터 신은수를 지켜주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진형우마저 신은수에 등을 돌렸을 때, 혹은 신은수가 강일주를 밀어냈을 때에도 신은수 곁을 지킨 사람이 바로 강석현이었다.

그런 강석현은 시청자로부터 ‘할배파탈’이라는 별명을 얻으며 큰 인기를 끌었다. ‘화려한 유혹’의 경쟁작에 소지섭, 송중기 등 젊은 배우들이 등장할 때에도 강석현을 연기하는 정진영을 보기 위해 ‘화려한 유혹’을 보게 됐다는 시청자들도 상당했다. 신은수를 향한 강석현의 ‘끝사랑’은 보는 이마저 짠해질 정도로 애절했다.

강석현은 마지막까지도 멋있는 사람이었다. 그는 진형우에 신은수를 행복하게 해달라는 메시지를 보냈고, 신은수에게는 “자네가 내 옆에 있었던 순간들이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날들이었다”고 고백하는 절절한 편지를 남겼다. 신은수는 결국 강석현을 떠올리며 오열을 하고 말았다. 기억이 흐릿해졌던 강석현의 마지막 바람은 다름 아닌 기억이 허락하는 마지막 순간까지 신은수가 곁에 있어줬으면 하는 거였다.

강인하고 냉철했지만 자신이 사랑한 여인 신은수에게만은 한없이 약해진 강석현이란 인물은 ‘화려한 유혹’의 풍성함을 조성하는 장본인이었다. 강석현은 로맨스의 주인공도 됐다가, 치열한 정치판의 승리자가 됐다가, 더러운 정치 공작의 앞잡이도 됐다가, 진형우와 대립하는 ‘악역’이 되기도 했다.

정진영은 다채로운 색깔을 가진 강석현이란 캐릭터가 빛날 수 있도록 내공을 발휘했다. 그는 ‘화려한 유혹’이 ‘막장’이 아닌 ‘치열한 심리극’이라는 걸 간파했고, 더욱 심리 묘사에 집중했다. 대사가 길지도 않고, 표정도 많지 않았던 강석현이 그토록 다양한 색깔을 가질 수 있었던 것도 정진영의 디테일한 연기 덕분에 가능했다.

긴 회차에도 ‘화려한 유혹’은 매회 새로운 반전들이 준비돼 있었고, 이 반전들은 하나로 얽혀 마침내 권수명이라는 거대한 악의 근원을 가리키는 이정표가 됐다. 그 반전들의 중심에는 언제나 강석현이 있었고, 강석현을 흔들림 없이 표현한 배우 정진영이 있었다. ‘할배파탈’ 정진영 덕분에, 45회라는 긴 시간이 지루하지 않을 수 있었던 셈이다.

유지혜 기자 yjh0304@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