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금빛나 기자] ‘믿고 보는 배우’까지는 아니더라도, 다수의 작품을 통해 뮤지컬 배우로서의 가능성을 인정받은 아이비는 새로운 도전을 시작했다. 지금까지 단 한 번도 시도해 보지 않았던 발랄하고 한 편의 동화와 같은 뮤지컬 ‘위키드’ 무대에 오르게 된 것이다.
‘위키드’에서 아이비가 연기하게 될 역할은 허영심 가득하지만 알고 보면 누구보다 순진무구한 금발소녀 글린다이다. “작품을 하면서 처음으로 드레스를 입고 발랄한 역할을 연기하게 됐다”고 좋아하는 아이비에게서 2000년대 중후반, 가요계를 호령하던 섹시가수의 모습을 찾아보기 힘들었다.
“‘위키드’를 하고 싶다는 생각을 한지 오래 안 됐어요. 내한공연도 두 번 봤고 라이선스 공연도 한 번 봤는데 그냥 ‘멋있다’고만 생각했죠. 그도 그럴 것이 무대 위에 배우들이 다들 최고의 배우들이잖아요. 하고 싶다는 생각이 들지 못할 정도로 완벽했기에 내가 저 무대에 오를 수 있을 것이라고는 상상도 못 했죠. 그런데 ‘유린타운’을 올리고 난 뒤, 많은 분들이 ‘위키드 해 보는 게 어떻겠냐’ 추천을 하시더라고요. 그래서 ‘한 번 도전해볼까’라는 용기가 생겼죠. 오디션을 보면서도 될 거라고 생각을 못했어요. 성악 발성도 많고 원체 어려운 역할이니…대신 열심히 준비했고, 붙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 마치 꿈만 같았죠. 일단 글린다를 통해서 많은 분들께 뮤지컬 배우로서 새로운 모습을 보여드릴 수 있을 것 같아 기대가 커고, 기대가 되는 만큼 나름 준비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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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비는 ‘위키드’ 오디션장에서 가장 눈에 띄는 지원자였다. 그도 그럴 것이 글린다를 떠올리게 하는 하얀색 드레스와 웨이브를 넣은 헤어스타일까지 준비해 오디션장에 등장한 것이다. 시선을 압도하는 비주얼로 단번에 해외 크레에이터들의 시선을 사로잡는데 성공한 아이비는 그동안 무대에서 쌓은 실력을 유감없이 발휘했고, 덕분에 만장일치의 선택을 받으며 글린다에 당당히 자신의 이름을 올리게 됐다.
“오디션 때 겉모습을 중요하게 생각해요. 심사위원들이 무대 위 모습을 상상할 수 있게끔. 글린다처럼 머리를 말고 하얀색 드레스를 입고 오디션장에 갔어요. 생각해보면 그 덕을 많이 봤던 것 같아요. 오디션에 합격한 요즘은 연습에 한창이에요. 글린다의 넘버들이 성악발성을 요구하는 부분이 많다보니 아무래도 노래에 가장 신경을 쓰고 있죠. 노래를 하기 위해서는 근육이 필요한데, 가요와 뮤지컬에서 사용하는 근육이 다르다보니 더욱 더 신경을 쓰고 있죠. 가곡도 많이 듣고, 유튜브 같은 것들도 찾아보면서 다른 세계 글린다도 참고해 보면서 공부하고 있어요.”
‘위키드’는 초록 피부 때문에 친구들에게 따돌림을 당하지만 자존심 강한 엘파바와, 자신이 세상의 중심이라고 여기는 글린다가 서로를 이해하며 우정을 그린 작품이다. 그레고리 맥과이어의 소설 ‘위키드: 사악한 서쪽 마녀의 삶과 시간들’을 원작으로 하는 ‘위키드’는 ‘오즈의 마법사’에서 못된 마녀로 알려진 서쪽 마녀 엘파바는 사실 정의롭고 의협심이 강한 인물이며, 착한 마녀 글린다는 꾸미기 좋아하고 주목 받아야만 직성이 풀리는 공주병 환자라는 발칙한 상상에서부터 출발한다.
“‘위키드’가 선한 내용이잖아요. 최대한 선한 기운을 잘 전달할 수 있도록 초반 캐릭터 설정을 잘 해야 할 것 같아요. 글린다에게 있어 엘파바는 제일 친한 친구고, 피터는 자신이 짝사랑 했던 상대잖아요. 그런데 이 둘이 서로 사랑을 한데요. 만약 제가 글린다를 오버해서 철없는 캐릭터로 그리게 된다면, 후반부로 갈수록 이들을 용서하고 두 사람을 도와주는 설정이 어색할 수도 있을 것 같아요. 우정을 통해 글린다가 변화되는 모습을 보여주기 위해서는 캐릭터 중심잡기가 가장 중요하지 않을까 싶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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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위키드’를 통해 허영심 많은 금발의 글린다를 연기하게 된 아이비, 실제 아이비는 엘파바와 글린다, 둘 사이 어느 쪽에 더 가까울까.
“가만히 있으면 새침한 깍쟁이처럼 보인다는 말을 많이 들어요. 그런데 내면에는 털털한 남자아이가 숨어 있어 있거든요. 아무리 글린다처럼 예쁘게 꾸미고 내숭을 떨어 봐도, 조금만 친해지면 저도 모르게 제 속에는 선머슴이 불쑥불쑥 튀어나와요.(웃음) 아무래도 제가 어렸을 때 시골에서 자랐는데, 맨날 넘어지고 까지고 산에서 뛰어놀던 것이 아직도 남아있어서 그런가 봐요.”
그녀의 말처럼 대화를 나누기 전 아이비의 첫 인상은 도도한 깍쟁이와 같이 차가워 보였다. 하지만 이 같은 인상도 잠시, 아이비와 이야기를 나누면 나눌수록 분위기는 부드러워졌고, 이내 인터뷰 현장은 ‘하하’거리는 웃음소리로 가득했다.
2010년 뮤지컬 ‘키스 미 케이트’로 뮤지컬에 데뷔한 아이비는 2012년 ‘시카고’에서 록시 하트를 연기하면서 본격적으로 뮤지컬의 맛에 빠져들었다. 2014년 ‘시카고’와 2015년 ‘유린타운’을 통해 원캐스팅 일정도 소화한 아이비에게는 이제 가수라는 호칭보다, 뮤지컬 배우라는 호칭이 더 잘 어울려 보인다. 뮤지컬 배우로 자리 잡게 된 아이비지만, 지금의 자리에 오기까지 과정은 결코 쉬운 일이 아니었다.
“뮤지컬을 시작했을 때 정말 많이 힘들었어요. 대중의 시선도 시선이지만 무대에 적응하는 것부터가 쉽지 않았죠. 가수가 무대에서 노래를 부를 때는 카메라도 따라와 주고 하다보니 움직임이 무척 자유로워요. 반면 뮤지컬 무대는 그런 것이 없죠. 정해진 움직임을 주고 받다보니 제 마음대로 움직일 수 없었고, 그런 부분에서 스트레스를 정말 많이 받았어요. 댄스가수 출신이니 춤을 잘 출 것이라는 기대 또한 부담스러웠죠. 뮤지컬에서는 우아하게 턴을 하는 동작도 많은데, 이게 제가 추던 댄스와는 또 다르더라고요. 뮤지컬 무대에서 저는 그냥 몸치였어요.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웃음) 게다가 제가 습득이 빠른 사람이 아니거든요. 그런 것들에 적응하기까지 시간이 걸렸고, 대사도 못 외고 안무 배우는 것도 오래 걸리다 보니 제게 있어 연습은 선택이 아닌 필수였어요. 제가 할 수 있는 것은 무조건 열심히 하는 것, 남들보다 10배는 더 노력하는 방법 외에는 정답이 없더라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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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대 위 아이비의 모습은 그녀의 노력이 만들어낸 산물이었다. “가수 출신이라는 꼬리표도 있는데다가, 엘리스 코스를 밟은 사람이 아니라는 것에 대한 부담도 있다”고 솔직하게 털어놓은 아이비는 “그래서 더 주눅이 들고, 두려움이 가면 갈수록 커져 가끔은 괴로울 때가 있다”고 덤덤하게 말했다.
“가사를 틀릴 때, 너무 작아져요. ‘시카고’를 그렇게 오래했음에도 가사를 틀릴 때가 있어요. 가사를 틀리게 되면, 다시 대본을 보고 계속 생각해요. 공연 때마다 가사실수를 했던 부분이 나를 짓누르면서 실수하지 말아야지 되뇌어요. 저는 한 번도 제가 잘났다는 생각이 든 적이 없어요. 실수가 용납이 안 되면, 그럴 때마다 저는 무척이나 낮아져요. 무대에서 자신감이 있는 배우들을 보면 부럽다는 생각이 절로 들어요.”
뮤지컬은 언제나 부담과 두려움이 함께 하지만 그럼에도 아이비는 끊임없이 무대 위에 오른다. ‘무엇이 무대에 오르게 하는가’에 대해 물었더니 “그럼에도 즐겁다. 이제는 뮤지컬이 제 삶의 원동력이 된 것 같다”고 답했다.
“공연에서 주는 즐거움이 커요. 내가 좋아하는 일을 할 수 있다 것, 그것이 제가 계속 무대에 오르는 이유죠. 연기와 노래하는 것이 재미있고 동료 배우들의 우정이라든지, 서로 도울 수 있는 것들이 뮤지컬의 매력인 것 같아요. 관객에게 받는 부분도 커요. 사람들이 원캐스팅으로 연기하는 것이 힘들지 않냐고 묻지만, 사실 무대 위에 오른다는 것은 채우고 오는 것이시 관객에게 주는 것이 아니더라. 뮤지컬을 하면서 삶이 매우 즐겁고 행복해요.”
필모그래피가 쌓이면 쌓일수록 뮤지컬에 대한 아이비의 애정은 점점 깊어져 갔다. 욕심을 버리고, 자신이 맡은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 싶다고 고백한 아이비, 현재 그녀가 바라는 꿈은 무엇일까.
“아이비하면 섹시가수 이미지가 강렬하게 남아 있잖아요. 제가 가수였다는 생각이 나지 않고 ‘배우처럼 보인다’는 이야기를 들으면 정말 행복할 것 같아요.”
금빛나 기자 shinebitna917@mkculture.com / 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