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MBN스타 김진선 기자] 이은결의 무대를 보면 ‘이은결은 완벽주의자’라는 생각이 들 것이다. 몇 천 명의 관객을 아우르면서도 여유가 있고, 남녀노소가 즐길 수 있는 시간을 만든다. 천진난만한 아이들에게는 잊지 못할 추억을, 성인들의 스트레스를 날려주고, 또 추억을 끄집어내게 하는 신통방통한 힘이 있다. 하지만 언제나 변수가 따르는 무대다. 헬리콥터가 나오고, 앵무새도 등장한다. 한 동작 한 동작에 있던 것이 사라지고 사라진 것이 다시 나타난다. 조금의 흐트러짐만 있어도 쉽사리 망가뜨려질 수 있는 아슬아슬함이 살아 숨쉬는 무대인 셈이다.
특히 최근 두산아트센터에서 내보인 ‘멜리에스 일루션’은 단 80석 앞에서 이뤄졌다. 넌버벌 퍼포먼스이기 때문에 소리에 더 집중할 수밖에 없고, 숨소리나 손짓, 표정에 의존할 수 밖에 없는 시간이다. 하지만 이은결은 여유가 넘친다. 장난을 치고 관객들과 쉴 새 없이 호흡한다. 정말 모든 변수를 따져, ‘완벽한 틀’을 만들어 놓았음이 틀림없었다.
![]() |
↑ 사진=이은결프로젝트 |
“저 완벽주의 아니에요(웃음). 구상단계에서 쓴 것을 무대에 올렸는데, 시간이 엉키고 그래서 공연을 만들어야 하는 숙제가 있었죠.”
이은결은 스스로 ‘완벽주의’가 아니라고 했지만, 사실 구상한 것을 무대로도 쉽지 않은 구성이었다. 이렇게 힘든 무대를 통해 말하고자 한 이은결의 진심은 무엇일까.
“마술을 보러온 사람이 아니라면, 제가 실험할 수 있는 무대. 대중에서 할 수 있는 공연으로는 볼 수 없어요. 작가주의를 해소하는 작품인 셈이죠. ‘멜리에스 일루션’을 하는 이유요? 안 하면 너무 허무하더라고요.”
“예전에는 여러 가지 마술을 해보고 싶었어요. 신기한 마술이나 화려한 것, 스케일도 크고 스토리도 제가 하고 싶은 얘기로요. 마술은 그 순간에는 재밌는데 끝나고 나면 허무한 적도 많아요. 마음이 휑해서 미친 듯이 먹고 그런 적도 있었죠. 단순하게. 인스턴트 식의 공연을 만드는 원리도 알겠고, 이러면 관객들이 좋아하겠다, 라는 식의 무대는 만들고 싶지 않았어요.”
이은결은 도전과 역행을 감행할 줄 알았고, 이를 무모하게 풀어내지도 않았다. 자신의 표현할 수 있는 언어로, 관객들과의 새로운 소통은 시작한 셈이다. 이는 ‘디 일루션’이나 ‘멜리에스 일루션’도 마찬가지였다. 이은결이 스스로를 ‘마술사’가 아닌 ‘일루셔니스트’라고 표현하는 것과 같은 맥락이다. 그는 작가로서, 표현함에 있어서 자신 만의 언어로 작품을 완성시킨 셈이다.
“‘디 일루션’은 제 생각과, 하고 싶은 얘기를 마술이라는 언어로 표현한 거죠. 제가 마술사가 아닌 창작자라면. 답습이 아니라 무언가를 만들고 싶은 거예요. 근데 뭔가 만들고 싶은데, 뭔지 모르겠더라고요. 그래서 공부한 것과, 시도한 것, 고민한 것을 표현도구로 삼아서 ‘멜리에스 일루션’이 만들어진 거예요.”
이은결은 ‘마술’을 단순히 보여주는 데 그치지 않았다. 고민과 실험, 연구 끝에서 그 실마리를 찾고 자신이 표현하고 싶은 무언가에 접근했고, 이를 마술로 풀어낸 것이다. 마술이라는 단어가 가진 한계를 뛰어넘고, 상상하는 것 이상을 표현하고, 이를 관객들에게 제시해, 무조건 적으로 보는 것을 받아들여지는 것에 익숙해진 대중들의 사고의 틀을 깬다. 이는 마술이 서커스나 쇼가 아닌 ‘이야기로 풀어나가는’, 일루셔니스트로서의 확장을 꾀한 그의 작가로서의 무대 역시 앞으로 기대해볼만한 이유다.
“마술은 왜 생겼을까요. 종료, 과학, 철학과 다르게 그 유한함을 뛰어넘어요. 그러면서 꿈꾸게 하고, 현실을 극복하고, 상상하는 이미지를 현실에서 보여줄 수 있는 유일한 행위죠. 처음 누군가의 도전은 의미가 없었을 지도 몰라요. 하지만 그 시도를 한 사람들로 인해 영감이 이어지면서 생긴 도전은, 누군가 했던 의미 없고 불필요한 시간이 아니라, 누군가의 시작이 되고, 또 다른 이에게 시작이 되죠. 그렇게 영화라는 종합예술이 탄생한 것 아닌가 싶어요.”
![]() |
“360도 돌아가는 무대를 만드는 게 목표에요. 작가주의 작품은 보여주는 것은 기본이고, 마술사와 마술을 보여주는 것은 다른 것인 것 같아요. 마술을 버릴 줄 알아야하고, 일루션을 담아야 하는 거죠. 마술사가 아닌 일루셔니스트로서, 표현한다면, 영화가 추구하는 환영을 무대에 담을 수 있어요.”
2016년은 조금 더 이은결에게 특별하다. 무대에 선지 20년이 된 해이기 때문이다. 앞으로 또 30주년, 40주년, 50주년을 위해 힘차게 나아갈 그이지만, 스스로가 느끼는 감회도 다를 것이다.
“20주년이 돼 공연을 한다는 것은 사실 부담이죠. 스스로 ‘잘 버텼구나’라는 생각이 들긴 한데, 제가 꿈꾸지 못했던 10주년이었고 미처, 꿈꾸지 못했던 20주년 이죠. 굉장히 보수적인 제가 있었고, 10주년처럼 스케일 있는 공연을 할지 몰랐고, 또 어떤 공연을 할 수 있을까 어디까지 갈 수 있을까 라는 생각도 했었죠. 꿈꿨던 ‘디 일루션’도 했고, 다른 생각도 했기 때문에 알차게 살았던 것 같아요. 앞으로 10년도 지금은 미처 꿈꾸지 못한 것을 이룰 것이라는 생각이 들어요.”
김진선 기자 amabile1441@mkculture.com/페이스북 https://www.facebook.com/mbnstar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