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체력적으로는 힘들지만, 온전히 작품에 집중할 수 있어서 감정적으로는 오히려 좋은 것 같아요. 그동안 주로 무겁고 어두운 작품을 해오다 오랜 만에 밝고 따뜻한 인생 이야기를 담은 작품을 만나니 너무 행복해요. 게다가 저와 너무 많이 닮은 ‘페기 소여’이기 때문에…작품을 하면서 지난날부터 언제 올지 모르는 미래까지, 참 많은 생각을 하게 돼요. 감정적으로나 기술적으로나 훨씬 깊어진 ‘페기 소여’를 연기하려고 노력하고 있어요. 고전의 향수와 변화의 세련됨을 동시에 느끼실 수 있을 거예요!”
‘뮤지컬계 김태희’ ‘10단 고음’ ‘천사의 목소리’ ‘남자의 자격, 청춘합창단’ ‘실사판 페기 소여’ 등 그녀를 설명하는 수식어는 참 많다. 2006년 뮤지컬 ‘드라큘라’ 앙상블로 무대에 데뷔한 이후 2008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 공개 오디션을 통해 신데렐라로 떠오른 배우 임혜영(34)을 두고 하는 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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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실존하는 페기 소여’로 불리는 만큼, 그녀에게도 이 작품은 남다르다. 때문에 처음에는 마냥 즐겁지만은 않았다. 두렵고 또 부담스러웠다고. 하지만 이번에도 역시 운명적 이끌림 때문에 다시 선택하게 됐다고 했다. “가장 걱정된 건 ‘그 때의 풋풋함을 다시 보여줄 수 있을까?’ 였어요. 그런 건 연기로 되는 게 아니니까” 그녀가 조심스럽게 운을 뗐다.
“7년 전에는 저 자체가 그냥 ‘페기 소여’였던 것 같아요. 주어진 역할을 소화하느라 죽어라 연습반 성식하게 됐었죠. (미소) 모든 게 마냥 신기했으니 다른 건 돌볼 여유도 없었죠. ‘나만 잘하면 된다’라는 마음뿐이었어요. 지금이요? 앙상블 후배들은 물론 동료들과 선배님에게까지…제가 해야 할 역할들이 정말 많아졌죠. 배우로서도 이전 보다 발전된 모습을 보여줘야 한다는 부담감도 있고요. 이젠 나 자신에만 집중할 수 없는 환경이죠. 제가 이제 나이가 들었다는 증거이기도 하고요, 하하!”
작품은 시골 출신 신출내기 코러스 걸 페기 소여가 스타 연출가 줄리안 마쉬를 만나 뉴욕 브로드웨이의 인기 스타가 되는 성장담을 다룬다. 이 페기 소여의 이야기를 듣다 보면 어느새 임혜영과도 오버랩 되는데, 이 때문에 그녀는 ‘실사판 페기 소여’로 불린다. 많은 업계 관계자들이 그가 연기하는 '페기 소여'에 큰 관심을 보였던 이유이기도 하다.
“이번 작품을 하면서 그동안 잊고 지냈던 지난날의 감정들 그리고 기억들이 참 많이 떠올랐어요. 과거와 달리 지금은 헤아려야 할 것들이 많고, 생각도 많아지고…철 없던 시절보다 오히려 어렵게 느껴지는 것 같아요. 쉴 새 없이 몰려오는 생각들을 최대한 심플하게 정리하고, 감정을 자제하며 임하고 있어요,”
강원도 강릉에서 출생, 성악을 전공한 그녀는 본래 아나운서를 준비했지만 우연한 기회로 뮤지컬에 입문하게 됐다. 얼떨결에 앙상블로 데뷔한 이후 뮤지컬 ‘마이 페어 레이디’로 일약 스타덤에 올랐다. 여기에 KBS ‘남자의 자격-청춘합창단’에 출연해 대중성까지 갖추게 됐다. 이후 빠른 속도로 경력을 쌓으며 대세 여배우로 자리 잡았다.
“‘뮤지컬계 김태희’에서 이제는 업계에서도 알아 주는 스타 여배우로 발돋음 했다. 진짜 ‘페기 소여’가 된 소감은 어떤가?”라고 물었다. 가벼운 칭찬말이라고 여겼으나 그녀의 표정은 매우 진지했다. “물론 그렇게 말씀해주셔서 너무나 감사하지만, 꼭 ‘이미지’나 ‘얼굴’ 때문에 무대의 기회가 주어진 건 아니에요”라고 미소로 답했다.
지난 10년간 ‘지킬앤하이드’ ‘로미오와 줄리엣’ ‘미스 사이공’ ‘오페라의 유령’ ‘젊은 베르테르의 슬픔’ ‘두 도시 이야기’ ‘레베카’ 등 수많은 히트 뮤지컬에서 여주인공을 맡아온 그녀. 유난히 예쁜 얼굴, 고운 목소리 때문에 아름답고 청순한 여주인공을 주로 해왔다. 공주 전문 배우로 불리기도 한다.
“과거엔 ‘저 배우는 이미지 혹은 얼굴 때문에 쉽게 작품에 발탁된다’는 시선 때문에 상처를 많이 받았었어요. 물론 신인 시절, 생각지도 못한 기회들을 얻었고 가능성에 대한 좋은 평가들을 받아 감사하게 생각하죠. 하지만 무대는 단순히 그런 이미지만으로는 오를 수 없는 곳이라고 생각해요. 여전히 부족한 점이 많지만, 저도 발전하기 위해서 많은 노력을 해왔고 무수한 시행착오를 겪어왔고 오디션을 통해 무대에 서왔는데…물론 한편으로는 그래서 나도 누군가에게 그런 선입견이나 잘못된 시선을 가지고 있지 않은지 되돌아보고 반성하게 되더라고요. 치우친 사고를 경계하고 스스로 실력으로 인정받기 위해서 더 채찍질하게 되는 것 같아요.”
가녀린 외모와 다르게 강단있는 내면이 느껴졌다. 주변에서 뭐라든, 무모한 도전보다는 주어진 것 내에서의 변주를 택하는 똑똑함도 지닌 그녀였다. 한 눈에 보이는 파격적인 변신보다는 자신에게 정말 필요한 것들을 하나 하나 채워가는 게 그녀만의 도전 방식이었다.
성악 출신 배우로서는 가장 두려운 게 바로 춤. 고난이도 탭 댄스 쇼뮤지컬을 과감히 또 선택한 이유도 그 때문이었다고. 임혜영은 “뮤지컬 배우의 기본은 노래와 춤, 연기, 퍼포먼스가 모두 돼야하는데 사실 요즘은 꼭 그렇지만은 않다”면서 “최정원 남경주 등 ‘1세대 배우’들에 비해 아직은 우리 세대가 부족하기 때문에 이런 기본 소양을 더 단단히 갖추고 싶었다. 그런 점에서 이번 작품은 내게 더 큰 용기를 요했다”고 말했다.
“‘페기 소여’의 이미지만 보고, 또 비슷한 역할을 맡았다고 할지 모르지만 저는 성악을 전공했기 때문에 사실 고난이도 탭댄스에 뛰어나질 못해요. 그럼에도 불구, 원 캐스트를 선택한건 저에게도 큰 도전이었죠. 춤 역시 뮤지컬 배우에겐 완벽해야 할 기본 요소이기 때문에 욕심을 내고 있어요. 한 계단 한 계단 성장하기 위한 저와의 싸움이죠”
그녀가 이토록 끈질기게 자신만의 도전을 계속 하는 이유는 꼭 주변의 시선이나, 인정받기 위함만은 아니다. 점점 더 커져가는 무대에 대한 갈망 때문이다. 그는 “이번 공연을 하면서 가장 달라진 건, ‘페기 소여’뿐만이 아닌 정점을 찍고 점점 무대 밖으로 밀려나는 ‘도로시 브록’에 대한 감정”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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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저는 더 이상 매사에 아무것도 모르는, 순진하기만 한 ‘페기 소여’는 아닌가 봐요. 성공을 위한 무대 보다는 무대 자체에 대한 소중함이 정말 커졌고, 언젠가 내려와야 한다는 생각을 하면 더욱 더 특별하고 간직하고 싶어져요. 예전엔 안 그랬는데, 요즘엔 제가 올랐던 무대들을 다 영상으로 남기고 싶고 추억할 많은 것들을 자꾸 생각하게 돼요. 사랑 역시 마찬가지죠. ‘도로시 브록’의 복잡한 마음을 이제는 뭔지 알 것 같아요.”
그러면서 ‘도로시 브룩’을 연기 중인 최정원을 언급했다. “이건 선배께도 한 번도 말씀 안 드린 건데”라며 잠깐 말을 멈추더니, “선배님은 기억 못하시지만, 사실 아주 오래 최정원‧남경주 선배님의 공연인 ‘비밀의 정원’을 보러 가 정원 선배의 사인까지 받아왔을 정도로 굉장한 팬이었어요. 그런 우상 같은 존재와 지금 제가 한 무대에 서 있네요. 이번 작품은 정말 잘 해내야 할 많은 이유들이 있어요”라며 미소를 지었다.
“최정원 선배는 완벽한 ‘도로시 브룩’, 아니 그 이상이죠. 무대 위 선배님을 보면 정말 행복해 보이세요. 저 나이에 이런 열정, 애정을 가진 분들이 얼마나 계시겠어요? 저절로 ‘나도 선배님처럼 될 수 있을까’하는 생각을 하게 되죠. 제가 언제까지 무대에 설 수 있을지 모르잖아요? 그런 생각을 하다보면 무대에 서는 매 순간이 너무 소중해요. 무대에 오래 설 수 있으려면, 결국 탄탄한 내공 뿐이더라고요, 정말.”
끝으로 “어떤 배우가 되고 싶냐”고 물었다. 방긋 웃으며 “최정원 선배님 같은 배우”라고 답했다.
“아직은 무대에 선 시간이 길지 않아서…언젠가 뭘 하든 신뢰감을 주는 사람이 되고 싶어요. 배우로서든, 동료로서든. ‘임혜영과 함께라면 잘 될거야!’라는 믿음? 후배들에겐 함께 고민을 나눌 수 있는 편안한 친구 같은 존재가 되고 싶어요. 그렇게 서로가 좋은 기를 주고 받으면서, 오랜 시간 무대 위에서 함께 할 수 있었으면 좋겠어요.”
<알면 더 재미있다! ‘브로드웨이42번가’ 제대로 즐기기 TIP>
★‘브로드웨이’는 뉴욕의 한 거리 이름이다. 폭이 넓은(Broad) 길을 말하는데, 우리의 여의도 같은 섬인 맨해튼의 북쪽 끝에서 남쪽 끝까지를 관통하는 가장 오래된 거리다. 오늘날 맨해튼의 가장 번화된 거리로 온갖 상점과 차량, 인파로 늘 북적이는 트렌디한 장소.
공연 애호가들에게 ‘브로드웨이’는 또한 세계적인 뮤지컬 공연가로 통한다. 이 곳의 모든 곳이 다 그런 것은 아니지만 많은 전문 공연장이 밀집돼 있는 40번가에서 54번가, 그리고 6번가에서 8번가의 직사각형 구역은 특히 그렇다. 공연가의 생생한 이야기를 다룬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가 만들어지게 된 결정적인 배경도 바로 이런 사실을 근간으로 하고 있다.
★ 뮤지컬 ‘브로드웨이 42번가’의 영어 원제는 ‘42nd Street’다. 브래드포트 로페스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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