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인구 기자]
뜨거운 올여름 가요계 음원차트는 소녀들이 휩쓸고 있다. YG엔터테인먼트에서 7년 만에 선보인 걸그룹 블랙핑크와 엠넷 '프로듀서101'에서 선발된 아이오아이(I.O.I) 유닛이 신인 그룹으로서 활약 중이다. 블랭핑크와 아이오아이의 성공에는 서로 다른 아이돌 시스템이 맞물려있다.
지난 8일 데뷔한 블랙핑크는 '휘파람' '붐바야' 더블 타이틀 곡이 수록된 데뷔 앨범 '스퀘어 원(SQUARE ONE)'을 발표했다. 이들은 2NE1 이후 YG에서 처음 선보이는 걸그룹으로, 4년 전부터 데뷔 소식이 전해졌다. YG에서 공들여 준비한 만큼 '휘파람'은 국내 음원차트 외에도 14개국 해외 아이튠즈 차트에서도 1위를 내달렸다.
아이오아이는 블랙핑크보다 하루 뒤인 9일 싱글 앨범 '와타 맨(Whatta Man)'을 공개했다. 기존 멤버였던 김세정, 강미나, 정채연, 유연정이 소속 그룹으로 복귀한 뒤 7인조 유닛으로 새롭게 팀을 꾸렸다. 첫 발표곡 '드림 걸스(Dream Girls)'와 사뭇 다른 콘셉트로 변신에 성공해 음원차트에서도 최상위권에 이름을 올렸다.
블래핑크와 아이오아이는 걸그룹으로서 가요계에 새로운 바람을 불어넣고 있다는 것은 비슷하지만, 이들이 데뷔하기까지 밟아온 시스템은 극명하게 엇갈렸다. 유행과 시대상에 민감한 아이돌 그룹이 자라나는 두 가지 큰 줄기를 이 그룹들이 보여준 것이다.
블랙핑크는 대형 기획사 YG엔터테인먼트의 노하우와 기획력이 녹아든 그룹이다. 지수, 제니, 로제, 리사는 2010년 8월부터 본격적인 데뷔 준비 과정에 들어갔다. 빅뱅, 2NE1 등 선배 가수들과 이들의 색을 입혔던 프로듀서들의 영향을 받으면서 성장해갔다.
'2NE1을 잇는 YG 걸그룹'이라는 점에서도 소속사의 든든한 지원을 받았다. 데뷔 앨범이 공개되기 전 열린 블랙핑크 쇼케이스에는 양현석 대표 프로듀서가 참석했다. 양 프로듀서는 블랙핑크를 대신해 "YG는 대중과 팬들이 만족하기 전에 YG 가수와 스태프들이 마음에 들어야 앨범을 공개하는 시스템이다. 제가 조금 욕을 먹더라도 좋은 콘텐츠를 전하고 싶었다"고 말했다.
이를 위해 블랙핑크 데뷔 앨범은 빅뱅과 2NE1 히트곡의 프로듀서로 활동했던 테디가 전곡을 작사, 작곡, 디렉팅을 직접 맡았다. 해외 유명 안무가들이 블랭핑크의 퍼포먼스를 구상했다. 여기에 양 프로듀서의 쇼케이스 지원까지 더해졌다.
아이오아이는 기획사의 시스템보다는 방송의 힘이 컸다. 101명의 걸그룹 연습생을 모아 시청자들이 투표한 '프로듀스101'는 아이오아이 멤버들을 알리는 계기가 됐다. 그동안 빛을 보지 못했던 연습생들이 매주 성장 과정을 전하면서 인지도를 쌓는 기회를 얻었다. 기획사 오디션 프로그램보다 '프로듀스101'은 중소 기획사들이 함께해 연습생 폭을 넓힐 수 있었다.
경쟁자를 떨어뜨리고 살아남는 오디션 프로그램인 '프로듀스101'은 방송 중반까지만 해도 비난과 논란의 대상이 됐지만, 결과적으로 아이오아이가 데뷔해 성적을 낼 수 있는 자양분이 됐다. 각 연습생의 매력과 장점을 결집한 덕분에 팀도 이른 시일에 이름값을 올렸다.
각기 다른 기획사에서 선발된 아이오아이는 활동 기간이 제한적이라는 한계가 있다. 아이오아이 그룹만의 색깔을 갖추거나 선보이기 어려웠다. 블랙핑크가 YG를 대표한 그룹이라면, 아이오아이는 태생적으로 가요계 트렌드를 재빠르게 수용해 선보이는 방법을 선택할 수밖에 없었다.
아이오아이는 일부 멤버들이 소속사로 돌아간 상황에서 '유닛'이라는 아이돌 그룹이 최근 내놓고 있는 활동 형식으로 재편했다. '와타 맨'이 백인 소울 뮤지션 린다 린델의 1968년 발표작인 '왓아맨(What A Man)'을 샘플링한 것도 아이오아이만의 가치를 담아내기보단 쉽게 받아들여지고, 멤버들의 특징이 잘 도드라진 선택이라고 풀이된다.
블랙핑크와 아이오아이가 아이돌 그룹의 현재의 성공을 보여주고 있듯이 이들이 자란 환경에는 그림자도 담겨있다. 블랙핑크는 YG와 이에 얽힌 지원을 충분히 받고 있다. 양 프로듀서가 공개적인 자리에서 직접 블랭핑크 앞날에 대한 기대를 전하는 것만으로도 중소 기획사 그룹이 가질 수 없는 스포트라이트를 받는 것이다.
아이오아이는 방송 시스템에 종속된 아이돌 그룹의 씁쓸한 모습도 전했다. 100여 명이 이르는 걸그룹 연습생이 함께 무대에 올랐던 '프로듀스101' 첫 방송은 치열한 경쟁과 더불어 방송이 쥐고 있는 아이돌
그럼에도 블랙핑크와 아이오아이는 지금의 가요계를 대표하는 아이돌 그룹이다. 두 그룹은 아이돌 육성 시스템에 극단에 서있는 것처럼 보이지만, 결국에는 '가장 잘 통할 수 있는 아이돌 그룹'이라는 가요계의 고민에 대한 해법을 드러내는 것이기도 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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