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을 든 그의 모습은 ‘꽃할배’보다 아름다웠다. 그 어떤 멜로보다 가슴 뭉클하고 또 애절했다.
영화와 드라마, 그리고 공연에서 단역, 조연, 주연을 망라하며 출연한 작품만 300여편. 한국 대중문화계 살아있는 전설로 불리는 그를 혹자는 ‘100년에 한번 나올까 말까 한 명배우’라 칭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50여년간 쉬지 않고 대중 앞에 선 까닭에, 너무 익숙하다는 이유로 그의 명연기를 과소평가해온 것은 아니었을까. 57년 연기 외길인생 대배우 박근형(77)의 내공에 전율이 돋는다.
영화 ‘그랜드파더’는 베트남참전용사로 활약했지만, 영광을 뒤로한 채 아픈 기억과 상처를 지니고 살아가는 노장의 일상으로부터 이야기가 시작된다.
잔잔하게 시작된 이 영화는 ‘아들의 자살’이라는 비극적 사건으로 전환점을 맞는다. 타살인지 자살인지 모호한 아들의 죽음에 가려진 추악한 진실. 이 불편한 진실은 우리 사회의 어두운 민낯과도 맞닿아있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돈이 전부라고 여기며 먹고 살기 위해서는 어쩔 수 없이 죄를 짓는 게 당연하다는, 스스로에게 면죄부를 주는 사람들의 모습은 불편하지만 그저 욕할 수만은 없는 우리의 모습이기도 하다.
그래서일까. 이 추악한 비밀을 밝히려는 아버지이자, 마지막 남은 혈육인 손녀딸을 구하기 위한 노장의 고군분투는 애잔하고도 안타깝다.
힘 없는 노인의 목숨을 건 응징. 이 사회적인 약자가 불가능한 싸움에 나설 때 우리는 무엇을 하고 있었을까. 작품 후반부,“수없이 도움을 구했잖소! 약한 사람은 그저 가만히 당하기만 해야 하는거요?”라고 묻는 그의 외침은 깊은 울림과 먹먹함으로 파고든다.
영화가 던지는, 그가 외치는
지금껏 노인들의 웃음과 사랑에 익숙했던 관객들에겐, ‘꽃할배’ 박근형을 기억하는 이들에겐 다소 낯설 수 있다. 하지만 피 묻은 얼굴로 총을 든 그의 모습은 올해 가장 신선한 충격을 안긴 영화 장면으로 꼽힐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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