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배우 송강호와 김지운 감독의 네 번째 호흡이다. 이들의 조합은 기대만큼의 신선한 장르, 예측불허의 새로운 캐릭터를 탄생시켜왔다. 이번에도 그렇다.
올 하반기 기대작 중 하나인 영화 ‘밀정’(감독 김지운)이 25일 언론시사를 통해 베일을 벗었다. 결론부터 말하자면, 스타일리시하고 매혹적이며 밀도 높은 스파이물이다. 하지만 어떤 이들에겐 어려운 영화일 수도 있다.
‘밀정’은 일제강점기인 1923년 실화인 ‘황옥 경부 폭탄 사건’을 토대로 만들어졌다. 당시 의열단에서 일어났던 몇 가지 주요한 사실을 엮어 영화화 한 작품으로 독립투사와 친일파의 이분화 된 대립이 아닌, 정체성의 혼란을 겪으며 위험한 줄타기를 하는 인물들의 이야기를 그렸다.
최근 극장가에는 유독 ‘일제 강점기’를 배경으로 한 작품들이 연이어 선보였는데, 그래선지 시대적 배경이나 소재는 별로 신선할 게 없다. 김지운 감독이 낯설지 않은 이 소재를 어떻게 풀어낼지가 관심사였고, 그것은 영화의 성패가 달린 지점이기도 했다.
영화는 조선인 일본 경찰 이정출(송강호)과 독립군 의열단의 리더인 김우진(공유)의 관계를 배우들의 영리하고도 농익은 연기력에 기대어 세밀하게 그려낸다. 두 사람은 서로의 정체를 알고 있지만, 그 속내를 감춘 채 각자의 목표를 이루기 위해 서로를 이용하려고 한다.
송강호는 흔들리는 자아와 그 속의 인간미를 명불허전의 연기력으로 처절하게 표현해냈다. 특유의 투박함과 위트는 여타 영화에서 봤던 ‘마냥 이기적인 앞잡이’가 아닌 공감의 여지를 남기는 입체적인 캐릭터로 탄생시켰다. 공유는 부드러운 카리스마와 강인한 듯 따뜻한 감성을 섬세하면서도 스타일리시하게 표현한다.
안 어울리듯 기막히게 딱 들어맞는 두 사람의 케미는 예상 외의 긴장감을 선사한다. 이들은 의심과 회유, 의리와 우정까지 넘나드는 입체적인 관계 변화를 통해 두 진영 사이에 감도는 일촉즉발의 위기감과 박진감을 만들어낸다. 그 시대를 살았던 이들의 암울했던 면면, 누구나 밀정이 될 수밖에 없는 상황을 인물 각각의 내면을 통해 설득력 있고도 차갑게 그려낸다.
여성 의열 단원으로 분한 한지민 역시 곧고 단단한 강단으로 강한 인상을 남긴다. 무엇보다 의열단 단장 정채산으로 특별 출연한 이병헌은 스크린을 삼켜버릴 미친 존재감으로 ‘밀정’의 완성도를 한껏 높인다.
영화는 김지운 감독의 말처럼, 아픔의 시대 속 상황을 냉소적으로 그리기 시작해 각각의 인물들을 통해 뜨거운 여운을 남기며 끝난다. 명확한 선과 악도, 확고한 희망도 없지만 이 실패를 통해 한 발 앞으로 나아가려는, 그저 주권 회복만을 위해 싸워야 했던 독립투사들의 애국 본능을 이야기 한다.
인물 중심의 전개가 주가 되는 전반부는 다소 지루한 감도 있다. 액션 스케일 또한 기대 보다 소박하나 예술성이 가미된 한 방은 있다. 이병헌의 등장과 함께 급속도로 휘몰아치는 후반부가 매혹적이다.
고증을 지키면서도 이에 얽매이지 않고 각 인물들의 이미지를 담아낸 감독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작품이다. 혼란한 시대를 상징이자, 그래서 개개인에게 어떤 역할이든 주어질 수밖에 없었던 당시를 현
다만 김지운 감독이 당초 만들고 싶었다던 콜드 스파이물의 시대적 배경을 왜 일제강점기에서 출발했는지 의문은 남는다. 140분. 15세 관람가. 9월 7일 개봉.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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