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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첫 장면은 조직원 승필(김성오)과 병갑(김희원)이 책임진다. 이 남자 향기 물씬 풍기는 영화의 전체를 이해하기에 좋은, 일종의 프롤로그다. 죄의식 없이 사람의 눈을 보면서 쑤시고 죽이는 건달 재호(설경구)에 대해 이야기하는 두 사람. 앞으로 재호의 활약이 이 둘의 대화로 설득력 있게 다가온다.
물론 재호가 감방에서 자신을 처리하기 위해 들어온 성한(허준호)을 처리하는 상황에서도 그의 잔인함과 잔혹함은 드러나긴 하지만, 이 대화 탓 그는 더 악랄해 보인다.
하지만 재호를 악랄함만으로는 설명할 수 없다. 감방에서 만난 현수(임시완)에게 신경을 쓰는 재호가 그렇게 잔혹해 보이지만은 않기 때문이다. 재호는 현수의 돌출된 행동이 그의 눈에 들기 위한 일종의 쇼였다는 걸 알았어도 별 신경을 쓰지 않는 눈치다.
매너리즘에 빠진 탓 이 세계에서의 삶이 재호에게 무료해졌기 때문이라고 생각하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모든 게 이해된다. 산전수전을 겪은 그가 현수를 믿게 된 건 아마도 성한으로부터 목숨을 구해줘서만은 아닌 듯싶다. 본인과는 전혀 다른 모습의 현수에게서 믿음, 혹은 더 나아가 (사랑까지는 과한 표현이고) 강한 애정을 느꼈던 게 분명하다.
현수 역시 마찬가지다. 자신의 동료들에게 배신당한 삶에서 중요한 부분으로 차지할 수밖에 없는 인물이 재호가 되어 버렸다. 두 사람의 애정이 쌓여 가는 과정이 '불한당: 나쁜 놈들의 세상'의 중요한 포인트다.
이런 일련의 상황들이 일반적인 언더커버 영화와 다른 지점이기도 하다. 러닝타임 1시간이 지나지도 않았는데 영화는 현수의 정체를 단박에 까버린다.
설경구와 임시완, 두 남자 배우의 감정을 고조시키는 전개 방법과 스타일리시한 영상으로 관객을 사로잡겠다는 자신감의 표현이 깃들어 있다. "잠입조를 투입하겠다"는 경찰 천팀장(전혜진)의 말에 관객도 바로 예상할 수 있다.
영화는 등장인물들의 감정의 수평을 이루려 부단히 노력한 티도 난다. 설경구와 임시완이 전하는 누아르풍의 영화가 멜로의 감정도 상존하는 이유라고 할 수 있다. 남자들의 세계에도 감성과 감정이 전체를 아우를 수 있다는 걸 알려준다.
"이 영화는 멜로영화라고 생각했다. '로미오와 줄리엣'도 참고했다"며 "믿는 타이밍이 어긋나면서 파국으로 가는 두 남자의 이야기를 쓰고 싶었다"는 변성현 감독의 말을 이해하게 하는 매력들이 영화 전체를 휘어 감싼다.
기존 언더커버나 누아르, 투톱 남자 액션 영화들과는 다른 신선한 맛이 관객의 오감을 자극한다. 임시완의 '퇴폐미'와 '바른생활 사나이' 매력이 공존하는 영화이며, 설경구도 이전에 부진했던 모습이 잊힐 만큼 매력을 충분히 과시한다.
악역 전문 김희원의 조금은 다른 악역도 눈길을 끈다. 오매불망 재호에게 사랑을 갈구하는 모습은 애처로울 정도다.
결국에는 정의의 편이라고 믿을 수밖에 없는 경찰이 정의롭지 않은 것도 다른 영화들과 조금은 다른 지점이다. 부하직원을 사지로 몰아넣고 챙겨주지도 않는 그 상황, 현수에게 맞닥뜨린 현실은 절벽과도 같았을 게 분명하다. 전혜진은 본인의 캐릭터에 아쉬움이 클지도 모르나 감독의 의도대로 잘 소비된 것 같다.
모든 지점에서 새로운 스타일의 언더커버 영화를 표방한다. 캐릭터들도 너무 좋다. 감정을 차곡차곡 쌓아나가는 것도 탁월하다. 설경구의 과장된 웃음소리가 거슬리기는 하지
올해 칸 국제영화제 비경쟁부문인 미드나잇 스크리닝 섹션에 공식 초청된 작품이다. 그 이유가 신선함에 있었던 듯싶다. 120분. 청소년관람불가. 18일 개봉 예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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