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꿈의 제인’, 영진위 창작 지원금으로 시작
"이방인 같은 정서로 사는 사람들에게 관심 많아"
"힘들어도 절망하지 말고 힘을 내길 바라는 마음이 컸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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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
지난 2015년 대학교(한양대 연극영화과 연출 전공) 졸업을 하자마자 영화진흥위원회로부터 창작 지원금을 받는 ’행운’을 거머쥐었다. 두 해 전 겨울부터 쓰기 시작한 시나리오도 완성이 됐고, 모든 작업이 착착 이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인생이 쉬우면 재미없는 법이다. 어린 시절, IMF 위기를 나름대로 잘 넘겼던 그는 다시 또 위기와 맞닥뜨렸다.
1인 제작사이긴 하나 영화사 서울집을 차리고 프리프로덕션 작업과 시나리오 각색 작업을 병행한 그는 구교환이라는 독립영화계 스타를 캐스팅하고, 떠오르는 샛별 이민지까지 함께하게 됐다. 이제 막 첫 장편 연출을 관객에게 소개하는 신인 감독 조현훈은 "오랜 시간이 흐른 뒤 배우들이 꾸려지고 나서야 ’이제야 영화를 찍을 수 있구나’라는 어떤 희망이 생겼다"고 웃었다.
지난달 31일 개봉한 영화 ’꿈의 제인’은 시나리오 작업에만 2년 넘게 걸렸고, 촬영에 후반 작업까지, 그리고 개봉하기까지 4년이라는 시간이 투입됐다. 포기하고 싶은 순간도 있었을 것 같은데 조현훈 감독은 생각을 하더니 "한 번도 그런 적이 없었다"고 딱 잘라 말했다. "2년 가까이 시나리오를 준비할 때는 주변에서 많이 만류하긴 했다"고 한 그는 "하지만 아이들과 성 소수자 이야기를 쓰기로 한 순간부터 포기할 수 있는 이야기라고 단 한 번도 생각하지 않았다. 유기체처럼 어떤 생명력을 갖고 만들어져 가고 있다는 걸 느낀 순간부터, 거창하게 말하면 사명감까지 생각했고, 어느 순간부터는 최면에 걸린 것처럼 ’꼭 이 이야기를 해야 한다’는 생각밖에 없었다"고 회상했다.
영진위의 지원을 받는 건 좋았지만 학생 때 했던 작업 외에 현장에서 연출부를 경험하지 않아서 ’꿈의 제인’을 내놓은 시간은 일종의 맨땅에 헤딩하는 방식이어야만 했다. 실무를 처리하면서 하나하나 배워나가는 게 쉬운 작업은 아니었다. 추가 비용도 전세금을 빼서 충당해야 했다. 운이 좋게 시작된 작업이긴 하지만 "너무나 힘이 들었기에 후배들에게 권하고 싶진 않은 방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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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
조 감독은 "바다 위에 동떨어져 있는 빙하 같은 두 사람의 이야기라는 이미지를 상상하며 구성했다"며 "세상의 주변을 맴도는 이방인 같은 정서로 사는 사람에게 개인적으로 관심과 애정을 쏟는 편이라 소현과 제인을 이 이야기로 끌어들이는 게 자연스러웠다"고 했다.
감독 본인이 성 소수자는 아니다. 하지만 주변에 다양한 성적 지향점을 추구하는 친구도 있었기에 일상의 친구들이 반영된 점도 없지 않다. 가출팸 아이들의 심리를 파악하기 위해서는 쉼터에 가서 이야기를 듣기도 했다.
극 중 쫑구라는 부잣집 아이가 가출팸 생활을 하는 게 이해가 안 된다고 하자 조 감독은 "아무리 잘 살아도 어른들 때문에 마음에 구멍이 난 친구도 있더라. 서로를 위로해줄 수 있는 방법 중 하나가 가출팸"이라고 취재할 때 겪은 이야기를 전하며 "아이들의 상처를 어른들의 상식으로 이해하려고 하니 부딪히는 경우가 많다"고 설명했다. 감독은 실체와 영화의 균형을 잡는 데도 고민했다. "가출팸의 현실은 더 참혹할 수 있다. 이 영화로 가출팸이 미화될 일은 없겠지만 그래도 잘못 전달되는 부분도 있을 것 같기에 고민을 많이 했다. "자극적인 무언가가 강조되거나 보이지 않도록 해야 한다는 생각을 많이 했다"고도 덧붙였다.
극 중 소현은 한없이 외롭고 쓸쓸해 보이는 캐릭터다. 그의 얼굴에서 얼핏 미소가 번졌을 때 희망이라는 단어가 스쳐 지나간다. 아무리 불행한 세상에서 드문드문 던져지는 행복의 조각이 얼마나 큰 것인지를 깨닫게 하는 지점이다.
조 감독은 "사람을 대하는 방식이나 관계를 맺고 유지하는 건 일종의 학습을 통해서 이뤄진다고 생각하는데 소현은 한 번도 그런 걸 배우지 않았기 때문에 허둥지둥 무언가를 쫓기만 하지 할 수 있는 게 아무것도 없다. 그 안에서 불안해하고 관계를 망치기도 한다. 그런 점들이 부모를 잃은 야생동물이 들판에서 헤매는 것 같았다. 그런 게 소현에게서 느껴졌다. 물론 이민지 배우가 연기를 잘해줘서 그렇다"고 만족해했다.
그는 "이민지 배우가 모든 신에 나오는데 균형을 잡고 설득력 있게 표현할 수 있는 연륜이라고 할까? 그런 걸 가지고 있는 배우라고 확신했다"며 "다른 배우들도 많이 만나 봤는데 이민지 배우가 딱 맞았다. 다른 역할을 한 배우들도 그 성격에 부합하는 면을 보고 같이하자고 부탁을 했다. 2년 전 영화인데 출연 배우들이 이제 각자의 분야에서 자신의 매력을 뽐내는 느낌을 받고 있다. ’꿈의 제인’ 덕은 아니겠지만 멋진 배우들을 내가 운 좋게 만났다는 생각에 기쁘다"고 웃었다.
소현의 발가락이 한 개 없다는 게 소현의 불행을 고스란히 표현한다. 굳이 그의 전사가 필요 없기도 한 이유다. 조 감독은 "우리 영화에서 소현이가 유일하게 진실하게 느껴지는 순간"이라며 "잘못 그려지면 실례이고 오해를 살 수 있는데 민지씨가 잘 표현해줬다"고 좋아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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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영화 `꿈의 제인` 조현훈 감독. 사진 |유용석 기자 |
"영화를 통해 불행한 감정이나 절망을 나만 갖고 사는 게 아니고, 그렇기 때문에 내가 잘못된 것도 아니라는 걸 사람들이 알았으면 해요. 본인이 절망하지 않고 조금 더 힘을 내도 된다는 것을 영화를 통해서 얻어갔으면 좋겠어요. 영화가 해주는 역할 중에 그런 게 있다고 믿어요. 저도 영화를 통해서 희망을 품었던 사
조 감독은 ’이방인’에 관심이 많기에 차기작도 대안 가족의 이야기를 생각하고 있다. 아직은 구체화하진 않았다. 말하는 게 서툴긴 하지만 조심스럽게 또 진지하게 자기 생각과 의견들을 말하는 감독에게서 조만간 또 괜찮은 작품이 나올 것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jeigun@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