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슈퍼스타 김수현의 ‘리얼’(감독 이사랑)과 이제훈표 시대극 ‘박열’(감독 이준익)의 맞장 대결이 오늘(28일) 시작된 가운데 다양성 영화의 기대주, ‘직지코드’(감독 정지영)도 뜨거운 스크린 대결에 합류했다. 화려한 대작들 사이에서 오로지 역사적 진실만을 파헤친 ‘직지코드’는 다큐멘터리 영화의 자존심을 지켜낼 수 있을까.
영화는 우리의 소중한 문화재인 ‘직지’(직지심체요절, 이하 ‘직지’)와 동서양 문명사의 숨겨진 관계를 추적한 다큐멘터리로 각종 시사회를 통해 베일을 벗은 뒤 평단의 뜨거운 호평을 받으며 ‘노무현입니다’를 잇는 또 하나의 명품 다큐멘터리 영화로 평가받았다. 관객들에게도 역사적 진실을 알리고자 한 제작진의 진심이 전해질 지 주목된다.
‘직지코드’는 라이프(LIFE)지 선정 ‘인류 역사를 바꾼 위대한 발명 1위’로 꼽힌 구텐베르크의 서양 최초 금속활자 발명이 당시 동양 최고의 문명국 고려의 영향을 받았을 것이라는 흥미로운 가설을 바탕으로 시작된다. 동서양 금속활자 문명 사이의 연결고리를 찾기 위해 프랑스 파리부터 이탈리아 로마 등 유럽 5개국 7개 도시와 한국을 종횡무진하며 완성된 다이내믹한 대장정을 스크린으로 옮겨놓은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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뿐만 아니라 로마에서는 전 촬영분을 도난당하기도 한다. 모든 촬영을 마친 이들이 힘든 여정을 끝내며 쫑파티를 열어 축배를 드는데, 그 사이 그들의 버스에 도둑이 들어 모든 걸 도난당하게 되고, 현지 경찰관들은 전혀 해결 의지를 보이지 않는다. 도움의 손길이 없는 절망스러운 상황, 결국 제작진은 한층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재촬영에 돌입한다.
뭐 하나 쉽지 않은 여정. 그럼에도 불구하고 탐구를 포기하지 않는 제작진의 끈질긴 추적 과정은 ‘직지’를 둘러싼 은밀한 미스터리에 대한 호기심을 자극하면서도 극영화에 버금가는 긴장감과 희열을 선사한다. 여기에 다큐멘터리만이 가질 수 있는 특유의 생생한 에너지가 매력을 더한다.
결국 노력 끝에 제작진은 천주교의 새로운 역사이자 가설을 입증하는 데 큰 힘이 돼 줄 ‘편지’를 찾아낸다. 1333년 교황이 고려의 왕에게 보낸 편지가 바로 그것. 이 편지는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한 1455년 이전의 것으로 교항 요한 22세가 고려 왕에게 보낸 것으로 추정된다. ‘고려왕이 우리가 보낸 그리스도인들을 환대해줘서 기쁘다’는 내용의 편지는, 한국에 온 최초의 유럽인이 1594년 세스페데스 신부라고 기록돼 있는 천주교 역사를 뒤집는 놀라운 발견이자 고려와 유럽 금속활자 역사 사이의 비밀을 풀어줄 연결고리인 셈이다.
게다가 결정적 단서를 찾는 과정에서 제작진은 또 다른 사실을 알게 된다. 독일의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확실한 증거가 없다는 것. 구텐베르크가 최초로 금속활자로 인쇄한 것으로 알려진 ‘구텐베르크 성서’ 인쇄본에는 그가 활자를 찍었다는 내용, 즉 발행인에 대한 기록이나 표기가 남아있지 않았다. 뿐만 아니라 그의 작업실, 글자 모형, 인쇄기 또한 남아있지 않아 구텐베르크가 금속활자를 발명했다는 실질적인 증거는 독일 마인츠 박물관에 부재한 상황.
박물관 관계자가 제작진에게 제시한 증거는 그가 언급된 법정 공방 공증 문서 뿐이었는데, 문서에는 ‘구텐베르크는 책에 관한 일에 돈을 썼다고 말했다’는 불분명한 표현만 있었을 뿐이다. 독일 마인츠에 세워진 구텐베르크의 동상 또한 독일에서 제작된 것이 아니며, 초상화조차 실제 인물을 보고 그린 게 아니라는 사실이 밝혀져 충격을 안긴다.
이 미스터리한 여정의 시작은 우리의 우월감을 확인하고픈 기대감과 서양 중심의 역사관에 대한 반항심들로 가득했다. 그러나 이들의 치열한 취재 과정을 따라가다 보니 어느새 처음과는 전혀 다른 의미의 기대감에 사로잡히게 된다. 급기야 애초에 품었던 본질적인 궁금증에 대한 해답을 넘어 더 큰 세계관과 깨달음과 마주하게 한다. 자긍심, 그 이상의 감동과 사명감을 느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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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엇보다 팩트와는 별개로 ‘직지’가 내포하고 있는 정신, 그 가치와 내용에 대해서도 시선을 돌리게 한다. 결국 이 다이내믹한 여정의 끝에 다다르면 확장된 세계관, 상식을 뛰어 넘는 도전정신, 왜곡된 역사에 대한 문제의식, 이 모든 것을 끌어안는 진정한 ‘화합의 의미’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직지코드’는 너와 나의 역사를 뒤엎는 혁명이 아닌, 우리의 바른 역사를 함께 만들어가기 위한 시작이다. 너를 뛰어넘는 나의 우월함이
‘부러진 화살’ ‘남영동 1985’ 등을 연출한 한국 영화계의 대표 지성 정지영 감독이 제작을 맡고, 캐나다인 데이빗 레드먼과 우광훈 감독이 현장 취재를 맡았다.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