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명 맛없진 않다. 전반적으로 깔끔한 분위기에, 서비스도 훌륭하다. 워낙 고급진 유명 레스토랑이라니 한번쯤 기분을 내러 가볼 법도 하다. 하지만 두 번 갈 곳은, 지인에게 자신 있게 소개해줄 만한 특별한 맛 집은 아니다. 요란한 소문에 비해 웬만한 고가의 음식점에서는 흔하게 맛 볼 수 있는 메뉴들로 가득하다. 영화 ‘브이아이피’를 본 느낌이 딱 그러하다.
그야말로 초호화. 이름만으로도 남다른 품격을 지닌 톱스타 장동건을 비롯해 ‘연기 본좌’ 김명민, 독보적인 카리스마의 박희순, 여기에 인기와 실력을 모두 갖춘 대세 이종석까지 합세했다. 결정적으로 전작 ‘신세계’로 충무로의 관심을 한 몸에 받은, 명품 이야기꾼 박훈정 감독이 이끄는 영화라니 기대감이 치솟을 수밖에.
영화 ‘브이아이피’는 국정원과 CIA의 기획으로 북에서 온 VIP가 연쇄살인사건의 용의자로 지목된 상황에서 이를 은폐하려는 자, 이용하려는 자, 반드시 잡으려는 자, 복수하려는 자 등 서로 다른 목적을 가진 이들의 이야기를 다룬 범죄 느와르다.
신선한 소재, 호화 캐스팅, 스타 감독의 만남으로 일찌감치 화제작으로 떠올랐지만 높은 기대는 오히려 독이 됐다. ‘기획 귀순자’라는 흥미로운 소재를 가져왔으나 그 이용 방식은 지극히 일차원 적이고, ‘느와르’ 장르에 쉽게 떠올릴 수 없는 의외의 캐스팅을 선택했지만 브로맨스가 상실된 구성으로 인해 그 덕을 톡톡히 보진 못한다.
많은 인물이 등장하고 그 분량이 고루 분배돼 치우침이 없지만 지나치게 딱 떨어지는 느낌에 어딘가 작위적이다. 지루할 틈은 없지만 ‘신세계’에서 느낀 느와르 적 멋스러움이나 진한 여운은 없다. 화려한 영화적 장치와 수많은 장점들에도 불구하고 왠지 모를 진부함과 아쉬움이 더 짙게 남는다.
감독은 총 5가지 챕터로 나눠 사건의 시작부터 끝, 후일담까지 친절하게 들려준다. 마치 사건일지를 보는 듯 모든 인물과 정황을 쉽게 이해할 수 있지만 장르적 매력은 반감 됐다. 반전의 묘미 역시 찾기 힘들다.
이종석이 연기하는 VIP 김광일은 미국 CIA와 국정원이 합작해 귀순시킨 '기획 귀순자'로 장성택 국방위원회 부위원장 생존 당시의 북한 내 정치 상황이 캐릭터 탄생 배경이 됐다. 소위 북한의 로열 패밀리로 부와 명예를 가졌으며 영어에도 능통한 인재다.
이번 작품에서 가장 큰 활약을 보여준 이종석은 맑은 미소와 미소년의 외모 뒤에 숨겨진 악행으로 섬뜩한 연기를 펼친다. 열혈 형사로 분한 김명민, 짧지만 강렬한 인상을 주는 박희순 역시 이름값에 걸 맞는 카리스마를 내뿜는다. 다만 영화를 열고 닫는 장동건은 이번 캐스팅의 가장 흥미로운 부분임에도 불구, 썩 잘 어울리는 옷을 입은 느낌은 아니다.
이종석(김광일)을 둘러싸고 얽힌 이들은 저마다의 색깔로 생생하게 살아있지만 그 관계는 모두 어딘가 본 듯한 설정과 ‘케미’로 가득하다. 흥미로운 초반부에 비해 클라이막스로 갈수록 진부한 광경의 연속이다.
로열패밀리이라는 이유로 뻔뻔한 태도를 일관하는 김광일과 그를 잡기 위해 온 몸을 내던지는 채이도(김명민)을 보고 있자니 ‘베테랑’ 황정민과 유아인을 떠올리게 하고, 북한 형사 리대범(김명민)과 채이도의 관계는 ‘공조’도 ‘브로맨스’도 아닌 어정쩡한 수위에서 강렬하게 시작해 밋밋하게 흘러가 허탈함을 자아낸다. 박성웅의 깜짝 등장과 함께 ‘신세계’의 향수를 묘하게 불러일으키지만 동료인 장동건과 전혀 끈끈한 공감대가 없어 일차원적인 카메오로 끝나고 만다. 후반부로 갈수록 휘몰아치는 전개가 박진감이 넘치지만 공감도가 떨어지는 설정과 급작스러운 매듭 짓기로 결말의 통쾌함은 반감된다.
‘신세계’의 묘한 여운과 세련됨을, 느와르 특유의 멋스러움을 기대하는 관객이라면 실망할 여지가 크다. 배우들의 연기력은 탁월하나 캐릭터 자체가 워낙 단순하고 평면적이라 이들의 열정 만큼 힘을 발휘하진 못한다.
128분 내내 적나라하고 속도감 넘치는 전개가 이어지지만 모든
오는 24 개봉. 청소년관람불가. 128분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