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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경구가 돌아왔다. 아니 갓경구의 귀환이다. 제대로 이를 갈았다. 잠시 제 페이스를 잃고 슬럼프를 겪었다고 해도 (연기)신은 신이었다. 알츠하이머에 걸린 70대 노인 역을 맡은 그는 자신의 캐릭터에 완전히 빙의됐다. 영화가 가진 많은 허점들은 그의 열연에 상당 부분 상쇄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진부한 전개와 상실된 긴장감에는 적잖은 아쉬움이 남는다.
‘세븐 데이즈’ ‘용의자’ 등을 연출한 원신연 감독의 신작 ‘살인자의 기억법’은 김영하 작가의 동명 소설을 영화화한 작품이다.
원작이 최근 20만부를 넘긴 베스트셀러이기에 어떻게 변주 하냐에 따라 완성도가 극명하게 갈린다. 탄탄한 스토리 덕분에 흥행 면에서는 유리한 측면이 있지만, 같은 이유로 작품에 대한 평가는 보다 까다로울 수밖에 없다. 양날의 칼인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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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객이 병수(설경구)의 심경에 이입할 수 있도록 그의 연쇄 살인 동기를 제공한 것. 사회의 불순분자를 제거한다는 명분으로 병수는 그 이후로 세상에 ‘옳은 살인’도 있다는 신념을 가진다. 그리고 그 행위는 17년 전에 끝났다. 마지막 살인을 하고 집으로 오던 길에 교통사고를 당해 차츰 기억을 잃기 시작한 것.
이 같은 설정은 병수의 삶을 이해하고 그의 심리를 따라가기엔 탁월하지만 사연의 내용을 비롯한 전체적인 흐름은 너무도 진부하다. 여기에 모든 상황을 병수의 독백으로 듣고 있자니 스릴러 적 긴장감은 떨어지고 지루하다. 하나의 소소한 장치로 황석정 등의 카메오를 출연시켜 코믹 설정을 가져오기도 하지만 이미 배우들의 등장만으로도 어떤 형태로 활용할지 예측 가능해 별다른 감흥이 없다.
사실 딸 은희(김설현)의 남자친구로 나타난 민태주(김남길)과의 대결, 진짜 살인범은 누구인가에 대한 수수께끼를 푸는 게 이 영화의 핵심인데 이 부분에 대한 긴장감이 없다는 게 가장 큰 문제다.
유일한 피붙이인 은희에게 짐이 될까봐, 삶의 의지를 대부분 상실한 채 살아가던 병수 앞에 딸이 남자친구라며 데려온 것이, 이제 안심해도 되겠다고 생각하던 찰나에 마주친 인물이 바로 민태주(김남길)였다면, 그런 극적인 순간에 본능적으로 그가 살인범이라는 확신이 들었다면 이야기는 좀 더 흥미로웠을까.
영화는 어느 날 안개 속에서 병수 실수로 낸 접촉사고로 두 남자의 첫 만남이 그려진다. 이 사고로 상대방의 차 트렁크가 열리고 그 안에는 피가 뚝뚝 떨어지는 큰 가방이 있다.
병수는 본능 적으로 그 피를 휴지에 닦아 주머니에 숨기고, 차의 주인인 민태주(김남길)는 “보험처리하지 말고 각자 알아서 수리하자”며 퉁명스럽게 말한 채 사라진다. 본능적으로 민태주가 일련의 젊은 여성들을 연쇄살인한 범인이라고 확신한 병수는 비슷한 또래인 자신의 딸도 위험하다고 두려워한다. 그리고 얼마 후, 실제로 민태주는 은희의 남자친구라며 그에게 인사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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설현은 예상 보다 무난하게 자신의 역할을 해낸다. 기존의 연기돌 출신 배우들과 비교하면 짧은 경력에 비해 상대적으로 안정적인 연기를 펼치지만 일반적으로 높은 경쟁률을 뚫고 발탁된 신예 연기자들에 비하면 특출 난 점은 없다. 어떤 의미로든 튀는 부분 없이 담백하게 제 역할을 해냈다.
김남길은 시종일관 섬뜩하다. 그의 연기는 흠 잡을 곳 없지만 캐릭터 자체가 워낙 평면적으로 그려져 여타의 스릴러물에서 본 다른 살인범과의 차별점은 느껴지지 않는다. 푸근하고 친절한 인상 뒤에 숨겨진 악마 본능을 극대화하기
영화는 최근 범람한 스릴러 장르영화들과 뚜렷하게 구별되는 차별 점을 찾기 어렵다. 원작 기반 콘텐츠들의 유구한 약점을 역시나 극복하지 못했다. 9월 개봉 예정. 15세 이상 관람가. 러닝타임 118분.
kiki202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