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양우석 감독은 `변호인`에 이어 `강철비`로 묵직한 여운을 안긴다. 사진 I 유용석 기자 |
양우석 감독(48)은 데뷔작 ‘변호인’으로 무려 1137만 명의 관객을 만났다. 하지만 황금빛 영광만큼 드리운 그림자도 짙었다. 신변이 위험할 수 있으니 외국으로 가 있는 게 어떻겠냐는 주위의 권유가 끊이질 않았던 것.
최근 서울 삼청동 한 카페에서 만난 양우석 감독은 이 같은 사실에 대해 “신변의 위협을 느껴서라기 보단 너무나 슬펐다. (꼭 나야서가 아니라, 누구에게든)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어나서는 안 될 일이 벌어진 것 자체가 너무나 안타깝고 힘들더라”라며 말문을 열었다.
그는 “‘변호인’에 많은 공감과 성원을 보내주신 관객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하지만 이후 벌어진 일들이 슬프고 충격적이었다”면서 “결국 나로 인해 더 큰 잡음이 생기거나 해 ‘빨갱이 영화’라고 치부 받으면 관계자들에게 큰 피해가 될 것 같아서 중국으로 떠났다. 한동안 그저 슬픔에 차 돌아다녔다”고 말했다.
“제가 69년생 88학번인데…. 사실 우리 세대가 가진 묘한 슬픔이 있어요. 너무 많은 일들을 한꺼번에 겪어서죠. 일단 가난했던 국가 경제부터 기기의 발달, 민주화의 시작, 88올림픽 등 역사적으로나 경제적으로 사회의 굴곡을 너무나 온 몸으로 느낀 세대라. 하지만 아무리 힘들고 고통스럽고 배고픈 시절이 있었다고 해도 ‘대한민국이 좋아지고 있다는 걸’ 목격했던 터라…그런데 처음으로 ‘대한민국이 퇴행하고 있구나’라고 느꼈어요. 말할 수 없는, 남들은 쉽게 공감하지 못할 슬픔이었죠.”
↑ 양우석 감독은 `강철비`가 담론의 장을 제공하기를 희망했다. 사진 I 유용석 기자 |
한국 영화 최초로 북핵 문제를 전면에 다룬 ‘강철비’는 북한에서 쿠테타가 일어나고 중상을 입은 북한 권력1호가 한국으로 피신하면서 벌어지는 일을 그린다. 북한의 선전포고와 미국의 선제 핵공격 등 현재 한반도를 둘러싼 정세와 흡사한, 그래서 더 공포스럽고 묵직한 여운을 남기는 작품이다.
“만약 우리가 이 문제에 대해 치열한 담론이, 필요한 설전이 지속적으로 이뤄졌다면 굳이 영화화하지 않았을 거예요. 하지만 이제는 더 이상 이것이 우리나라 혼자만으로는 간단하게 해결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니기 때문에(일본 중국 미국 등 주변 국가들과 복잡하게 얽혀 있는 상황) 정면으로 마주하고 치열하게 맞서기 보다는 비켜 보고 그저 낙관론으로 결부짓는 경향이 없지 않아요. 오히려 정부는 이것을 정치적으로 이용해 서로를 비방하고, 책임 회피에만 급급한 상황이니 꼭 필요한 이야기라고 생각했죠. 우리가 당면한 문제니까요.”
양 감독은 이 같은 문제의식과 책임감을 바탕으로 어떻게 영화적으로 접근해 보여줘야 할지 치열하게 고민했단다. 그렇게 무려 10년의 시간을 거쳐 탄생한 게 바로 ‘강철비’다.
양 감독은 “영화 속 결말에 대해 벌써부터 논란이 좀 있는데 사실 지극히 극중 인물(외교안보수석 곽철우, 곽도원 분)의 입장에서 내린 가장 현실적인 결론일 뿐, 내 정치적 소견은 아니다”며 멋쩍게 웃었다.
이어 “내가 만든 영화이긴 하지만, 영화 속 일들이 실제로 벌어지지 않았으면 하는 마음이 진정 크다”면서 “이대로 가다간 분명 큰 위기가 오긴 올 텐데, 우리 모두가 그런 것에 대한 경각심을 가지고 함께 고민을 나누고 필요한 담론을 나눴으면 좋겠다. 바람은 그것 뿐”이라고 강
이와 함께 “올해 연말은 유독 다양하고 좋은 영화들이 대거 포진돼 있어 그 어느 때보다 풍성한 것 같다. ‘스타워즈’나 ‘위대한 쇼맨’, ‘신과 함께’, ‘1987’ 등 전혀 다른 개성의 영화들이 많아 관객들이 정말 좋을 것 같다”면서 “경쟁 보다는 모두가 즐긴다면 좋을 것 같다. 나 역시 그럴 것”이라고 덧붙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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