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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에서 손예진과 사랑에 빠지는, 6살 연하 ‘서준희’를 연기한 정해인. 제공| FNC엔터테인먼트 |
배우 정해인(30)은 블랙 수트를 입고 있었다. 사진 촬영이 생략된 인터뷰인데도 말끔한 정장 차림이었다. 이유를 묻자 “기자분들에게 예의를 갖추고 싶은 제 마음”이라고 했다.
서른한 살, 군필 배우라고 하기엔 꽤 동안이었다. 나이보다 대여섯 살은 어려보였다. 그래선지 ‘국민 연하남’이란 수식어가 맞춤옷을 입은 듯 잘 어울렸다. 그런데 이 남자, “30대 회사원을 연기했으니 이젠 교복 입긴 틀렸다”며 엄살이다.
최근 종영한 JTBC 드라마 ‘밥 잘 사주는 예쁜 누나’의 인기 중심엔 정해인이 있었다. ‘멜로퀸’ 손예진과 단짠 멜로를 선보이며 여심을 뒤흔들었다. 드라마 출연 직후부터 신드롬에 가까운 인기를 모았지만, “대세란 타이틀이 여전히 적응 안되고 두렵다”고 말하는 정해인을 만났다.
Q. ‘예쁜 누나’는 배우 정해인에게 어떤 드라마였나.
-어떤 형용사로도 표현이 안 된다. 5년, 10년, 아니 20년이 지났을 때 다시 찾아보고 싶은 제 스스로의 작품 같은 거다. 드라마 OST였던 ‘Something In The Rain’이나 ‘Stand By Your Man’을 들었을 때 2018년 봄이 확 생각날 것 같다.
Q. ‘서준희’가 곧 정해인이 아닌가 싶었다.
-내가 생각해도 ‘서준희’는 너무 멋진 남자다. 일편단심 사랑이다. 사랑밖에 모른다. 자신의 실리를 따지지 않고 사랑에 전념할 수 있다는 게 판타지라 생각한다. 그런 남자가 어딘가엔 있을 거다. 대본을 보면서 놀란 지점들이 많았다. ‘서준희’도 그렇고 저도 그렇고 진지한 편이다. 어른스러운 면도 있다. 그런데 둘 다 재미없는 인간이다. 그래도 서준희는 저보다 좀 더 유머러스하다.(웃음)
Q. ‘예쁜 누나’만의 매력은 무엇이었나.
-남녀가 사랑할 때 전화 안 받고 그런 게 큰 걱정이다. 지구 반대편 어디가에선 내전하고 전쟁하지만 개인적으론 내가 사랑하는 여자와 연락이 되지 않는다는 건 공포다. 그런 사소한 것들을 갈등으로 풀어내 보여줬다는 게 대단하다 느꼈다. 저희 드라마는 카메라 세팅이 많이 바뀌지 않았다. 훔쳐본다는 말이 거기서 나오는 거다. 감독님이 ‘카메라가 어디에 있는지 신경 쓰지 말고 연기하라’고 하셨다. 심지어 어떤 신은 뒤통수만 나온다.
Q. 감각적인 연출, 정적인 카메라 워킹으로 유명한 안판석 감독님과 작업은 특별했겠다.
-2분, 5분짜리 신이 있으면 촬영시간도 5분이다. 그게 너무 놀라웠다. 감독님이 정말 대단하고 위대한 분이란 생각이 들었다. 리허설도 별로 안하신다. 배우들은 대본을 완벽하게 숙지해야 된다. 안 그러면 공포의 현장이다.(웃음) 끊어갈 수 없으니까 다 롱신 원신 원컷이다. 준비도 분석도 많이 해가야 한다. 대본을 눈으로 많이 읽었다. 말로 연습한 것은 별로 없었다. 말할수록 틀에 갇히는 기분이 드니까 수도 없이 대본을 읽었다.
Q. 촬영장도 배우들을 위한 현장이었다고?
-16부작 미니시리즈를 이렇게 만들 수도 있구나, 놀라웠다. 12시간 촬영을 넘긴 적이 거의 없다. 손에 꼽아야 한두 번? 잠 잘 거 다 자면서 촬영했다. 분량이 가장 많은 누나와 저도 하루 7~8시간씩 잤다. 감독님은 신에 대한 철학과 전체적인 그림들에 대해 명확한 콘티가 있으신 것 같더라. 정말 찍어야 될 것들만 찍고 찍지 말아야 할 것들은 과감하게 안 찍는다. 촬영을 하면서도 편집을 하시는 것 같더라. 처음엔 ‘왜 안 찍지?’ ‘왜 안 따지’ 그런 생각도 했다. 다음 신으로 바로 넘어가버리니까 어안이 벙벙했다. 촬영 초반엔 감독님 성향을 잘 몰라 계속 따라다니면서 어떻게 찍으시는지를 봤던 기억이 있다. 보다 보니 알겠더라.
Q. 그래서 한번 작품을 하게 되면 다들 ‘안판석 사단’에 들어가고 싶어하나 보다.
-그럴 수밖에 없다. 이런 촬영현장은 없다. 단 한명도 소리를 지르는 사람이 없었다. 예진 누나나 저는 16부작 대본을 다 보고 들어간 거지만 스태프 분들은 그때그때 촬영하면서 대본을 받았다. 감독님이 이 말씀을 해주더라. 막내 스태프들이 대본을 읽고 구석탱이 가서 울고 있더라고. 모두 한 마음 한 뜻으로 작품을 사랑하고 같이 갔던 것 같다. 보통은 언제 끝날까, 언제 집에 갈까 계산하기 마련인데 그런 게 없었다. 막내 스태프들 이름 다 외우고 보듬어주니까 저도 존중받는 기분이 들었지만 거기 모든 분들이 그랬을 것이다.
Q. 난생 처음 시청자 입장에서 보게 된 작품이라고 했다.
-감독님의 카메라 앵글엔 철학이 담겨있다. 배우가 연기를 덜 해도 거기 있는 화면이 이미 연기를 하고 있다. 조명도 정말 자연스럽다. 자체적인 것들을 이용한다. 너무 안 보인다 싶으면 호롱불 하나 갖다놓고 얼굴만 보이게 해주신다. 배우의 얼굴을 자주 안 보여주는 이유가 중요한 때 보여주는 거라 생각하시는 거다. 얼굴을 딱딱딱 보여주는 건 훼손된다고 생각하시더라. 저한테 ‘준희야 연기를 조금만 덜해 덜해’ 그러시는데 그건 대충하라는 얘기가 아니다. ‘이미 카메라 앵글이 연기를 하고 있으니 넌 이만큼 해도 충분히 그게 보일 거다’는 얘길 나중에 해주셨다. 머리를 한 대 맞은 것 같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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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예쁜 누나’를 통해 ‘국민 연하남’이 된 정해인. 제공| FNC엔터테인먼트 |
Q. 올해 TV 드라마가 건진 ‘대어’로 불린다.
-운이 좋았다. 안판석 감독님, 손예진 선배님과 호흡한다는 자체가 있을 수 없는 일이 일어난 거니까. 손예진 선배님이 그동안 쌓아온 커리어가 있는데 조금이라도 누가 될까 걱정했다. 그 어색함이 초반에 연기로 나왔다. 누나가 촬영 초반에 저에게 문자를 보내줬다. ‘해인이 자체가 서준이니까 어색하면 어색한대로 좋으면 좋은대로 그냥 하면 될 것 같다’고. 그 문자가 엄청나게 큰 힘이 됐다. 촬영 내내 그걸 캡처해놓고 보면서 혼자 힘을 냈다. 피부로 느꼈다. 누나가 저를 연기자 후배나 상대배우가 아닌 한 사람, 인간적으로 존중해준다는 걸. 그래서 좋은 호흡이 나왔다 생각한다.
Q. 주변 반응은 어땠나. 특히 부모님이 무척 좋아하셨을 듯 하다.
-어제도 저희 어머니가 감사한 분들을 모아놓고 식사를 대접했는데 그 카드는 제 카드로... 그 전엔 부모님이랑 식당 가서 고기 먹으면 항상 계산해주셨다. 예전에도 제가 계산하겠다고 하면 ‘뭘 됐어 임마’ 하시면서 극구 말리셨다. 그런데 최근에 제가 ‘계산할게요’ 했더니 ‘그래, 그럼 그래라. 잘 먹었다’ 하시면서 쓰윽 빠지더라. 되게 기분이 뿌듯했다. 사랑하는 사람에게 맛있는 음식을 대접하는 게 큰 행복이구나를 느꼈다.
Q. ‘대세’라는 타이틀이 부담스럽고 도망치고 싶다고 했는데, 지금은 어떤가.
-지금도 적응이 안 된다. 도망치고 싶을만큼 부끄럽다. 그런 얘길 들으면 더 어깨가 무거워져서 더 숙여지는 것 같다. 한없이 작아지는 것 같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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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손예진과 정해인의 멜로 연기는 실제 연애를 훔쳐보는 것 같았다. 제공| FNC엔터테인먼트 |
Q. 손예진이란 배우는 어땠나.
처음엔 많이 어렵고 무서웠다. TV나 영화로만 봤던 깜짝 놀랄만한 사람이었다. 그 어려움이란 게 대화할 때 얼굴 표정이 관리 안될 정도로 어려웠다. 실제로 만나고 대화해보니 갖고 있던 선입견이 산산조각났다. 생각했던 것보다 많이 털털하고 가식이 전혀 없더라. 솔직하고 잘 웃으시고. 웃음이 되게 많았다. 저를 무장해제시키는. 세트장이나 야외촬영에서도 잘 웃어 스태프분들을 편안하게 만들어준다. 거기에 감동받았고 존중해주는 걸 피부로 느껴서 편하게 마음을 연 것 같다.
Q. 제목처럼 밥 잘 사준 누나는 아니었나?
-밥은 극중에서도 준희가 거의 샀다. 실제로도 제가 많이 산다.(웃음)
Q. 한마디로 표현한다면 어떤 누나였나?
-어떤 수식어로도 표현 안된다. 지금까지 촬영했던 배우 중 가장 연기 열정이... 열정이란 단어를 선배님에게 갖다붙이는 게 맞나 싶을 정도다. 보통 열정이란 말은 신인 배우들한테 연기 열정, 패기 이러는데... 그 어떤 배우보다 연기열정이 뜨거웠다. 연기 외적인 것들도 대단했다. 말도 안되게. 감독님 말마따나 무하마드 알리 같았다. 대기실에 나와서 촬영장으로 걸어가고 카메라 앞에 서기 전까지의 과정이 링 위에 올라가는 모습 같았다. 가볍지 않고 비장함이 느껴졌다.
Q. 너무 리얼해서 정말 사귀었으면 좋겠다는 반응이 많았다
-‘사귀어라, 응원해줄게요’ 이런 반응이 있었는데 누나랑 저랑 너무 뿌듯했다. 다큐멘터리가 아니고 픽션이지만 매순간 진심을 다해 연기하려 노력했다. 그 진심이 어느 정도는 전달된 것 같아 뿌듯하고 감사한 마음이 있다.
Q. 남자 정해인은 사랑할 때 ‘서준희’와 어떻게 다른가.
-저도 올인하는 타입이긴 하다. 하지만 그렇게 모든 것을 다... 나도 그럴 수 있을까, 이번 작품을 통해 진정한 사랑을 돌이킬 수 있는 소중한 시간이었다. 사랑의 의미에 대해서.
Q. 서준희 같은 사랑을 해본 적이 없나.
-아직은 없는 것 같다.
Q. 과거 인터뷰에서 배우는 사랑이 계속되어야 한다고 얘기했다.
-끊임없이 사랑은 해야 되는데... 이번 작품을 하면서 사랑에 대한 정의가 스스로 바뀌었다. 우선 여자남자는 대화를 많이 해야 된다. 눈빛만 보곤 모를 수 있으니 더 많은 소통을 해야 한다는 걸 깨달았다. 다 안다고 생각했는데 혼자만의 생각이었다. 모르는 거다. 머리에 무슨 생각을 하고 있는지, 어떤 마음인지, 날 얼만큼 사랑하는지. 그래서 용기가 필요하고 솔직해야 하는 것 같다.
Q. 눈빛만 봐도 알 수 있을 거라 착각했던 시절도 있었나.
-그땐 20대였고 지금은 30대 초반이다. 진짜 연애 이야기라서 어떤 게 진짜 연애일까를 스스로 고찰했던 것 같다. 물론 그 전에 사랑했던 것도 그 나이에 그 가치관에선 진짜 사랑이었을 거다. 하지만 인간은 나이를 먹고 발전하고 성숙해지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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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정해인은 “하루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배우가 되고 싶다”고 말했다. 제공| FNC엔터테인먼트 |
Q. 왕관의 무게가 무거울수록 조금만 실수해도 크게 화제가 된다. 백상 논란도 있었다.
-그것 또한 배우가 해결해나가야 할 숙제고 도전해가야 할 부분이라 생각한다. 인간이기에 두려움과 공포는 항상 있다. 계속 부딪히고 해결해나가고. 그럴수록 스스로를 돌아보고, 주변을 살피고 더 귀 기울이고 더 조심하고 더 겸손해야 한다. 그렇게 해야하는 게 맞는 것 같다.
Q. 악플도 보나.
본다. 안 볼 수 없다. 악플 다는 사람도 존중한다. 그들도 하나의 인격체이고 자기 의사를 표명한 거기 때문에. 크게 동요하지 않으려고 노력은 하고 있다. 앞으로 평생 노력해야 한다. 제 일이 그런 일이니까.
Q. 인기가 치솟을수록 과거사진이 나돈다. 졸업사진이 올라왔더라.
-어두운 과거가 또.. 다 괜찮다. 인정한다. 그땐 연기자가 꿈이 아니었고 평범했고 군것질 좋아하는 학생이었다. 초등학교 4학년 때까지 별명이 날쌘돌이였는데 5학년부터 급격히 살이 쪄서 중학교 때 정점을 찍었다. 고등학교 가면서 운동을 했고 살이 빠지기 시작했다. 그러다 다시 대학교 때 빠졌다. 안 그래도 졸업사진이 왜 안 올라오나 했다.(웃음) 졸업사진은 나도 보면서 놀랐다. 다 안고 갈 거다. 그것도 제 모습이니까.
Q. 동생도 연기하고 싶다고 했는데.
-형이 하는 건 다 관심 갖는 것 같다. 극구 말렸다. 부모님 맘 고생 시키는 건 저 하나면 충분하다. 동생은 안전한 걸 했으면 좋겠다. 근데 또 매니저를 얘기하더라.(웃음) 이렇게 자꾸 시련을 준다. 하하. 아직 20대 중반이라 미래에 대한 고민을 많이 할 나이다. 찾고 있는 것 같다. 7살 터울인데 지금은 둘도 없는 친구다.
Q. 동생도 잘 생겼나.
이미 동생이 많이 오픈이 되어서... 그냥 귀엽게 생겼다.
Q. 인간 정해인을 행복하게 하는 것은.
한작품 한작품 할 때마다 똑같이 느낄 거다. 이건 자신할 수 있다. 저는 일상에서 주는 사소한 행복을 감사하게 생각한다. 중요한 신이 끝나고 집에 돌아와 샤워하면서 맥주 먹을 때. 그 목넘기는 행복감, 친구랑 동네에서 고기 구워먹을 때. 그런 것들이 행복한 건데 많이 놓치고 산다. 오늘 하루가 행복하지 않으면 내일 하루도 행복할 수 없다 생각한다. 언제를 위해 희생하고 내일도 희생하고 그런 것들은 저를 힘들게 한다는 걸 잘 알고 있다. ‘어떤 배우가 되고 싶으세요?’ 한다면 오늘 하루를 행복하게 사는 배우이고 싶다고 말한다.
Q. 일기도 쓰나.
매일 쓴다. 사건 위주의 일기라기 보다 느끼는 감정을 매순간 체크해놓고 있다. 요즘엔 스마트폰으로 쉽게 할 수 있다. 그걸 보면 되게 재밌다. 요즘엔 매사가 행복하다는 얘기만 있다.
Q. 20대와 30대, 달라진 것이 있다면.
묵묵히 주어진 감사한 길을 걸어가고자 하는 마음은 변치 않았다. 거기에 플러스 책임감이 따르는 것 같다. 좋은 부담감이라 표현할 수 있다. 저는 명함이 없다. 연기가 명함이 될 수 있도록 책임감을 갖고 일해야 하는 것 같다.
Q. ‘슬기로운 감빵생활’을 끝내고 쉬고 싶다고 말했는데.
건강상 문제가 생겨 쉬고 싶단 생각이 들었다. 그런데 저는 이 작품을 통해 치유를 받았다. 행복하게 일하면서 심적으로나 신체적으로. 잠깐의 휴식기를 갖고 빠른 시일 내에 연기로 다시 보여드릴 생각이다.
Q. 교복 입고 싶다는 바람은 언제 실현되나.
하하하! 그건 이젠 끝난 것 같다. 이미 31살 서준희를 연기했으니. 19살이면 지금보다 12살 어린 친구를 연기해야 하는 건데... 끝났다고 생각한다.(웃음)
PS/(예정된 인터뷰 시간 종료 후) 사진 촬영 없는 데도 양
제 스스로에 대한 자부심이다. 그리고 기자분들을 존중하기 때문에 갖춰입은 거다. 그저께 일본에서 인터뷰 하고 왔는데, 양복 입고 인터뷰 하자는 아이디어를 제가 냈다. 거기 분들도 약간 놀라시더라. 앞으로도 이렇게 할 거다. 모든 인터뷰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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