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극과극 걸크러쉬 영화가 극장가에 상륙했다. 영화 그 이상의 의미를 지닌 ‘허스토리’ 그리고 ‘신세계’ 박훈정 감독의 첫 여성 액션물 ‘마녀’가 바로 그 주인공들이다.
지난 27일 아프지만 위대한 역사를 스크린으로 옮겨 놓은 영화 ‘허스토리’와 새로운 결의 여성 액션물 ‘마녀’가 동시 개봉했다. 두 작품 모두 개봉 이후 줄곧 상위권에 안착하며 순항 중인 가운데 개봉 첫 주말을 맞아 관객들의 마음을 제대로 홀릴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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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품마다 깊이 있는 내공으로 감동을 준 김해숙은 ’허스토리’에서 고통과 분노에 얼룩진 위안부 피해자의 감정을 자신만의 색깔로 표현해낸다. 덤덤하지만 묵직하고, 따뜻하면서도 애처로운 정서로 강한 울림을 선사한다.
또한 자신의 상징인 ‘우아함’과는 전혀 다른 결의 놀라움을 안길 김희애는 극 중 6년 간 관부 재판을 이끌어가는 원고단 단장 문정숙 역을 맡았다. 문정숙은 당시 부산의 여행사 사장으로 우연히 피해자 할머니들의 사연을 알게 된 이후 부끄러움과 책임감으로 법정 투쟁을 이끈다. 여장부 중의 여장부로 파격 변신한 김희애는 그녀를 표현해내기 위해 머리카락을 짧게 잘랐고, 살은 5kg 넘게 찌웠다. 부산 사투리로 거친 언사도 서슴지 않고 툭하면 남성들과 드잡이를 한다.
올해 제71회 칸 국제 영화제에서 첫 공개돼 강렬한 인상을 남긴 영화는 배우들의 진정성과 감독의 따뜻하고도 단단한 신념으로 묵직한 울림을 선사한다. 뿐만 아니라 우리가 이 문제를 현실적으로 어떻게 바라보고 대처해 나아가야 할지에 대해 보다 깊은 고민을 하게 만든다.
그동안 ‘위안부 문제’는 민족의 큰 상처로 환원하는 경우가 많았지만 민 감독은 상징적 존재가 아닌 한 명의 여성, 인간으로서 개별 할머니들의 아픔을 바라본다. 당시의 처절함을 재연하기 보단 법정 증언대를 통해 개개인의 사연을 들려준다.
존재 자체가 죄인인 마냥 움츠려든 할머니들은 재판 과정을 통해 조금씩 변화하기 시작해 괴로웠던 과거의 고통과 용감하게 대면하고 극복해간다. 자신들의 아픔을 위로하고 끌어안는 이들의 진심에, 같은 고통을 곁은 서로 서로의 진심에, 그리고 절대 물려주고 싶지 않은 바라는 후세에 대한 애정으로 다시금 삶을 꽃피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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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난하지만 바르고 따뜻한 부모님의 사랑 속에서 뭐든 잘 하는 모범생으로 자란 자윤(김다미). 사실 그녀에겐 비밀이 있다. 10년 전 의문의 사고가 일어난 시설에서 탈출해 홀로 살아남았고 그 충격으로 과거의 기억을 잃었다. 나이도 이름도 모른 채 그저 자신을 거두고 키워준 한 부부의 딸로 씩씩하고 밝고 건강하게 살고 있을 뿐이다.
그러던 중 (절친한 친구의 권유로) 치매에 걸린 엄마, 다리가 불편한 아버지를 위해 돈이 필요한 자윤은 무려 5억 상금이 걸린 TV오디션에 출전하게 된다. 출중한 가창력으로 단숨에 화제의 인물로 떠오른 뒤 의문의 인물들이 등장하기 시작한다. 자윤의 주변을 맴도는 섬뜩한 눈빛의 남자인 귀공자(최우식)을 비롯해, 그녀를 찾는 뇌분야 세계 최고의 권위자인 닥터백(조민수), 그리고 살벌한 인간병기 미스터 최(박희순)까지.
영화는 크게 1,2부로 남긴다. 자윤의 태생이, 그녀가 어떤 능력을 가지고 있든지 간에 따뜻한 환경 속에서 자신만의 소소한 삶에 만족하며 지내고 있는 자윤의 현재와, 과거로 인해 다시금 끔직한 자신과 마주한 채 자신만의 방식으로 맞서야 할 수밖에 없는 또 다른 현재, 그리고 이 두 현실을 통합시키는 또 다른 ’마녀’들. 도망친 자윤과 도망치지 못해 그 끔찍한 비밀 속에서 자라난 아이들. 이들이 만나 벌어지는 피의 향연. 이야기가 진행될수록 감독이 말하고자 하는 명제에 대한 물음들은 본격적으로 펼쳐진다.
본래 시리즈물로 기획한 탓에 초반부는 다소 늘어지는 감도 없지 않다. 일련의 상황에 대한 설명 또한 그렇다. 하지만 후반부에 휘몰아치는 스피디하면서도 신선한 액션의 향연과 기존의 여성 캐릭터와는 다른 주체적이고도 입체적인 자윤 캐릭터의 해석이 주는 새로움 덕분에 전혀 지루하지 않게 볼 수 있다.
무엇보다 자윤은 정의감에 불타는 유치한 슈퍼 히어로도, 어떤 비극이나 아픈 기억에 완전히 잠식돼버린 수동적 캐릭터도 아니다. 모성애나 눈물샘을 자극하는 뻔한 캐릭터도 아니다. 자신이 선택할 수 없었던 환경에서 태어났지만 자신이 선택한 길을 따라 자신이 살고자 하는 삶을 위해 싸울 뿐이다. 지키고 싶은 누군가를 위해 자신의 행복을 위해 지극히 공감할 만한 선택들을 한다. 초월적 존재지만 너무도 인간다운 무엇으로 그려진다.
모든 등장 인물들은 자윤을 위한 도구로만 쓰이지 않는다. 따져 보면 각각의 ’그럴 만한’ 사연들이 제대로 녹아있고 인간적이면서도 만화적이고 슬프면서도 파괴적이다.
유난히 시리즈물의 활약이 두드러지는 요즘, ‘마녀’ 역시 그 시작점에 놓였다. 새로운 가능성과 의미, 장점들을 지닌 영화가 관객들로부터 얼마나 인정 받을 수 있을지 귀추가 주목된다.
kiki2022@mk.co.kr[ⓒ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