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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양소영 기자]
대중에게 어떤 배우로 기억될지가 스스로의 숙제라던 고(故) 배우 전미선은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했다. 연기의 즐거움을 이야기하고, 따스한 미소가 아름다웠던 전미선이 발인을 마치고 팬들 곁을 영영 떠났다.
고(故) 전미선의 발인식이 2일 오전 5시 30분 엄수됐다. 유족의 뜻에 따라 비공개로 발인이 진행됐으며 고인은 경기도 이천시 마장면에 마련된 장지 에덴낙원에 잠들었다.
전미선은 지난달 29일 오전 11시 43분께 전북 전주 한 호텔에서 숨을 거둔 채 발견됐다. 당시 전미선은 연극 ‘친정엄마와 2박3일’ 공연을 위해 전주를 찾았다. 평소 우울증 치료를 받던 전미선은 숨지기 전 아버지와 마지막으로 통화를 나눴으며, 객실에 유서는 없던 것으로 전해졌다.
소속사 보아스엔터테인먼트 측은 “평소 우울증으로 치료를 받았으나 슬픈 소식을 전하게 됐다”며 고인의 명복을 빌어달라고 당부했다.
1989년 드라마 ‘토지’로 데뷔한 전미선은 드라마 ‘여명의 눈동자’ ‘전설의 고향’ ‘인어아가씨’ ‘야인시대’ ‘제빵왕 김탁구’ ‘해를 품은 달’ ‘구르미 그린 달빛’, 영화 ‘8월의 크리스마스’ ‘번지점프를 하다’ ‘살인의 추억’ ‘숨바꼭질’ 등에 출연했다. 연극과 시트콤, 예능 등 장르를 가리지 않고 활동하며 큰 사랑을 받았다.
전미선은 연이어 시청률 높은 작품에 출연하며 ‘흥행 보증 수표’로 떠오르기도 했다. 특히 사망 4일 전까지 유작이 된 영화 ‘나랏말싸미’ 제작보고회에 참석, 특유의 부드러운 미소를 보여줬기에 갑작스러운 비보가 더욱 충격으로 다가왔다.
직접 만난 전미선은 따스한 미소와 말투에서 온화한 성정이 묻어났지만, 연기에 대한 열정은 뜨거운 배우였다. 지난해 9월 옴니버스 영화 ‘봄이 가도’ 인터뷰를 위해 전미선을 마주했다.
‘봄이가도’는 장준엽 진청하 전신환 감독의 작품으로, 세월호 사고 후 남겨진 이들의 이야기를 담았다. 누군가에겐 ’작은 불씨’가 될 이 영화에 전미선이 출연한 이유는 영화를 하는 후배들을 도와주고 싶어서였다. 그리고 남겨진 사람들을 위로하고 싶어서였다.
전미선은 “학교에서 강의하면서 내가 이 아이들을 어떻게 도와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다가 전석호 씨가 후배들을 도와주는 모습을 보고 저 역시도 해볼까 싶었다. 우리 한번 해보자 하는 마음으로 참여했다”고 설명했다.
그의 말 한마디에서 후배들을 돕고자 하는 선배의 따뜻한 마음을 고스란히 느낄 수 있었다. 한 시간 남짓한 인터뷰에서 그는 “죽기 전까지 연기하고 싶다”고 말하기도 했다. “어떤 배우로 기억될지는 나에게도 숙제”라며 50대를 앞두고 연기자로서 고민이 많다고도 털어놨다.
나이가 들면서 어머니 캐릭터로 한정되는 것에 대한 물음에는 “옛날에는 내조만 하는 살신성인의 어머니였지만, 앞으로 10년 뒤면 2028년이다. 그때의 어머니는 또 어떤 어머니일지 모른다. 고민해야 한다”며 자신의 자리에서 최선을 다하고자 했다.
그러면서도 기억력이 사라질 때까지 연기하고 싶다는 고백에서 연기에 대한 애정과 열정을 느낄 수 있었다. 더 나은 연기를 위해, 선배 연기자들의 걸어간 길을 자신도 걸어갈 수 있길 바랐다.
전미선은 ‘친정엄마와 2박3일’에서 호흡을 맞추고 있는 강부자에 대해 언급하며 “매일 공연에서 하루에 하나씩만 배워도, 한 달 공연이면 많은 걸 배울 수 있다. 선생님에게 누를 끼치면 안 되니까 긴장도 더 된다. 그렇지만 오늘은 선생님에게 뭘 배울까 하는 마음으로 열심히 하고 있다. 10년을 같이 했는데도 다 못 가져 왔다”고 존경심을 표했다.
늘 작품 안에서 그 이상을 해냈던 배우 전미선, 그럼에도 더 나은 연기자와 사람이
그 따스한 미소와 연기를 다시 볼 수 없다는 사실이 슬프다. 여전히 믿기지 않는 그의 죽음만큼이나 전미선은 우리가 사랑했던 천생 배우로 기억에 남을 것이다.
skyb1842@mk.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