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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일경제 스타투데이 한현정 기자]
역시 새 단장의 기운이 물신 느껴진다. 열정과 포부가 대단하다. 다만 조금 넘친다. 나무랄 데 없는 좋은 의도뿐이지만, 그것을 현실화하는 데 다소 노하우가 부족한 듯하다. 국내 최대 영화축제, ‘부산국제영화제’는 재도약의 포부를 이루고 유종의 미를 거둘 수 있을까.
과거의 잡음을 딛고 다시 태어난, 제24회 부산국제영화제(BIFF)가 지난 3일 태풍의 위협에도 무사히 출정식을 마쳤다. 화려하진 않지만 다양성을 추구하는 새로운 여정, 그 시작을 알리는 개막식이 진행된 한편, 개막작인 ‘말 도둑들. 시간의 길’도 베일을 벗었다.
지금까지 개막식에는 스타 배우와 감독 등을 필두로 영화 관계자 및 주요 기관·단체장 등이 주체가 된 행사로 꾸며졌다면 올해는 “소통과 공감”이라는 주제 아래 소외, 소수계층을 포용하고자 공을 들였다.
그 시작으로 미얀마 카렌족 난민 소녀 완이화가 무대에 올랐다. 태국 난민캠프에서 생활하다 한국에 정착한 완이화는 ’나는 하나의 집을 원합니다’를 불렀고, 그녀가 노래할 때 다문화 가정 청소년들로 구성된 ’안산 안녕?! 오케스트라’와 김해문화재단 글로벗합창단, 부산시립소년소녀합창단 등 모두 250여 명에 이르는 합창 인원이 무대에 함께 선다. 이날 개막식의 사회를 맡은 정우성과 이하늬는 내레이션을 비롯해 함께 무대에 올라 진심을 나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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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만 “올해 개막 공연은 민족, 국가, 종교, 성, 장애를 뛰어넘어 하나 된 아시아로 도약하고자 하는 부산국제영화제의 취지를 담았다”며 의미를 강조했지만, 이 같은 다양한 메시지 중에서도 ‘난민’에 과도하게 집중된 듯한 인상을 지울 순 없었다. 지속적인 관심이 필요한 이슈 중 하나인 주제가 마치 전체로 보여 영화제 본연의 축제 분위기가 다소 낯설게 느껴지기도.
특히 평소 난민 문제에 대해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며 때로는 논란의 중심에 서기도 한 ‘유엔난민기구 친선대사’이자 배우인 정우성이 함께 한 만큼, 지나치게 강조된 느낌이 강하게 풍겨 축제와는 적잖은 이질감을 선사해 아쉬움을 남겼다.
아시아 대표 영화제로의 재도약’ ‘사회적 소수자에 대한 배려’ ‘새 얼굴 발굴’ 등 야심찬 슬로건을 외쳤지만 어쩐지 자격요건만 끼워 맞춘 듯한, 개막작 ‘말도둑들, 시간의 길’(이하 ‘말도둑들’) 역시 공개됐다.
개막작이 영화제 시작을 알리는 얼굴이자 주제의식을 단적으로 담아내는 작품인 만큼 지대한 기대가 쏠렸지만 왕관의 무게를 견디기엔 여러모로 역부족. 지난해에는 정상화를, 올해에는 야심찬 재도약을 선언한 만큼, ‘화려한 외피를 걷어내고 메이저 영화제다운 내실을 보여주겠노라’라며 갖가지 의미를 부여했지만 열정이 너무 앞선 듯하다. 흥미도, 감동도, 그 의미도 기대치를 채우지 못한 채 진한 아쉬움을 남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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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자흐스탄 버전의 서부극으로 설명했던 ‘말 도둑들. 시간의 길’은 가족을 사랑하는 가장이 마을 사람들과 말을 팔러 갔다가 말 도둑들을 맞닥뜨리며 시작된다. 지난해 칸영화제 여우주연상을 받은 사말 예슬리야모바가 출연, 2015년 제20회 부산국제영화제에서 뉴 커런츠상을 수상한 예를란 누르무함베토프 감독과 리사 타케바 감독이 공동 연출했으며, 2017 부산국제영화제의 아시아프로젝트마켓 선정 작.
부산영화제에서 유난히 애정을 쏟은 신예 감독들의 작품, 일본(모리야마 미라이)과 카자흐스탄(사말 예슬라모바)이라는 두 아시아 배우들의 출연 등을 이유로 개막작으로 선정됐지만 정작 내실은 함량 미달. 형식적인 조건에만 부합할 뿐, 영화제의 간판이 될만한 킬링 포인트를 지니진 못해 큰 인상을 남기지는 못했다.
갑작스럽게 사고로 세상을 떠난 아버지와 뒤늦게 등장한 또 다른 아버지. 그리고 다시 맞닥뜨리는 말 도둑들, 여운을 의도했지만 서운함만 남긴 결말까지. ‘서부극’이라는 수식어가 민망할 수준의 긴장감 없는 액션과 어설픈 연기, 설정과 전개는 진부한데다 주제의식 또한 모호해 호불호가 극명하게 엇갈리기도 했다.
앞서 부산영화제 측은 “사회적 약자 배려, 그들의 문제에 공감하는 영화가 (국내 영화제에서는) 많지 않고, 영화제에서 별로 보이지 않는다. 가부장적이거나 남녀 차별적인, 다소 편향된 관점의 프로그래밍이 반복될 가능성을 개선하고 지양해 아시아 최고의 영화제로 부상할 것”이라고 강조한 바 있다.
한편, 이날 개막식은 정우성 이하늬가 사회를 맡은 가운데 개막식에 앞서 천만 영화 ‘극한직업’의 이병헌 감독과 배우 류승룡 진선규 이동휘 공명과 ‘엑시트’의 이상근 감독과 조정석 임윤아가 레드카펫에 올랐다. 봉준호 감독이 연출한 천만 영화 ‘기생충’의 배우 조여정 박명훈도 레드카펫을 빛냈다. ‘유열의 음악앨범’의 정지우 감독과 배우 정해인, ‘집 이야기’의 주인공 이유영 강신일, ‘니나 내나’의 장혜진 태인호, ‘야구소녀’ 이주영 이준혁 염혜란 등도 함께했다.
이날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의 주인공으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의 이름이 호명됐다. 개막식에 참석하지 못한 고레에다 히로카즈 감독은 영상을 통해 “올해의 아시아 영화인상을 주셔서 진심으로 감사드린
부산국제영화제는 오는 12일까지 영화의전당, 롯데시네마센텀시티, CGV센텀시티 등 5개 극장 37개 스크린에서 초청 영화 303편을 상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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