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가 문 열어, 난 대우차엔 손도 대기 싫으니까!”
자동차를 소재로 한 할리우드 액션 영화 ‘택시: 더 맥시멈(2004)’에서 주인공은 대우차 라노스를 쓰레기 취급했다. 심지어 이 차는 갖은 고초를 겪다 결국 불길에 휩싸여 비웃음 속에 폐차되는 굴욕을 당한다.
자동차 마니아들의 바이블 격인 ‘분노의 질주’ 시리즈 중 ‘도쿄 드리프트’에서는 “내가 너한테 줄 차가 있겠어? 현대라면 모를까”라고 현대차를 줘도 안타는 차 취급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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할리우드 영화 속 한국차는 주로 악당이 타고 나와 총질을 하거나, 차안에서 폭탄이 터지거나 외계생명체에게 밟혀 사라지는 처량한 신세.
스티븐스필버그의 영화 '우주전쟁'에서는 외계인에 밟혀 흔적도 없이 찌그러지는 역할로 단 1초 등장한다. 이라크에 참전한 폭발물 제거반의 임무를 다룬 '허트로커'에서 현대 EF쏘나타의 등장 시간은 10분 가량으로 엄청나게 길지만, 결국 차에 실린 폭탄이 터지며 처참한 몰골을 보여주는 역할이다.
헐리우드에서 찍은 한국 영화에서도 신세는 마찬가지. 미국에서 촬영한 국산 영화 ‘디워’에서도 '이무기'에게 박살나는 차가 하필 한국차다. 제작비가 절약된다는 단순한 이유에서다. 말하자면, 영화속에 한국차가 나오면, 다음 장면은 항상 대형 사고로 폐차되고 마는게 관행처럼 돼 있었다.
이처럼 국산차는 할리우드 영화 속 비난과 조롱의 대상이었다. 미국에서 한국차 이미지는 실로 한심한 수준이었다는 반증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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당시 국산차 이미지는 ‘싸구려 차’였다. 일찌기 미국에서 가장 저렴한 차라는 점을 무기로 '수출 신화'를 거뒀던 '엑셀'의 대부분이 크고 작은 고장으로 말썽을 부렸고, 심지어 미국 사회에서 가장 가난한 사람들이 타는 차라는 인식마저 팽배하면서 브랜드 이미지가 땅에 떨어졌기 때문이다.
◆ 한국산 자동차 '귀한 몸' 됐다
2000년대 중반부터는 영화와 드라마속 한국산 자동차 이미지가 조금씩 바뀌어갔다.
지난 2004년 개봉한 ‘본 슈프리머시’에서는 현대차 EF쏘나타가 멋진 추격전을 담당했다. 그것도 오프로드에서 SUV 랜드로버를 맹렬히 추격했다. 추격전은 약 5분 동안 멋지게 표현됐다. 그리고 이례적으로 현대차의 로고도 선명하게 보이는 수혜까지 얻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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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현대차에서 협찬한 것이 아니고 영화 제작사 측에서 직접 차를 구입해 촬영한 것으로 알려졌다. 범상치 않은 운전 솜씨를 가진 악당이 '지극히 평범한 차'를 타고 추격한다는 이미지를 주기 위해서였지만, 현대차 입장에선 돈 한푼 안들이고 영화에 5분 이상 노출되는 광고 효과를 거둔셈이다.
어두운 조역이던 국산차가 갑자기 일약 스타로 올라선 영화도 나타났다. 크리스토퍼놀란이 제작, 연출을 맡고 레오나르도디카프리오가 주연한 영화 ‘인셉션’에서 현대차 제네시스는 ‘꿈속의 자동차’로 등장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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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제네시스는 3분 동안 극도로 우수한 주행성능을 보여주며, 심지어 기차와 들이 받고도 멀쩡하게 버텨내는 장치로 등장한다. 어차피 꿈속이니 표현 못할게 뭐 있을까. 이로 인해 국내 소비자들은 물론, 세계 수천만 관객들에게 매혹적이고 강렬한 인상을 남겼다. 차량의 성능이나 안전성도 효과적으로 어필됐다는 평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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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서 호응을 얻은 탓인지, 크리스토퍼 놀란 감독은 최근 '베트맨 다크나이트 라이즈'의 마지막 장면에 눈에 보일듯 말듯하게 현대 투싼을 집어넣어 눈썰미 좋은 네티즌들의 관심을 끌기도 했다. 인셉션때 PPL에 대한 보답으로 넣은 것이 아니냐는 얘기도 나왔다.
사실 이젠 분위기가 반전됐다. 요즘 영화치고 한국산 차를 싸구려로 묘사하는 영화는 더 이상 없다. 영화는 현실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인도 영화 '세 얼간이들'에서는 "그 사람 요즘 너무 잘나가서 얼마전에 현대 i10도 뽑았다"는 대사도 나온다. 24시간 동안 잠 한숨 안자고 뛰어다니는 것으로 유명한 '잭바우어'의 ‘24’에도 제네시스가 주목을 받았다. 여기서는 심지어 제네시스의 실내 곳곳이 클로즈업 되며 드라마가 아니라 자동차 광고 영상을 방불케 했다.
물론 일부 영화나 드라마에서 국산차 이미지가 나아지긴 했지만 프리미엄 브랜드와 견주기엔 아직 갈 길이 멀다. 대다수 영화감독들은 누구나 인정할만한 차, 주인공이 타도 손색 없는 차를 등장시키고 싶어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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매력적 디자인을 갖추거나 브랜드 나름의 개성을 가져 주인공 성격을 부각할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겠다. 말하자면 '나쁜 녀석들'에서 윌스미스 차로는 포르쉐가 등장해야 하고, 백투더퓨처에는 드로리안이 등장해야 제격이다. 페라리가 등장하는 차는 수백편이어서 다 셀수도 없다.
인기 영화에서 좋은 역할을 맡은 차들은 없어서 못파는 '비싼 몸'이 된다. 드로리안은 형편없는 품질로 백투더퓨쳐에 나오기 전에 파산했지만, 영화가 히트친 후 수집가들 사이에서 최고의 컬렉션으로 손꼽히게 됐다. 분노의 질주에 나왔던 미쓰비시 이클립스와 수많은 등장 차종들도 중고차 시장에선 없어서 못판다.
최근들어 한국차들이 해외 감독들의 눈길을 조금씩 받고는 있지만 브랜드와 차의 이미지를 향상 시키는데 노력해야 보다 많은 영화에 얼굴을 드러낼 수 있겠다. 또 감독들이 기꺼이 주인공을 태우고 싶을 정도의 멋진 이미지를 갖춰야 비로소 소비자들도 몹시 갖고 싶어하는 '드림카'가 될 수 있겠다.
김상영 기자 / young@top-rider.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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