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매경헬스 특별기획] 유전자 건강혁명 ④왜 나는 술에 약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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술을 마실 때 사람마다 각각 다른 변화가 나타난다. 술을 잘 마시는 사람이 있는 반면 한 잔도 마시지 못하는 사람이 있다.
술뿐만이 아니다. 커피를 물처럼 마시는 사람이 있고 커피 한 잔만 마셔도 가슴이 두근거리는 사람이 있다. 약효가 없는 사람 또는 약 부작용에 시달리는 사람도 있다. 왜 이런 차이가 나타나는 것일까?
우리 몸속에 존재하는 단백질인 '효소(Enzyme)' 때문이다. 인체에는 5천여 개의 효소가 존재한다. 효소의 촉매 작용은 생명을 유지시켜 주는 중요한 과정이다. 효소는 몸 안에 널리 분포되어 생명체의 화학적 반응에 관여한다.
체내로 들어오는 음식이나 영양소, 약물들을 소화•분해하여 필요한 세포에 전달하고 필요 없는 찌꺼기를 체외로 배출하는 모든 과정을 '대사(Metabolism)'라 부른다. 효소는 유전적 특성에 따라 각각의 사람들에게서 대사 차이를 발생시키는 요인이 된다.
술을 분해하는 효소는 알코올 분해 효소인 '알데히드분해효소(ALDH)'다. 이 효소에 변이가 나타날 경우 술을 분해하지 못해 알데히드 물질이 체내에 쌓이게 된다. 음주 후 얼굴이 빨개지고 두통이 생기며 구토를 하는 것은 이러한 이유 때문이다. 술 뿐 아니라 음식과 영양소의 개인 차이도 효소 변이에 기인한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대략 30% 정도가 ALDH 변이를 겪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반면 서양인에게는 드문 것이 사실이다. 때문에 이 효소는 아시아 홍조라는 별칭을 갖고 있다.
한국 문화에서는 계속 술을 먹을 경우 주량이 세질 수 있다는 말을 종종 한다. 사실일까? 한 연구에 따르면 ALDH 변이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계속 술을 마실 경우 식도암 및 두경부암 발병률이 증가하는 것으로 나타났다. (Exp Ther Med, 2012)
과거 한 환자의 유전체 검사를 통해 ALDH 효소 변이가 나타난 것을 볼 수 있었다. 따라서 그 환자에게 술을 가급적 마시지 않는 것이 좋다고 조언했다. 모 회사 사장이었던 그 환자는 술을 계속 마실 수밖에 없다며 이미 수 년 전 식도암에 걸렸었다고 고백했다. 태어난 그대로 유전자에 순응하고 살아야 하는데 그것을 거스른 결과라 생각한다.
대사와 효소의 과정은 매우 복잡하다. 효소 하나에 변이가 있어도 다른 길로 우회하도록 우리 몸은 건강하게 만들어져 있다. 그러나 효소 중에는 비가역적이며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들도 있다. 대표적인 것이 '메틸렌 테트라하이드로 엽산 환원효소(MTFHR)'와 '지방산 불포화 효소(FADS)'다.
MTHFR은 비타민B의 일종인 엽산 대사와 관련된 효소다. 엽산을 분해한 후 DNA의 구조가 되는 염기를 만들고 메틸화를 결정하는 중요한 효소로 꼽힌다. 만약 이 효소에 유전적 변이가 나타나는 경우 독성 물질인 호모시스테인이 증가해 심혈관 질환 및 암, 치매, 신생아 기형 등의 사례를 초래할 수 있다. 한국인 중 약 20% 가량이 이에 해당한다고 볼 수 있는데 이때 엽산, 비타민B6•B12 등의 영양소가 필수라고 알려져 있다.
FADS는 지방산 대사와 관련된 효소다. 특히 오메가 3의 대사 과정에서 결정적인 역할을 수행한다. 이 유전자의 변이가 있는 경우 중성지방 및 심근경색, 뇌졸중이 증가할 수 있다. 한국인의 경우 이 유전자 변이가 약 15% 정도로 알려져 있다. 다만 이는 오메가 3 섭취를 통해 예방이 가능하다.(Int J Clin Exp Pathol. 2015)
효소와 관련된 유전자 활용에서 대표적인 것이 약물 유전체다. 우리가 복용하는 약물 중 사람에 따라 효과가 뛰어나거나 그렇지 않은 것들이 있다. 심지어 어떤 사람에게는 유달리 부작용만 심한 경우도 있다. 이는 약물 유전체의 존재 때문이다.
대부분의 약들은 간에서 대사가 이루어지고 신장 등으로 배출된다. 약이 대사가 되는데 있어 핵심적인 역할을 수행하는 것은 ‘사이토크롬 P450(Cytochrome P 450, CYP2C19)’이란 효소다. 약물 부작용은 이 효소의 변이와 관련이 있다.
뇌졸중 환자를 예로 들어보자. 뇌졸중 치료 시 혈액 응고를 막기 위해 항응고제인 와파린을 활용한다. 그런데 어떤 뇌졸중 환자는 와파린 투약 시 민감하게 반응해 사망에 이르기도 한다. 따라서 이 약을 활용할 때에는 농도를 재면서 환자마다 적정량의 용량을 체크해야 한다. 약물 유전체 유전형 조합에 따라 와파린 약물 용량을 적절히 조절하여 투여하는 것이다.
환자 중 한 분이 유전자 검사 후 상담을 요청한 적이 있다. 몇 년 전 '클로피도그렐(Clopidogrel)' 이란 항혈소판제를 복용하던 중 위출혈이 나타나 수술을 했다는 내용이었다. 이 환자는 클로피도그렐이 동맥경화용제인데 왜 위출혈을 일으켰는지 모르겠다며 답답함을 토로했다.
이 환자의 유전체 분석 결과 CYP2C19에 심한 변이가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CYP2C19는 수많은 약물 대사에 관여하는 효소인데 임상적으로 매우 중요한 효소다. CYP2C19가 관여하는 약물 중 클로피도그렐도 포함돼 있다. 이 환자의 경우 클로피도그렐 대사가 매우 느린 타입이었다. 즉, 이 환자는 타인에 비해 클로피도그렐 약물 농도가 체내에서 3~4배 높게 유지되어 출혈 위험이 높았던 것이다.
이처럼 우리 몸의 대사를 담당하는
[김경철 테라젠이텍스 바이오 연구소 본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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