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 열흘의 스토리를 쫓아가 보겠습니다.
1946년 함경북도 청진에서 태어난 장성택.
1972년 김일성 주석의 장녀인 김경희와 결혼하면서 북한 권력의 깊숙한 내부로 들어왔던 장성택.
그러나 조선이 이 씨 왕조였듯이, 장성택은 결코 북한에서 김 씨 백두혈통을 넘어설 수 없었습니다.
김정일 집권 시기 세 차례 낙향과 복권을 반복했던 장성택은 김정일이 2011년 급작스럽게 사망하자 북한의 명실상부 최대 실세로 떠올랐습니다.
어린 조카인 김정은을 대신해 섭정을 해도 누구 하나 견제할 사람이 없었습니다.
북한 주민들 사이에서는 '이제 김 씨의 시대가 가고, 장 씨의 시대가 오는 구나' 그렇게 생각했던 사람들도 있었을 겁니다.
장성택 본인도 그렇게 생각했을까요?
만일 그렇게 생각했다면, 그 역모, 그 정변의 마음이 화를 불렀을 것이고, 그렇게 생각하지 않았다면 참으로 억울한 죽음일 수밖에 없을 겁니다.
장성택의 실각은 지금부터 꼭 열흘 전 우리 측에 알려졌습니다.
지난 3일 정청래 야당 정보위 간사인 정청래 의원이 전한 말입니다.
▶ 인터뷰 : 정청래 / 민주당 의원(오늘)
- "'북한의 장성택은 실각한 것으로 본다.'라고 보고했습니다. 그 이후로 장성택 행정부장의 오른팔, 왼팔이었던 리룡하 행정부 1부부장 그리고, 장수길 행정부 부부장. 두 사람이 지난달 11월 중순 공개처형 되었다고 합니다. 그 이후, 11월 중순 시점 이후 장성택은 자취를 감추고 있다고 합니다. 그래서 실각한 것으로 파악했답니다."
그러나 장성택 실각을 놓고 국정원과 통일부, 국방부의 말이 약간씩 달랐고, 김정은이 정말 장성택을 내쳤을까 의문을 품던 시각도 분명 있었습니다.
▶ 인터뷰 : 류길재 / 통일부 장관 (지난 4일)
- "신변에는 이상은 없는 것으로 저희는 알고 있습니다. "(장성택의) 사람들에 대한 숙청작업이 진행되는 것으로 알고 있습니다."
▶ 인터뷰 : 김관진 / 국방부 장관(지난 5일)
- "추가적인 확인절차가 필요하다. 여러 정황으로 봐서 실각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확인 절차가 필요하다."
혼란은 그리 오래가지 않았습니다.
북한은 지난 9일 장성택 일당을 숙청했다고 공식 발표했습니다.
▶ 인터뷰 : 북한 조선중앙TV (12월9일)
- "정치국 확대회의에서는 먼저 장성택이 감행한 반당 반혁명적 종파행위와 그 해독성 반동성이 낱낱이 폭로되었다. 장성택은 권력을 남용하여 부정부패 행위를 일삼고 여러 여성과 부당한 관계를 맺었으며 고급식당의 뒷골방들에서 술놀이와 먹자판을 벌였다. 사상적으로 병들고 극도로 안일해이된데로부터 마약을 쓰고 당의 배려로 다른 나라에 병 치료를 가있는 기간에는 외화를 탕진하며 도박장까지 찾아다니었다. "
그리고는 깜짝 놀랄만한 사진을 공개했습니다.
바로 이 사진인데요.
8일 열렸던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장성택을 보위부 요원들이 끌어내는 모습입니다.
분노에 찬 김정은은 연단에 앉아 장성택이 끌려나가는 모습을 똑바로 쳐다봤습니다.
그 모습을 지켜본 주변 인사들은 마치 얼음처럼 얼어붙었고, 회의장은 김정은에 대한 공포심으로 뒤덮였습니다.
장성택의 실각이 눈으로 확인된 순간, 도대체 그가 왜 끌려나갔을까에 대한 각종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김정은의 금고지기 망명설과 장성택의 쿠데타설, 김정남 망명설, 리설주 스캔들까지 각종 추측이 난무했습니다.
▶ 인터뷰 : 홍현익 / 세종연구소 수석연구원(10일 시사마이크 출연)
- "9월 중순에 장성택 사건의 발단 자체가 거기서 시작됐다고 보는 거죠. 장성택의 통치 자금을 관리하는데, 그 통치자금을 들고 뭔가 장성택의 권력이 기운다는 것을 느끼고 중국으로 도망가 우리 당국에 망명을 요청했다. 그게 내용입니다."
▶ 인터뷰 : 강명도(10일 시사마이크 출연)
- "쿠데타 음모가 있었어요. 실제로. 장성택이 자기 세력 모아서 김정은이 말 안 들으면 치려고 했어요. 그게 발각 나서, 이건 총살형보다 더 가혹한 처형이 출당하고 정치국 확대회의에서 체포한 겁니다. 처형은 아무것도 아닙니다. 자기 세력을 확장해서 김정은을 몰아내려 했어요."
▶ 인터뷰 : 안찬일 / 세계북한연구센터 소장
- "수하 25명 정도를 데리고 술판을 벌였는데 거기서 북한에서 해서는 안 되는, 10대 원칙에 어긋나는 말을 함으로써…."
그러나 국내 전문가들과 탈북자들 그 누구도 설마 장성택이 처형되리라고는 생각치 못했습니다.
'그래도 고모부인데, 설마 김정은이 장성택을 처형까지 하겠는가'라고 생각했던 것이죠.
김정은이 아버지 김정일보다 잔혹하다 해도 설마 설마했던겁니다.
하지만 돌이켜보니, 장성택의 처형은 이미 예정된 수순이 아니었을까 생각됩니다.
장성택이 정치국 회의에서 끌려나간 이틀 뒤 북한 조선중앙TV에 나온 북한 주민들의 말에서이미 장성택의 운명을 가늠할 수 있었을지 않을까 싶습니다.
▶ 인터뷰 : 최선옥 / 평양 주민(10일 조선중앙TV)
- "장성택 놈이 과연 어떤 놈입니까? 경애하는 대원수님들의 사랑을 누구보다도 더 많이 받은 놈이 아닙니까?"
▶ 인터뷰 : 리명송 / 평양 주민
- "장성택 일당이 뭐기에 우리 당을 반대해서 쏠라닥질(분파행동)하고 감히 최고사령관의 명령까지 거부하다니…."
"당장이라도 장성택과 그 일당의 멱살을 틀어잡고 설설 끓는 보이라(보일러)에 처넣고 싶다" (평양화력발전연합기업소의 리영성 열관리공)
"그놈들을 한 놈도 남김없이 강선으로 보내달라, 저 전기로 속에 몽땅 처넣고 흔적도 없이 불태워버려도 직성이 풀리지 않겠다" (천리마제강연합기업소의 진영일 직장장)
북한 주민들의 말대로 장성택은 오늘 아침 처형됐습니다.
재판장에 들어선 장성택의 얼굴과 수갑을 찬 손에는 피멍이 들어 있었습니다.
재판이 끝난 뒤 그는 곧장사형장으로 끌려갔습니다.
사형장 앞에 선 장성택은 무슨 생각을 했을까요?
67세에 생을 마감하기에는 너무 억울하다고 생각했을까요?
아니면 북한에서 40년간 권세를 누렸으니 더 이상 무슨 여한이 있겠나? 이렇게 생각했을까요?
장성택이 법정에서 했다는 말을 들어보겠습니다.
"나는 군대와 인민이 현재 나라의 경제실태와 인민생활이 번져지는데도 불구하고 현 정권이 아무런 대책도 세우지 못한다는 불만을 품게 하려고 시도했다"
"내가 총리가 된 다음에는 지금까지 여러 가지 명목으로 확보한 막대한 자금으로 일정하게 생활문제를 풀어주면 인민들과 군대는 나의 만세를 부를 것이며, 정변은 순조롭게 성사될 것으로 타산하였다"
장성택은 정말 정변, 그러니까 쿠데타를 일으키려 했던 것일까요?
백두혈통인 김 씨 일가를 몰아내고 장 씨 세상을 만들려 했던 것일까요?
그게 사실이든 아니든, 그는 오늘 공화국 형법 제60조 국가전복음모행위에 대한 처벌로 형장의 이슬로 사라졌습니다.
장성택의 시신은 그냥 길가에 내팽겨져 까마귀 밥이 되거나, 자갈로 대충 덮어놓은 뒤 인민들이 밟고 지나가는 욕을 보이도록 했을 겁니다.
2인자의 삶이 그렇듯, 장성택의 기구한 운명은 그렇게 67세에서 끝났습니다.
그리고 지금 북한에는 김정은의 분노만이 넘쳐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는 압니다.
김정은의 분노가 들끓을수록 정변을 일으키려는 제2, 제3의 장성택이 계속 나올 것이고, 결국 김정은의 분노는 민심의 분노 앞에서 소멸될 것이라는 점을 말입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
영상편집 : 신민희 P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