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 운영위원회 전체회의가 정윤회 문건 파문과 관련한 비서관 3인방과 민정수석의 출석 여부를 빚고 파행을 빚었습니다.
오전 10시 회의 시작과 동시에 여야가 김영한 민정수석과 정호성·안봉근 1·2부속실 비서관의 운영위 불참을 두고 설전을 벌이자 운영위원장인 새누리당 이완구 원내대표는 “회의 진행이 매우 어렵다”며 정회를 선언했습니다.
여야의 얘기입니다.
▶ 인터뷰 : 이장우 / 새누리당 의원
- "유출된 문건이 (검찰 수사로) 사실이 아닌 것으로 밝혀졌음에도 (야당이) 정치 공세를 하고 있다. (발언 시간을) 여야 의원 모두 공평하게 해달라."
▶ 진성준 / 새정치민주연합 의원
- "문제의 청와대 문건 유출 사건은 민정수석비서관실에서 일어난 것인데, (민정수석이) 이 자리에 출석하지 않았다. 현안에 대해 제대로 국민적 의혹을 물을 수 있겠는가"
하지만 30분 뒤인 오전 11시20분 회의가 다시 속개됐습니다.
모처럼 열린 운영위가 파행되면 안된다는 공감대가 있었기 때문입니다.
김기춘 비서실장은 미리 배포한 모두발언에서 깊이 자성한다고 밝혔습니다.
"문건유출사건으로 인해 국민 여러분과 위원들께 심려를 끼쳐 드려 참으로 송구스럽게 생각한다"
김 실장은 청와대 비서실 시무식에서 "국민과 나라에 많은 걱정을 끼친 일들이 있다"며 유감을 표명한 적은 있지만 공개적으로 사과하기는 이번이 처음입니다.
김 실장은 다시는 그런 일이 재발하지 않도록 근무자세와 기강을 철저하게 바로 잡도록 하겠다고 강조했습니다.
김 실장의 말대로라면 민정수석과 비서관 3인방이 국회 운영위에 출석하는 게 맞는 게 아닐까요?
검찰 중간수사 결과 십상시 모임이나 비서관 3인방의 국정 농단이 없는 것으로 나온 만큼 자신있게 국회에 출석해 명명백백 시시비비를 밝히면 되지 않을까요?
김영한 청와대 민정수석이 국회에 제출한 불출석 사유서입니다.
"대통령을 보좌하는 참모로서, 비서실장이 당일 운영위 참석으로 부재중인 상황이므로 긴급을 요하는 상황에 대비할 필요가 있고 전국의 민생안정과 사건 상황 등에 신속히 대응해야 하는 업무적 특성도 있어 부득이 참석할 수 없음을 양해해 주시기 바란다"
부득이 참석할 수 없는 이유라고 했지만, 이 사유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공감해줄까요?
국회와 청와대는 차로 30분이면 갈 수 있는 지근거리입니다.
지금 시급한 업무가 있는 것인지는 모르지만, 긴급을 요하는 상황이 벌어져도 즉각 대처가 가능합니다.
불출석 사유치고는 옹색하다는 비판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비서관 3인방이 모두 출석하지 않는 이유도 석연치 않습니다.
오늘 회의에는 이재만 총무비서관만 나왔습니다.
문희상 비대위원장의 말입니다.
▶ 인터뷰 : 문희상 / 새정치민주연합 비대위원장
- "나라를 뒤흔든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대해 김영한 민정수석과 문고리 3인방은 국회에 나와 낱낱이 해명하고 석고대죄해야 한다. 문고리 3인방 중 이재만 비서관만 나오는 이유가 뭔지 궁금하다."
문 위원장은 비선실세 국정농단에 대해 청와대는 나 몰라라 하는 무책임과 떠들 테면 떠들라는 불통을 보여주고 있다고 지적했습니다.
새누리당은 비서관 3인방을 감쌌습니다.
▶ 인터뷰 : 이완구 / 새누리당 원내대표
- "첨예한 대립이 존재해도 원칙과 관례는 국회를 운영하는 기본 틀이다. 국회는 원칙과 순리에 따라서 운영하고 전통을 존중해야 한다"
새누리당은 노무현 정부에서도 민정수석과 비서관들이 직접 국회에 나온 전례가 없다고 반박했습니다.
비서실장이 나왔으니 충분하다는 겁니다.
그런데 이번 정윤회 문건 파문은 좀 다른 성격인 듯합니다.
정윤회 문건과 십상시 모임의 내용만 놓고 보면 비서관 3인방의 힘이 비서실장을 마음대로 교체할 정도로 센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그렇게 왕 비서관들이라면 국회에서 직접 불러 따지는 건 어쩌면 당연합니다.
사실이 아니라면 아닌대로, 또 의혹이 있으면 있는대로 말입니다.
오늘 한 보수지는 사설에서 새누리당이 왜 비서관 3인방의 호위무사를 자처하느냐고 꼬집었습니다.
국회가 비서관 3인방을 부르지 못할 정도로 성역인가라고 일갈했습니다.
야당이 주장하기 전에 오히려 새누리당이 먼저 이들을 국회에 불렀어야 한다고 지적했습니다.
민정수석과 비서관 3인방이 국회에 나가지 않는 것은 어쩌면 청와대의 일정한 기류때문이 아닐까 싶습니다.
얼마 전 윤두현 홍보수석이 "몇 사람이 개인적으로 사심을 갖고 있을 수 없는 일을 한 것이 밝혀졌다"며 '다행'이라고 말한 것과 궤를 같이 합니다.
청와대 내부적으로는 이제 이 사건은 끝났다고 보고 있는 듯합니다.
비서관 3인방과 민정수석이 나가서 괜히 꺼진 불에 다시 불을 지필 필요가 없다고 판단했을 수 있습니다.
그러나 민심은 그렇지 않습니다.
여전히 뭔가 의혹이 가시지 않는 부분이 남아 있다고 보는 사람들이 있습니다.
비서관 3인방과 민정수석이 출석해 이 부분을 좀 더 명쾌하게 설명하고 풀어주면, 그야말로 논란을 종식시킬 수 있는데 왜 출석하지 않는걸까요?
국민은 박근혜 대통령의 12일 신년 기자회견을 주목하고 있습니다.
박 대통령이 정윤회 문건과 관련해 어떤 입장과 어떤 표현을 할 지
그러나, 지금의 이런 청와대 기류라면 박 대통령의 언급은 과거 발언에서 더 진전되기는 어려울 것 같다는 생각이 듭니다.
집권 3년차, 경제살리기에 매진하고 싶은 청와대가 스스로 뭔가 개운치 않은 뒷마무리를 하는 게 아닌가 싶어 아쉽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