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윤회 문건 파동이 검찰의 중간 수사 결과 발표와 박근혜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으로 끝난 줄 알았습니다.
그런데 엉뚱한 곳에서 불꽃이 다시 튀었습니다.
김무성 새누리당 대표의 수첩입니다.
김 대표의 수첩에는 '1월5일'이라는 날짜 아래 '이준석 손수조 음정환 이동빈 신(신용한 청년위원장)'이라는 이름과 함께 문건 배후가 K,Y 부분이 적혀 있었습니다.
이 K는 바로 김무성 대표, 그리고 Y는 유승민 의원으로 밝혀졌습니다.
사건을 정리하면, 지난해 12월18일 이준석, 손수조, 음종한, 이동빈 행정관이 술자리를 가졌습니다.
이 자리에서 음종한 행정관이 문건의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언급했다는게 당시 자리에 참석했던 이준선 전 비대위원의 말입니다.
1월5일 검찰이 문건 수사 결과를 발표했습니다.
그리고 그날 김무성 대표는 18일 저녁 술자리에서 오간 얘기를 전해듣고 수첩에 메모를 했습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이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1월6일 김상민 새누리당 의원 결혼식에서 K,Y 얘기를 발설했다는 얘기도 있습니다.
김 대표가 청와대에 항의했고, 이후 청와대도 인지하게 됐다고 합니다.
김 대표 수첩에 나오는 '실장'이란 김기춘 비서실장이 가능성이 큰 것으로 보입니다.
이 실장이라고 하는 사람은 정치적으로 민감한 시기여서 김 대표를 만나거나 접촉하기 어렵다는 입장을 전한 것으로 보입니다.
그렇다면 왜 음종한 행정관은 문건의 배후로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을 지목했을까요?
음 행정관이 한 말을 보면, 조응천 전 비서관은 김무성 대표와 유승민 의원에게 줄을 대 대구에서 출마하려 한다는 겁니다.
쉽게 말하면 조응천 전 비서관은 김무성의 사람이라는 뜻일까요?
이에 대해 음 행정관은 '전혀 사실무근이고, 그런 애기를 한 적이 없다'고 밝혔습니다.
이준석 전 비서관이 방송에 나와 문건 파동을 평론한 것에 대해 '조응천 전 비서관은 국회의원을 해보겠다는 정치적 꿈이 있는 사람이고, 유 의원에게 줄을 대려고 하는 걸로 안다. 그런 사람 말을 믿고 평론하면 안된다'고 말한 것 뿐이라고 했습니다.
하지만 이준석 전 비대위원은 분명 음 행정관이 '문건 파동 배후에 김 대표와 유 의원이 있다'는 취지의 발언을 했다고 밝혔습니다.
이준석 전 비대위원의 말이 맞는 것인지, 아니면 음 행정관의 말이 맞는 지는 조사를 해볼 필요가 있습니다.
그런데 더 중요한 것은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의 반응입니다.
김 대표 측은 '수첩 내용이 황당하다고 생각해 적어 놓기만 했으며, 나중에는 행정관이 술자리에서 한 소리여서 별일 아니라고 내버려뒀다. 해프닝'이라고 전했습니다.
그냥 해프닝이라고 했다면 수첩에 나오는 '실장'은 뭘까요?
김 대표가 김기춘 비서실장에게 이 문제와 관련해 항의했다는 뜻이 아닐까요?
그렇다면, 그냥 덮었다는 김 대표측의 말과는 조금 다른 듯합니다.
청와대는 사실 관계를 확인하고 있다고 합니다.
김무성 대표나 청와대 모두 이 사건이 커지는 것을 원치 않나 봅니다.
그런데 일각에서는 흥미로운 해석을 내놓기도 합니다.
툭하면 사진기자에게 찍히는 국회 본회의장에서 김무성 대표가 하필 수첩의 그 내용을 펼쳤냐는가 하는 점입니다.
십중팔구 언론사 카메라에 찍힐 수 있다는 것을 잘 알텐데 말입니다.
게다가 왜 이니셜 K,Y를 썼느냐 하는 점입니다.
보통 자신만이 보는 수첩에는 그냥 이름을 적기 마련인데, 영문 이니셜로 처리한 이유가 궁금합니다.
혹 김 대표가 청와대를 겨냥해 일부러 수첩을 펼친 것은 아니냐는 의혹이 나오는 이유입니다.
김 대표 측은 우연의 일치라며 일부러 흘릴 이유가 없다고 말하고 있습니다.
그런데김무성 대표의 얼굴 표정이 예사롭지 않습니다.
김 대표는 어제까지 시종일관 미소와 웃음 띤 얼굴로 '내가 말을 할 수 없다'며 함구하고 있습니다.
곤혹스러운 표정이 아니라 밝은 표정입니다.
비밀스러운 내용이 틀킨 거라면, 기자들 질문에 예민하기 마련인데 웃음과 농담을 하는 것을 보면 조금은 궁금증이 듭니다.
김 대표가 일부러 노출한 것이라면, 친박-비박 갈등에서 친박계를 압박하기 위한 것일 수 있다는 분석이 나옵니다.
반면 친박계에서 배후설을 흘렸다는 분석도 있습니다.
청와대나 친박진영이 새누리당 원내대표 경선에 출마하려는 유승민 의원을 견제하기 위해 'K,Y 배후설'을 흘렸다는 겁니다.
이를 통해 범 친박계의 결집을 유도하고 이주영 전 해수부 장관에게 힘을
이 일이 해프닝이든 아니든, 김무성 대표와 청와대는 더 멀어지게 생겼습니다.
안그래도 김 대표가 박 대통령의 신년 기자회견에 대해 대통령의 소통 노력이 국민이 보기에 좀 부족하게 느낀다고 논평한 이후라 더 더욱 그렇습니다.
김형오의 시사 엿보기였습니다.
[김형오 기자 / hokim@mbn.co.kr]