핵무기에 대한 무언(無言)의 웅변.
김정은 북한 노동당 제1비서는 10일 평양 김일성 광장에서 열린 당 창건 70주년 열병식 연설에서 핵무기의 ‘ㅎ’자도 꺼내지 않았다. 그러나 연설 이후 열병식에서는 최대 사거리가 1만2000㎞에 달해 미국 본토도달이 가능한 것으로 평가되는 개량형 KN-08 대륙간탄도미사일(ICBM)을 선보였다. 지난 2012년 김일성 주석 100회 생일 열병식에 처음으로 모습을 드러낸 ‘핵배낭’ 부대도 재차 모습을 드러냈다.
북한은 김 제1비서 연설과 조선중앙TV 생중계에서는 핵과 장거리미사일에 대해 언급을 자제하며 신중한 모습을 보였다. 열병식에 참석한 류윈산 중국 공산당 중앙정치국 상무위원을 고려해 말을 아낀 셈이다. 대신 북한은 대내용 라디오인 조선중앙방송을 통해 “다종화되고 소형화된 핵탄두들을 탑재한 위력한 전략 로켓들이 연이어 나간다”고 강조하며 본심을 내비쳤다.
이에 대해 통일부는 11일 열병식 분석자료를 내놓고 “북한이 (대내용인) 중앙방송과는 달리 대외적으로 보도되는 조선중앙TV를 통해서는 자극적 용어를 자제하는 등 대외 이미지를 염두에 뒀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통일부는 북한이 10일 열병식에 군 병력 2만여 명과 군중 10만여 명이 동원된 것으로 추정했다.
이날 열병식에서 북한은 김정은 체제 들어 새로이 개발된 300㎜ 신형 방사포(다연장포)도 처음으로 공개했다. 최대 사거리 200㎞로 추정되는 북한 신형 방사포는 전방에서 발사하면 우리 군의 3군 통합기지가 위치한 충남 계룡대와 경기도 평택과 오산은 주한미군 기지 등 한·미 연합군 핵심 군사시설을 사정권 내에 둘 수 있다. 이날 공개가 예상됐던 잠수함발사탄도미사일(SLBM)은 열병식의 기계화 종대에 모습을 드러내지 않았다. 북한은 열병식에서 이례적으로 에어쇼를 펼치며 낫과 망치, 붓이 그려진 노동당 마크와 ‘70’이라는 숫자를 만들어 보이기도 했다.
김 제1비서는 열병식에 앞서 약 25분간 진행한 연설에서 ‘인민’이라는 단어를 무려 97차례나 쓰는 등 연설의 대부분을 ‘인민사랑’ 강조에 할애했다. 그는 집권 후 일관되게 추진하고 있는 핵·경제 병진노선을 소개하면서도 ‘경제·국방’이라는 표현을 사용하며 핵문제를 언급하지 않아 눈길을 끌었다. 이 때문에 정부 안팎에서는 김 제1비서의 이번 연설이 ‘수출용’이라기보다는 ‘내수용’에 가깝다는 의견도 제기됐다.
김 제1비서는 “70년의 승리의 역사와도 같은 인민을 하늘처럼 받드는 위대한 조선노동당이 우리 혁명을 이끄는 기관차가 될 것”이라고 강조했다. 이어 “우리당은 앞으로도 인민중시, 군대중시, 청년중시의 3대 전략을 제일 가는 무기로 틀어쥐고 최후 승리를 향해서 힘차게 매진할 것”이라고 밝혔다.
양무진 북한대학원대학교 교수는 김 제1비서가 핵문제를 언급하지 않은 것을 “중국과 국제사회에 논란거리를 제공하지 않겠다는 뜻”이라고 평가했다. 양 교수는 “북한이 김일성 시대에는 선당(先黨), 김정일 때는 선군(先軍)을 강조했다면 김정은 체제에서는 선민(先民)정치 방식을 예고하고 있다”는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김 제1비서는 연설 도중 수 차례 ‘미제(미 제국주의)’를 언급하며 미국과의 ‘전쟁’을 시사하며 강경한 입장을 보였다. 모양새를 놓고 보면 김 제1비서가 중국 권력서열 5위인 류 상무위원과 함께 북한군 열병식을 통해 북·중간 ‘반미연대’를 이룬 형국이다. 연설에서 김 제1비서는 미국에 대한 적개심을 숨기지 않으며 “우리의 혁명적 무장력은 미제(미국)가 원하는 그 어떤 형태의 전쟁에도 다 상대해줄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이날 연설에서 특별한 대남 메시지를 내놓지는 않았다.
정부 관계자는 “북한이 이번 당 창건 행사를 통해 김 제1비서의 치세가 확고하다는 것을 보여주고 중국과의 관계복원 계기를 만든 점은 성과라면 성
[김성훈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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