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영삼 전 대통령의 서거 후 고인의 인간적인 면모에 대한 평가가 새롭게 부각되는 가운데 그를 지척에서 모셨던 상도동계 인사들의 술회가 이어지고 있다.
측근들은 무엇보다 김 전 대통령의 따스함과 정을 회고했다. 김덕룡 전 의원은 23일 “김 전 대통령은 성격상으론 누구보다도 부드러운 사람이었고 젊은이들이과 의기투합할 수 있는 분위기를 만들어주셨기 때문에 측근이나 참모들이 다 기쁜 마음으로 같이 민주화투쟁을 할 수 있었다”며 “(상도동계는) 어느 계파보다도 인간미가 넘치는, 정으로 뭉친 계파라고 자타가 공인했다”고 술회했다.
김 전 대통령의 8~9대 국회의원 시절 보좌진으로서 그를 보좌했다는 문만봉씨는 “군부 시절 대관령에서 휴양하고 있을 때 고인과 편지를 주고 받곤 했다”며 “편지에는 ‘동지, 민주화를 위해 열심히 살아가자’는 말이 있었고 얼마나 고생스럽냐고 위로하는 내용도 있었다”고 회상했다.
문씨는 “손으로 쓴 그 편지를 받을 때 당사자인 나보다 고인이 더 나의 아픔을 잘 알아주셨다는 걸 느낄 수 있었고 그렇기에 이분을 따르는 사람이 많았다”며 “그런 고인을 믿었기 때문에 군부의 총칼 앞에서도 야당 생활을 할 수 있었다”고 말했다.
민주산악회 회원이라는 배 모씨는 “아주 인자하고 사람 이름을 잘 기억했던 분”이라며 “어디 산에 갔다가 만나면 ‘배 동지’라고 불러주셨다. 내 이름까지 기억해주는 분을 어떻게 안 좋아할 수 있겠냐”고 말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김 전 대통령의 포용력과 친화력에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그는 “3당 합당 후 당내 여러 계파가 있었는데 고인을 반대하던 사람도 한번 만나서 손을 꼭 잡으면서 ‘한번 꼭 도와주십쇼’ 하면 전부 그 편이 되는걸 봤다”며 “그 뜨거운 포용력이 김 전 대통령의 장기가 아닌가 싶다”고 회상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용기에 대해서도 측근들은 높이 평가했다. 상주로 조문객들을 맞고 있는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 초선 때도 여러가지 박해를 받았지만 닭의 목을 아무리 비틀어도 새벽은 온다는 그런 신념이 있었기 때문에 하나회 척결이라든지 금융실명제라든지 그런 것들을 대담하게 할 수 있었던 것”이라고 김 전 대통령의 업적을 추켜세웠다.
안경률 전 의원은 “군부정치 반대와 문민정부 수립과정에서 ‘호랑이를 잡으려면 호랑이 굴에 들어가야 한다’며 용기를 보여줬다”고 말했다.
김 전 대통령 특유의 성실성 역시 측근들 사이에 회자되고 있다.
김수한 전 의장은 “(김 전 대통령이) 새벽 5시, 5시30분에 전화해 조깅을 뛰자고 했었다”며 “해외에 가서도 새벽 5시면 조깅을 준비하고 있었다”며 “캄캄한 밤중에 (운동을) 하고 있으면 김 전 대통령과 마주치곤 했다. (김 전 대통령의 운동은) 자신과의 싸움이었다”고 설명했다.
정재문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이) ‘머리는 빌리면 되지만 건강은 빌릴 수 없다’는 유명한 말씀을 했었다”며 “아침에 조깅을 하고도 점심을 드시면 남산에 가서 수영도 했다”고 거들었다. 김덕룡 전 의원은 “아침마다 그 바쁜 정치활동 중에도 매일 아침 새벽에 제일 먼저 아버님께 전화를 드려서 문안인사를 드리곤 했다”며 “효도에도 항상 정성을 기울이셔서 깊은 감명을 받았다”고 말했다.
이성헌 전 의원은 “젊을 때와 달리 대통령께서 재임기간 동안 술 끊고 국가와 국민만 생각했다”며 “저는 우리 현대사에서 가장 빼어난 업적을 가진 지도자였다고 생각한다”고 평가했다.
약속과 신뢰를 중시하는 김 전 대통령의 성격도 측근들에게 깊게 각인돼있었다. 김덕룡 전 의원은 “김 전 대통령은 약속지키는 것을 제일 중요하게 생각하셨다”며 “‘항시 거짓말을 해서는 안 된다. 약속을 잘 지키는 사람이 되어야 한다’고 말씀하셨다”고 전했다. 이어 “특히 철저하게 시간 약속을 지키셨는데 당의 총재·원내대표 시절엔 어떤 경우에도 정시에 회의를 시작했다”며 “습관적으로 지각하던 사람들이 나중에는 시간을 지키게 됐고 심지어 비서들과 약속을 해도 가보면 먼저 와 계시는
안경률 전 의원은 “우리 정치가 어려운데 그 어려운 정치를 촌철살인하는 그런 간단한 화법으로 잘 풀어내는 그런 재주를 가지신 분”이라며 “흔들리지 않고 결단력 있게 돌파하며 주변의 신뢰를 얻었다”고 말했다.
[우제윤 기자 / 추동훈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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