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6일 진통 끝에 개최된 국회 예산결산특별위원회(예결특위) 소위를 앞두고 소위 멤버 추가 여부를 놓고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 사이 격론이 오갔다. ‘소위 명단이 너무 정치적으로 가는 것 같다’는 매일경제 기자의 질문에 예결특위원장을 맡고 있는 김재경 새누리당 의원은 이렇게 털어놨다. “원내대표들이 손에 피를 묻히기 싫으니까 우리한테 떠넘기는거지. 원래 원내대표 권한도 아닌데 자신없으면 권한을 포기해야 우리가 하지.”
# “누리과정 예산이 핵심 쟁점이라 3+3 회동(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정책위의장)에서 이야기는 오가겠지만 그렇다고 거기에 다 미뤄놓고 ‘우리는 아무 것도 이야기 안하겠다’는 것도 웃긴 이야기 아닐까.” 누리과정 예산 문제를 놓고 국회 교육문화체육관광위원회 소위원회에서 여야 의원들이 격론을 벌이던 16일 새정치민주연합의 한 의원이 기자에게 한 이야기다. 그러나 교문위 소위 다음 날인 17일 여야 지도부는 3+3 회동에서 ‘누리과정 예산은 여야가 24일까지 방안을 마련한 후 합의해서 처리한다’고 밝히면서 교문위 소위에서 오간 이야기는 모두 무용지물이 됐다.
국회 상임위원회 권한이 유명무실해진 것은 하루이틀 이야기가 아니다. 위에 언급한 두 사례는 국회의 분야별 상임위원회의 권한이 얼마나 무력화됐는지를 극명하게 보여주고 있다.
규정대로라면 예결특위 소위 구성위원은 예결위원장과 여야 간사가 합의해 결정해야 한다. 그러나 당리당략에 따라 당 지도부 차원에서 한 명의 의원이라도 더 넣기 위한 여야의 ‘꼼수’에 예결위원장 권한이 무기력해지면서 김재경 의원이 분노를 숨기지 못한 것이다.
상임위원회 제도 장점은 국회의원들이 분야별로 전문성을 살려 예산안, 법안 등을 다룰 수 있다는 점이다. 그러나 여야 지도부 차원에서 합의한 내용을 분야별 상임위원회에 전달하는 ‘상명하복’ 행태가 만연해지면서 분야별 상임위원회의 역할이 점점 줄어들고 있다.
◆ 독재시대보다 후퇴한 상임위
무산되기는 했지만 최근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이 선거구 획정 문제를 놓고 진행한 ‘4+4 회동(당대표·원내대표·원내수석부대표·정개특위 간사)’에서도 법안 처리 과정에서 상임위원회가 얼마나 배제되는지를 잘 보여준다.
당시 새누리당과 새정치민주연합은 각각 국회선진화법 개정, 선거연령 인하·투표시간 연장과 같은 선거구 획정과는 무관한 주제를 놓고 격론을 벌였다. 국회 법제사법위원장을 맡고 있는 이상민 새정치민주연합 의원은 “원래 논의 주제와는 전혀 상관없는 내용을 엮어서 처리하는 것은 정치의 금도를 어긴 것”이라며 “집단지성을 모아야 할 국회가 당 지도부 의견만 따르는 ‘300개의 거수기’가 됐다”고 비판했다.
국회 국방위원장을 맡고 있는 정두언 새누리당 의원은 “(지도부는) 청와대에서 지시 내려온 것에나 관심을 갖는 경우가 많다”며 “고 김영삼 전 대통령이 독재시대를 깨고 민주시대를 열어 문민정부라고 하는데 20년이 지난 지금 그보다 더 후퇴했다. 돌아가신 분한테 죄송스러운 일”이라고 지적했다.
‘법안 통과를 위해서는 국회 재적의원 3/5 이상의 동의를 얻어야 한다’는 것이 핵심인 국회 선진화법이 통과된 이후 ‘법안 끼워팔기’를 시도하는 경우가 더욱 늘었다는 지적도 나온다.
지난 5월 공무원연금법 개정안 처리 과정에서 야당이 ‘정부 시행령에 대한 국회 수정요구권’을 강화한 국회법 개정을 연계한 것이 ‘법안 끼워팔기’의 대표적 사례 중 하나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의 눈밖에 난 유승민 새누리당 의원이 당 원내대표에서 물러나기도 했다.
상임위원회가 전문성과 영향력을 갖추기 어려운 이유로는 2년마다 의장단을 비롯해 상임위원과 위원장을 변경하도록 한 규정이 꼽힌다. 나라살림을 결정하는 예결특위의 경우 ‘지역구 관리’ 차원에서 1년마다 위원이 바뀌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서복경 서강대 현대정치연구소 교수는 “17~19대 국회처럼 초선 의원 비율이 절반이 넘는 현실에서 상임위원회가 경험과 전문성을 쌓는 것을 기대하기란 쉽지 않다”고 분석했다.
◆ ‘美 의회 소위’ 벤치마킹해야
‘국회 상임위원회 무용론’을 극복하기 위해서는 상임위 소속 소위원회(소위)의 재편성이 선행되어야 한다는게 전문가들의 공통된 지적이다. 현재 소위가 일률적으로 법안심사, 예산결산심사, 청원심사로 분류돼 전문성을 발휘하기 어렵다는 판단에서다.
손병권 중앙대학교 국제정치학과 교수는 “의회권력과 분권화의 상징이자 실질적인 정책 심의기관인 상임위원회 활성화를 위해서는 각 상임위 소속 소위원회 역시 효과적인 업무배분을 통해 구성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에 따라 당파적 논쟁보다 전문가들의 의견 청취가 주를 이뤄 정책 공론장으로 운영되는 미국 의회의 소위가 벤치마킹 대상으로 꼽힌다.
미국 의회 상임위원회 소속 소위 구성은 대체로 행정부서의 기능을 반영한다. 이 중 미국 하원 외교위원회 소위원회는 아시아-태평양, 중동·북아프리카 등 지역별과 테러·비확산·통상, 아프리카·글로벌보건 및 인권 등 기능형 등이 혼합된 방식으로 운영중이다. 교육노동위원회도 유아·초등·중등교육, 고등교육·노동훈련, 보건
또한 상임위원장을 여야간에 나눠먹는 관행에 대해서도 문제점을 제기하는 목소리가 높다. 상임위와 소위 운영의 핵심인 위원장은 전문성과 경력을 감안해 선출할 필요가 있다는 지적이다.
[정석환 기자 / 안병준 기자 / 유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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