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병세 외교부 장관이 4일(현지시간) 오후 쿠바 수도 아바나의 호세 마르띠 국제공항에 모습을 드러냈다. 한국 정부의 외교 수장으로서는 처음으로 쿠바를 방문한 윤 장관은 자신의 방문이 한·쿠바 관계 개선을 위한 ‘중요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말했다.
이번 윤 장관의 쿠바 방문은 공교롭게도 북한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인 김영철 통일전선부장이 아바나를 다녀간지 불과 약 보름만에 전격 성사된 것이다. 북한의 몇 안되는 ‘사회주의 형제국’인 쿠바에 남북한 최고위급 인사가 잇따라 발도장을 찍은 진풍경이 연출됐다.
정부는 윤 장관 쿠바 방문에 앞서 각별한 보안을 유지하며 이번 카리브국가연합(ACS) 정상회의 주최국인 쿠바 측과 물밑 협의를 진행한 것으로 알려졌다. 앞서 정부는 조태열 외교부 제2차관의 ACS 정상회의 참석 내용을 밝히면서도 윤 장관이 대통령 순방지인 프랑스에서 곧바로 쿠바행 비행기에 오를 것이라는 계획에 대해서는 철저히 함구했다.
일단 쿠바 측이 이번 ACS 정상회의에 윤 장관을 초청한 것은 그만큼 한국과 교류·협력을 확대할 용의가 있음을 보여준 조치로 평가된다.
쿠바는 지난 해 미국과의 관계를 정상화시키며 ‘미국의 친구들’과도 관계개선 가능성을 열었다. 이런 관점에서 쿠바는 자신들에게 절실한 인프라스트럭쳐 산업 강국이자 세계 10위권 경제규모를 갖춘 한국과의 협력 증진을 긍정적으로 검토했을 것으로 보인다. 쿠바는 지난 2007년 발행한 10페소(약 1만원) 지폐에 현대중공업이 수출한 이동식 발전설비(PPS) 도안을 넣었을 정도로 한국의 기술력에 대해 호감을 갖고 있다.
쿠바는 지난 1949년 한국 정부를 승인하고 6·25전쟁때는 한국 측에 물자를 제공했지만 1959년 공산화된 이후에는 일체의 관계가 끊어졌다. 이후 2000년대 들어서 양국은 2000년대 이후 경제·무역 분야를 중심으로 교류를 재개했다. 한국무역투자진흥공사(KOTRA)는 지난 2005년 아바나에 무역관을 개설했고 이를 계기로 연간 4000만 달러(474억원) 수준이던 수출규모도 3억달러(3560억원) 수준까지 확대됐다. 지난 2013년에는 쿠바에서 ‘내조의 여왕’ ‘시크릿가든’ 등 한국 드라마가 방영돼 선풍적 인기를 끌면서 한류 바람도 만만찮다.
한국으로서도 쿠바는 여러 측면에서 놓칠 수 없는 외교·통상 파트너다.
일단 외교적 측면에서 쿠바는 지구상 딱 4개국 밖에 남지않은 한국과의 ‘미수교국’이다. 쿠바를 제외한 나머지 미수교 국가는 시리아·마케도니아·코소보다.
관광·천연 자원이 풍부한 쿠바는 향후 한국과 경제적으로 협력할 여지가 크다.
김기현 선문대 스페인어·중남미학과 교수는 “쿠바는 국가 규모에 비해 매우 잠재력있는 나라”라며 “미국과 가깝고 관광지로 개발이 되면 매우 발전전망이 큰 나라”라고 전망했다. 김 교수는 “한국으로서는 중·남미에서 마지막 남은 시장의 문을 연다는 측면에서 의미가 있다”며 “쿠바는 다른 카리브 연안 국가들에 비해 교육과 의료 수준이 매우 높고 경제교류를 할 수 있는 가능성이 매우 크다”는 견해를 밝혔다.
이와 함께 쿠바와의 교류·협력 확대는 박근혜 정부의 대북 제재·압박 외교전략에서도 상당한 의미를 가진다. 쿠바는 지난 1960~1970년대 북한과 더불어 세계 비동맹운동의 맹주를 자처하던 국가다. 쿠바는 북한에 김정은 노동당 위원장 체제가 들어서도 끈끈한 우호관계를 유지했다.
지난 2013년에는 쿠바에서 비밀리에 전투기(미그기)를 싣고 북한으로 향하던 화물선 ‘청천강호’가 파나마에서 적발돼 양국간 군수협력 관계가 드러나기도 했다. 쿠바는 유엔 무대에서도 북한의 열악한 인권상황을 국제형사재판소(ICC)에 회부하는 내용을 담은 대북인권결의안 채택을 공개적으로 반대했다.
이러한 가운데 쿠바가 한국과의 접촉면을 늘린다면 이는 그대로 가뜩이나 입지가 좁아지고 있는 북한외교에 상당한 타격을 줄 수밖에 없다. 이는 그대로 박근혜 정부의 중요한 외교적 업적으로 남게 될 것이다.
북한도 지난해 미국·쿠바 국교정상화 이후 변화 분위기를 감지하고 쿠바에 더욱 공을 들이고 있다. 북한은 아바나주재 대사관에 정예 외교인력을 파견해 쿠바를 관리하고 있다. 북한은 지난달 김영철 노동당 중앙위 부위원장을 단장으로 한 대표단을 아바나에 파견해 7차 당대회 결과를 설명하고 우호관계를 과시했다. 이때 김 부위원장은 쿠바 최고지도자인 라울 카스트로 국가평의회 의장과 만나 김정은 위원장의 친서를 전달했다.
외교가에서는 대체로 이러한 쿠바와 북한과의 관계 때문에 한·쿠바 관계개선 작업도 단시일내 성과를 내긴 어려울 것으로 보는 분위기다.
정부 관계자는 “쿠바로서는 미국과 외교관계를 복원했지만 경제제재 해제나 관타나모 기지반환 등을 두고 미국과
[김성훈 기자 / 박의명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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