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사드(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배치 지역을 두고 갈팡질팡하면서 스스로 밝혔던 원칙마저 무너뜨리고 있다.
당초 경북 성주 성산리의 성주 포대가 사드 배치의 최적 장소라고 밝혔다가 다시 “해당 지역의 요청이 있으면 다른 지역도 검토하겠다”고 갈지자 행보를 하고 있다. 정부가 전자파 유해성이 없다는 것을 보여주겠다며 군사보안시설까지 공개한 것도 결과적으로 무의미해진 셈이다.
박근혜 대통령은 4일 새누리당 소속 대구·경북(TK)지역 국회의원과의 면담에서 사드(THAAD·고고도미사일방어체계) 관련 민심을 듣고, 성주군 내 다른 지역으로 사드부대 주둔지를 옮기는 방안을 검토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혔다.
이날 사드 배치 지역을 옮기는 방안은 박 대통령이 먼저 제안한 것으로 전해졌다. 성주를 지역구로 둔 이완영 새누리당 의원은 “코 앞에 읍내가 있어 성산부대의 문제점이 심각하고, 그래서 더 반발이 심하다고 말씀드렸더니 ‘성주 군민이 추천하는 새로운 지역이 있다면 그쪽을 검토·조사해 보겠다’라고 대답하셨다”라고 전했다. 이 의원은 ‘성주 군민들이 새로운 지역에 찬성하냐’는 기자들에 질문에 “전혀 그렇지 않다. 군민들은 ‘성주는 안된다는 입장’ 그대로”라고 말했다.
정부는 그동안 수차례에 걸쳐 “전자파 우려가 없다”고 밝혀왔다. 성주 포대가 해발 약 400m 고도에 위치하고 있어 사드 레이더의 전자파에 따른 피해를 우려하지 않아도 된다는 게 정부의 공식 입장이었다. 그러나 박 대통령이 “성주 군민의 우려와 불안감 덜어주기 위해서 성주군에서 추천하는 새로운 곳에 대해 (사드 배치를)정밀히 조사검토하도록 하겠다”고 언급하면서 정부의 이전 주장은 설득력이 떨어지게 됐다. 수도권 지역의 방공포대와 충청도에 있는 그린파인 레이더 기지에서 전자파의 유해성 기준치에 한참 못미친다는 결과를 얻어냈지만 성주 군민의 우려와 불안감을 불식시키지 못했다는 것을 스스로 인정한 모습이 됐다.
군 당국은 성산포대 외에 성주군내 다른 지역으로 배치 부지가 재조정된다면 부지를 새로 조성하는 작업을 해야 하고, 이에 따른 환경 훼손 논란 및 관련 예산 확보 등의 문제가 발생할 수 있을 것으로 전망하고 있다. 이럴 경우 당초 ‘내년 말 이전 사드 배치’ 계획도 유동적이 될 수 있다.
북한이 핵과 미사일 개발에 전력 투구하고 있는 데도 우리 정부가 ‘시간 싸움’에서 스스로 무덤을 파는 것이 아니냐는 지적이 제기된다. 성주 포대가 용지 공여 측면에서 합격점을 받은 것은 현재 군부대가 위치하고 있어 공사 기간이 최소화되는 이유도 작용한 것으로 알려져 있다. 현재 성산포대에는 사드 레이더와 발사대가 설치될 수 있는 공간이 있고, 부대 막사도 있어 주한미군 병력이 들어와도 별도의 시설 공사는 많지 않을 것으로 군은 예상해왔다. 한미는 미국이 사드 체계를 배치하는 대신 우리 정부가 부지조성과 지원시설 등에 소요되는 예산을 부담하도록 합의한 상황이다.
일각에서는 중국이 상용비자 복수발급을 중지하고 문화 콘텐츠의 수입을 제한하는 등 저강도 보복 움직임이 현실화되는 것을 정부가 지나치게 의식하고 있는 것 아니냐는 지적도 나온다.
한편 더불어민주당과 국민의당 등 야권은 배치 지역을 놓고 갈팡질팡하는 정부를 비판하고 나섰다.
기동민 더민주 원내대변인은 “대통령의 입장 번복은 사드 입지결정이 졸속으로 이뤄졌음을 단적으로 보여주는 행태이며, 인정할 수도 이해할 수도 없다”며 “더 큰 사회적 혼란을 대통령이 스스로 야기한 셈”이라고 비판했다. 국민의당 박지원
[안두원 기자 / 김명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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