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상 처음으로 호남 출신 새누리당 대표가 탄생하면서 호남이 정치권의 중심으로 급부상하게 됐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와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호남 출신이며 김종인 더민주 비대위 대표는 서울 출신이지만 조부인 ‘가인 김병로’선생이 전북 순창 출신인 ‘호남 혈통’이다. 여기에 정세균 국회의장, 심재철·박주선 국회부의장도 모두 호남 출신이다. 여야 3당 대표와 국회의장단 모두 호남을 근거로 한 인사로 채워진 헌정 사상 최초의 ‘호남 전성시대’가 열린 셈이다.
그러나 지난 총선 득표율에서 호남을 양분했던 국민의당과 더불어민주당은 겉으로는 ‘이정현 대표 당선’을 환영하면서도 내심 긴장하는 기색이 역력하다. 내년 대선을 앞두고 여야 초박빙 승부에서 호남표 일부의 이탈이 치명타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지난 2012년 대선에서 당시 문재인 민주통합당 후보는 호남에서 90%의 지지를 얻고도 박근혜 대통령에게 108만표 차이로 석패했다. 이같은 상황에서 이정현 신임 새누리당 대표는 “호남에서 20%대 득표율을 달성하겠다”고 공언하고 있다. 최근 여론조사 추이를 보면 새누리당 호남 지지율이 10% 중반을 기록하는 경우도 많아 불가능한 목표는 아니라는 관측이다. 만약 내년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호남에서 10%의 지지율을 더 획득하면 산술적으로 40만표 정도 된다. 수도권 호남 표심까지 고려하면 100만표 이상의 파괴력인 셈이다.
충청 출신의 김태흠 새누리당 의원은 “흙수저 출신의 이 대표의 등장으로 그동안 상대적으로 덜 지지를 보냈던 호남과 젊은 유권자에게도 당이 다가설 수 있게 됐다”면서 “앞으로 당이 환골탈태하는 모습을 보이면 정권 재창출 가능성이 더욱 커진다”고 내다봤다. 실제로 충청 출신인 반기문 유엔사무총장이 영남을 기반으로 한 여당의 대권 후보로 나설 경우 호남 일부 표까지 흡수하면서 TK+충청+호남의 광범위한 지지를 받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이다.
이 때문에 박지원 국민의당 비대위원장은 10일 전북을 방문한 자리에서 “호남에서 더 열심히 해야겠다는 다짐을 결의하고자 한다”고 말했다. 이자리에서 국민의당은 전북 개발 공약을 적극 제시하면서 적극적인 구애 작전을 펼쳤다.
그러나 야권 일각에서는 일정부분의 호남표 잠식이 전국 득표에 도움이 될수도 있다는 전망도 나오고 있다. 더민주 관계자는 “지난 총선에서 영남에서 범야권 후보가 13석을 획득한 것은 이정현 의원이 먼저 호남에서 당선됐기 때문에 가능했던 것”이라면서 “야권 호남표 일부가 이탈하는 것은 다른 지역의 지역 정서를 완화시키기 때문에 꼭 야권에 부정적 효과만 있는 것은 아니다”고 말했다.
호남보다 다른 지역 유권자수가 많기 때문에 다른 지역의 지역정서 완화 효과가 더 클 수 있다는 계산인 것이다.
야권 대선주자들도 ‘이정현 효과’에 대한 손익 계산에 나서고 있다. 만약 대선에서 새누리당이 호남 20% 이상의 득표가 가능할 경우 문재인 전 대표에게는 유리할 수 있다는 관측이다. 다른 야권 주자들이 “호남의 압도적 지지 없이 대선 승리는 불가능하다”면서 호남의 ‘반문 정서’로 고전하고 있는 문 전 대표를 공격할 것으로 예상되지만 정작 다른 후보들도 ‘압도적 지지’를 받을 수 없는 상황이 되면 이같은 공격을 할 명분이 사라지기 때문이다.
안철수 전 국민의당 대표는 ‘지지층의 본진’인 호남을 직접 공략 당했다는 점에서 호남의 ‘이정현 효과’가 뼈아플 수 있다는 분석이다. 특히 호남에 더 힘을 쏟아야 한다는 명분으로 당내 ‘호남파’의 활동 공간이 커지면서 ‘안철수계’가 위축될 수 있는 가능성도 있다.
‘이정현 효과’는 더민주 당권 경쟁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당권주자중 유일한 호남 출신인 김상곤 전 혁신위원장의 존재감이 부각되고 있는 상황이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여당이 호남을 선택했다면 반대로 야당에서는 영남이나 수도권 출신인 추미애·이종걸 의원을 뽑아 ‘동진 전략’을 추진해야 한다는 주장
[박승철 기자 / 김강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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