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근혜 대통령이 ‘노무현 사람’ 김병준 총리 지명에 이어 ‘DJ맨’ 한광옥 비서실장 카드를 선택했다.
야당과 폭넓은 소통이 가능한 한광옥 실장을 통해 여야를 아우르는 ‘협치’와 ‘소통’의 길을 모색해 보겠다는 의도다.
박 대통령은 지난 2일 일방적인 ‘김병준 총리 내정’ 발표로 곤혹을 치르고 있다. 야당은 “불통의 극치를 보여준 개각”이라며 총리 인사청문회 보이콧을 선언했다.
신임 한 실장은 3일 오후 취임 인사차 청와대 춘추관에 들러 “하루 빨리 내외부 소통 시스템을 복원하겠다”고 밝혔다.
이와 관련해 청와대 한 참모는 “최순실 파문과 청와대 인적쇄신 이후 당정청 소통체계가 허물어졌던게 사실”이라며 “비서실장과 정책조정수석, 정무수석 등이 공석인 상황에서 박 대통령도 미처 여야 소통 등을 챙기지 못하고 정신이 없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김병준 총리 지명의 형식과 타이밍에 ‘실수’가 있었음을 인정한 것이다. 이정현 새누리당 대표도 야당이 ‘불통 개각’이라고 비난을 쏟아낸데 대해 “대통령께서도 청와대에 손발이 없는 상황에서 발생한 실수에 대해 미안한 마음을 갖고 있지 않겠느냐”고 양해를 구했다.
2일 아침 총리 내정 발표 방침이 정해지자 배성례 청와대 홍보수석이 부랴부랴 여야 3당 원내대표들에게 문자메시지를 보내 개각 사실을 알리는 등 청와대 참모들조차 정신이 없었다는 후문이다.
청와대는 한광옥 비서실장 임명으로 본격적인 내·외부 소통 시스템이 가동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한 실장은 이날 기자들과 만나 “1999년 김대중 대통령 시절 1년 10개월간 비서실장을 했고 이번이 두번째다. 감회가 깊다”며 “지금가지 조그맣게 쌓아 온 경험이나 경륜을 모아서 어떻게 국가를 위해 봉사할 것인가 고민하다가 2012년 대선때 박근혜 후보를 돕기로 했고, 지금은 박 대통령이 마지막까지 대통령으로서 일을 잘 마무리할 수 있도록 보필하는 것이 내가 할 일 아닌가 생각해서 이 자리에 서게 됐다”고 밝혔다. 한국 헌정사에서 복수의 다른 대통령을 청와대 비서실장으로 보좌한 인물은 한 실장이 처음이다.
그는 “지금은 굉장히 엄중한 시기다. 국민들이 분노하고 우리 사회에 불신이 팽배해 있다”며 “박 대통령을 모시는데 있어서 민의를 정확하게 반영할 수 있도록 노력하겠다”고 말했다. 한 실장은 “어려운 정국을 돌파하는데 가장 필요한 것은 신뢰를 회복하는 것”이라며 “내가 정국을 수습하고 대통령에게 정확히 민심을 전할 수 있는 통로가 되겠다”고 덧붙였다.
‘최순실 사태’와 관련해 박 대통령에 대한 검찰 수사 필요성을 묻는 질문에 한 실장은 “중요한 것은 최순실 사건에 대해서는 추호의 의심이 없도록 확실하게 수사가 이뤄져야 한다는 것”이라며 즉답을 피했다. 한 실장은 조만간 여야 지도부를 인사차 방문할 계획이다.
‘구원투수’로 긴급 투입된 한 실장은 공교롭게도 DJ 정권에서 ‘옷로비 사건’ 스캔들로 청와대가 흔들릴 때 비서실장에 발탁된 바 있다. 신중하고 입이 무거운데다, 여야를 막론하고 신뢰가 두텁다는게 그의 장점이다. 한 실장은 중요한 고비때마다 여의도에서 당내외 밀사역을 도맡아 음지에서 난제를 풀어왔다.
11대 총선 당시 서울 관악구에서 민한당 소속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된 그는 5·17 내란음모죄로 구속된 김대중 전 대통령의 석방과 대통령 직선제 도입을 강력히 주장했던 것을 계기로 동교동계에 합류했다. 1997년 대선땐 ‘DJP 후보 단일화’ 협상 주역으로 김대중 정부 탄생의 기틀을 마련하기도 했다. 김대중 정부 출범 후인 1998년 초대 노사정위원장으로 노·사·정 대타협을 이끌어냈다.
[남기현 기자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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