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 원로·전문가에 정국수습해법 물어보니
박근혜 대통령 지지율이 3주 연속 역대 최저인 5%(한국갤럽 조사)에 그쳤고, 지난 주말(19일) 촛불집회는 전국으로 들불처럼 퍼져나가 95만명의 성난 함성을 전했다. 검찰이 박 대통령을 ’최순실씨 국정농단 사건‘을 공모한 피의자라고 밝힌 가운데 조만간 대통령 대면조사도 앞두고 있다. 최순실 특검과 국회 국정조사도 줄줄이 대기 중이다. 대통령의 질서있는 퇴진을 촉구하던 야당은 하야와 탄핵같이 보다 강경한 요구사항을 쏟아냈다. 외신들도 이번 사건을 실시간 전하면서 대한민국 위상은 추락했다. 박 대통령은 지난 16일~17일 안총기 외교부 2차관과 유동훈 문화부 2차관을 임명하면서 돌파구를 모색했지만 입지는 더욱 좁아졌다. 그 사이 국정공백은 길어지고 있다.
매일경제가 20일 정치 원로들과 전문가들에 정국수습해법에 물어본 결과, 이들은 “박 대통령이 국정운영 동력을 사실상 상실했다”고 판단했고 “국회는 여야합의총리를 조속히 선임해서 과도내각 구성 등 국정정상화에 적극 나서야 한다”고 조언했다. 만일 야당에서 검토하는 박 대통령의 탄핵소추안이 국회를 통과되면 헌법 65조에 따라 대통령 권한행사가 정지되는데, 내치외치 모두 원활히 수습할 책임있는 국무총리가 필요하기 때문이다. 아울러 △여야 영수회담으로 정국수습안 제시 △박 대통령 검찰조사 제대로 받아야 △제왕적 권력구조 개편 검토 등의 의견도 나왔다.
허영 경희대 석좌교수는 헌법 체계 내에서 대통령 권한대행 총리를 통한 문제 해결에 초점을 맞췄다. 허 교수는 “지금은 대통령이 직무를 수행할 수 없을 때로 봐야 한다”며 “국무총리가 국무회의를 지휘하면서 국정을 통할하게 해야 헌법 내에서의 국정운영이 재가동될 수 있다”고 조언했다.
양승함 전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통령이 스스로 자리를 내려놓지 않으면 국회가 탄핵을 기정사실화할 것”이라며 “그러나 이같은 대통령 권한대행체제에서 야권은 기존 황교안 총리를 믿지 못할 것이기 때문에 초당적입장에서 여야합의 총리는 금방 나올 수 있다”고 진단했다. 만일 여야합의 총리를 뽑을 때 어느 정당이라도 반대해서 어그러지면 책임을 피할 수 없다는 판단이 작용했다. 양 전 교수는 “헌법재판소 입장에서도 180일까지 시간을 끌지 않고 서둘러 결정할 것으로 보인다”며 “이후 조기 대선까지 잠룡들은 재평가받고 국민들은 제대로된 대통령을 뽑아야 한다”고 덧붙였다.
신율 명지대 교수는 “이번 주 안으로 국회에서 여야 합의총리를 뽑아서 국회의 탄핵소추안 통과시 대통령 권한대행으로서 내치와 외치를 모두 챙길 수 있도록 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나 여야합의 총리를 선임하더라도 총리 권한을 놓고 국회와 청와대의 기싸움이 불가피하다. 청와대는 국회에서 추천한 총리가 내각을 통할할 수 있도록 했지만, 야당은 이같은 조각권 행사범위와 대통령의 2선 후퇴 등이 불분명하다며 서로 입장차이를 보인 바 있다. 만일 탄핵안이 국회를 통과되어 대통령의 직무가 정지되지 않는 한, 청와대와 야권은 총리역할문제로 계속 충돌할 수 밖에 없다.
이정희 한국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사태수습의 첫 단추는 여야합의 총리이겠지만, 총리 권한을 어디까지 줄 것인지 명확하지 않은 상황에서 청와대와 국회는 마찰을 빚을 수 있다”며 “거국내각이나 과도내각이 만들어진다면 박 대통령이 어느 정도 헌법적 권한을 갖게 될 지 정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검찰에서 박 대통령을 피의자로 인지하면서 보수세력 분열은 가속화될 것으로 보인다. 이는 탄핵에 명분을 줄 수 있다. 더불어민주당, 국민의당, 정의당을 비롯해 야권소속 국회의원은 모두 171명으로 국회 탄핵안 가결(3분의 2 찬성)을 위해서는 29명의 여당 국회의원의 찬성표가 필요하다.
신 교수는 “이제는 보수세력에서도 친박과 비박으로 분리해서 판단해야 한다”며 “탄핵정국으로 들어갔을 때 비박 등 보수층에서도 동조할 수 밖에 없는 상황으로 내몰렸다”고 진단했다.
신 교수는 이어 “다가오는 주말인 26일 촛불집회에는 수백만명의 시민이 거리로 나올 수 있어서 정국 분수령이 될 수 있으며 그 이후에는 국회에서 탄핵소추에 들어갈 수 있다”고 덧붙였다.
국정수습을 위해 야권의 책임있는 자세를 요구하는 의견도 나왔다.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은 “아무리 정국이 어려워도 국민들이 먹고 사는 일, 나라경제가 굴러가는 일은 마냥 미룰 수 없는 것 아니냐”며 “경제부총리라도 빨리 교통정리를 해서 급한 걸 처리해야 한다”고 말했다. 또 윤 전 장관은 “야권도 컨센서스를 이뤄서 대안을 제시 해야한다”며 “야당서 책임총리라도 합의를 해놓고 자기 주장을 해야지 마냥 비판만 하는 건 맨땅에 해딩하라는 것과 다르지 않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이정희 교수는 “야권 잠룡들이 ’국회주도의 총리 선출 및 과도내각 구성‘등을 야 3당 지도부에 요청했지만, 야당이 각자의 정치적 이해관계를 떠나 한목소리를 낼 수 있어야 정국안정화를 꾀할 수 있을 것”이라고 설명했다. 이 교수는 이어 “야권이 정치적 계산으로 따지다보면 균열이 발생할 수 있다”고 덧붙였다.
상당수 정치 원로들은 ’귀를
박관용 전 국회의장은 “하루에도 수십통 전화를 받지만 정치적 얘기를 하지 않고 있다”며 “지금 이런 형국에 내가 정치 얘기를 하면 더 혼란스러울 것 같다”며 말을 아꼈다.
[강계만 기자 / 전범주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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