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뉴스 & 분석] 5년만에 수행된 김정은의 `스탠딩 오더`

김정은 북한 노동당 위원장의 이복형인 김정남이 지난 13일 백주에 피살된 사건을 두고 제기된 가장 큰 궁금증은 '도대체 왜 지금이냐'는 것이었다. 북한 내부 급변설, 김정남의 국외 망명 기도설 등이 쏟아져 나온 배경이다.
이병호 국가정보원장은 15일 국회 정보위원회 간담회에서 "김정은은 집권 이후 김정남을 반드시 처리해야 한다는 '스탠딩 오더'를 내렸다"고 밝혔다. 스탠딩 오더(Standing Order)란 최상부인 김정은의 취소 지시가 없는 한 상황과 시간에 구애받지 않고 끝까지 수행해야 할 절대적 명령을 뜻한다.
이 원장은 "오랜 노력의 결과가 실행된 것이지, 암살 타이밍에는 특별한 의미가 없다"며 "김정남이 자신의 통치에 위협이 된다는 계산적 행동이라기보다는 김정은의 편집광적 성향이 반영된 것으로 평가한다"고 보고했다.
국정원에 따르면 김정남은 이미 2012년 4월 김정은에게 자신과 가족에 대한 '응징 명령'을 취소해달라는 서신을 보냈으나 받아들여지지 않았다. 김정남은 서신에서 "저희는 갈 곳도 피할 곳도 없다. 도망갈 길은 자살뿐임을 잘 알고 있다"고 호소한 것으로 알려졌다.
국정원은 또 김정남의 국외 망명 신청은 없었으며, 북한 내부에 김정남을 옹립하려는 움직임도 포착되지 않았다고 밝혔다.
국정원 분석대로라면 김정은 체제가 갖는 '예측 불가능성'이 더욱 위협적으로 느껴진다. 이철우 국회 정보위원장은 "김정은은 자신의 통치에 위협이 된다는 계산으로 도발하는 것이 아니라는 데 주목해야 한다"며 "언제든지 핵과 미사일로 우리를 공격할 수 있다는 의미"라고 강조했다.
물론 김정은이 금단의 영역이던 '백두혈통'까지 제거함으로써 띠끌만큼의 잠재적 위협마저 용납하지 않겠다는 메시지를 권력 주변에 전달하고자 했을 것으로 분석된다. 그러나 암살 사실이 전해진 뒤 북한 사회를 지배하는 공포가 더욱 뿌리내릴지, 아니면 김정은 체제 전복의 전조로 작용할지는 미지수다.
이번 사건으로 북한을 바라보는 국제사회의 시선은 더욱 차가워지고, 북한 입지는 더욱 고립될 것이란 점은 분명해 보인다. 중국 정부는 아직 공식 입장을 밝히지 않았으나 김정남이 이미 숙청된 고모부 장성택과 함께 친중 인사로 분류돼 왔다는 점에서 북·중 관계 경색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한편 국정원과 현지 경찰 등에 따르면 김정남은 지난 13일 오전 9시께 마카오행 비행기를 타기 위해 쿠알라룸프르 공항에 나왔다가 아시아계 젊은 여성 2명에 의해 암살된 것으로 확인됐다. 범행 도구는 독극물로 특정됐지만 독침인지 스프레이 형태인지는 아직 확인되지 않았다.
일본 교도통신은 이날 일본 정부 관계자를 인용해 김정남 암살과 관련된 여성 2명이 사망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보도했다. 일본 정부 관계자는 "여성 2명 사망정보가 있어 확인중"이라고 밝혔다.국정원도 용의자들이 말레이시아를 빠져나가지 못한 것으로 파악했다. 김정남의 시신은 이날 오전 푸트라자야 병원에서 쿠알라룸푸르 병원으로 이송돼 부검될 예정인 것으로 알려졌다.
[신헌철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