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대 대선 열기가 뜨거워지면서 각당 대선후보들이 지역 표심을 공략하기 위해 선심성 지역공약들을 쏟아내고 있다. 양강 구도를 형성하고 있는 문재인 더불어민주당 대선후보는 최소 46조원 규모 사회간접자본(SOC) 공약을 내놨고, 안철수 국민의당 후보도 38조원 넘는 지역사업을 약속했다. 하지만 복지확대에 열을 올리고 있는 두 후보들은 수십조원의 지역개발 공약에 대해서도 명확한 재원마련 방안을 내놓고 있지 않아 '공약(空約)'에 그칠 가능성이 높다는 지적이 많다. 특히 이번 선거는 영호남 지역별 대결양상이 완화되면서, 각 지역 표심을 잡기위한 선심성 공약이 막판 더욱 기승을 부릴 가능성이 높다.
문 후보와 안 후보 측이 내놓은 지역별 공약을 종합한 결과, 누가 대통령에 당선되더라도 세종특별시에 국회와 행정부의 기능이 추가로 이전한다. 광주에는 미래자동차 산업 클러스터가 만들어지고, 대구공항은 통합이전된다.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지역별 맞춤형 공약을 강조하고 있지만 문제는 재원을 확보하는 것이다.
문 후보의 부산 공약 중 하나인 북항 재개발의 경우 해양수산부 업무계획에 따르면 사업비 8조 5000억원이 필요한 초대형 프로젝트다. 서울-세종고속도로 사업 역시 6조 7000억원 가량이 투입되는 사업이다.
경남 공약으로 내건 김천-거제 KTX 조기 착공과 광주 아시아문화중심도시 조성사업 정상화의 경우 각각 4조 4294억원, 2조 7679억원(2008~2026년) 사업비가 필요한 것으로 조사됐다.
천문학적인 국가 재정이 필요한 지역 공약을 발표한 것은 안 후보 역시 마찬가지다.
안 후보가 충북 공약으로 발표한 충북 바이오밸리 육성의 경우 충북이 최근 확정한 19대 대선공약 건의과제에 따르면 5조 3836억원이 필요하다. 부산 공약으로 내건 김해신공항 교통망 확충 공약은 신공항 건설 총 사업비를 기준으로 할 때 5조 97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안 후보가 충남지역 제1공약으로 내건 중부권 동서내륙횡단철도 역시 사업비 8조 5000억원이 필요한 대규모 국책 사업 중 하나다.
문 후보와 안 후보 모두 강조하는 대구공항 이전의 경우 이헌승 자유한국당 의원이 정부 부처 자료를 분석한 결과에 따르면 최소 7조 2000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집계됐다. 여기에 대구공항 이전에 따른 지역 갈등을 해소할 방안 역시 미흡하다는 지적이다.
충북 청주국제공항을 활성화 해 중부권 거점공항으로 육성한다는 것 역시 문 후보와 안 후보 공통 공약 중 하나다. 충북 지역 19대 대선공약 건의과제에 따르면 청주국제공항 인프라 구축(국가 제2중추공항 육성)에만 4조 6456억원이 필요한 것으로 나타났다.
여기에 대선 시즌을 맞아 지자체들이 자체적으로 대선 공약 건의 과제를 계속 만들어 발표하고 있다는 점 역시 변수다. 문 후보와 안 후보의 접전이 계속될 경우 각 진영에서 포퓰리즘 유혹을 이기지 못해 지역 숙원사업 해결을 강조할 경우 필요한 예산이 더 늘어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사업비에 집계되지 않은 지역공약 역시 국가 재정에 부담이 될 우려가 있다.
문 후보는 민주당 경선과정부터 최근까지 "경제수도 서울이 있고 해양수도 부산이 있고 문화수도 광주가 있고 과학수도 대전이 있고 행정수도 세종이 있으면 대한민국이 더 행복해질 것"이라고 밝혔다. 광역시 특색을 살려 지역개발을 이끌겠다는 이같은 구상에 따라 신규 사업이 추가될 경우 천문학적 예산이 추가로 필요해질 전망이다.
안 후보 역시 대전을 4차 산업특별시로 육성하고 부산을 동북아 해양수도로 육성한다는 큰 틀의 지역 공약을 발표했다. 안 후보 역시 집권 후 정부의 구상에 따라 지역 개발 사업이 얼마든지 추가될 수 있는 것이다.
정부의 2017년 SOC 예산은 21조8000억원으로 책정됐다. 지난해에 비해 8.2%(1조9000억원)가 줄어 역대 가장 큰 하락세를 보였다. 노후화된 SOC를 정비, 교체하는 것은 당연히 시급하지만 필요하지도 않고 경제성도 낮은 SOC 사업을 지역 표심 자극을 위해서 약속을 남발하는 것은 문제가 많다. 경제가 녹록치 않은 상황에서 복지예산이 눈덩이처럼 불어나고, 북한을 비롯한 대외긴장감이 높아지면서 국방예산 증액필요성도 높아지고 있는 상황이다.
실제 한국건설산업연구원(간산연)은 국내 SOC 재투자 예산이 올해부터 10년간 53조 원 이상 필요하다고 내다봤다.
누가 대통령이 되건 빠듯한 나라살림에서 SOC 투자여력이 넉넉치 않다는 얘기다. 각 대선후보 캠프에서는 수조원대 지역 공약을 실현하기 위해 뾰족한 재원조달 방안을 내놓지 못하고 있다.
재원 마련 방안이 구체적이지 않다는 지적에 대해 민주당 국민주권선대위 정책본부장을 맡고 있는 윤호중 민주당 정책위의장은 "재정 개혁을 통해 재원을 마련할 것"이라며 "다음 주 쯤 공개되는 공약집에는 구체적인 재원 마련 방안이 포함된다"고 밝혔다. 윤 본부장은 "대부분 지역공약이 기존 사업 추진을 이어가는 것이고, 예비타당성 조사 통과 가능성이 낮은 신규 사업은 아예 발표조차 하지 않았다"고 덧붙였다.
각 대선후보들의 지역공약이 이전에 나왔던 지역민원의 재탕·짜집기식이라는 점도 문제다. 전국적인 시너지나 창의적 발상이 배제된 지역표심 공략용 아이디어만 계속 돌려쓰고 있다는 얘기다.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세종시 수도이전이나, 이명박 전 대통령의 한반도 대운하 같은 대형 프로젝트는
기재부 관계자는 "지역균형발전과 국가비전을 고려하지 않고 지자체장이 선거 때 내세웠던 공약이나 이미 추진하고 있는 사업을 짜집기 한 경우가 대부분"이라며 "겨우 현상유지를 하고 있는 지방공항에 수조원을 투입하는 등의 개발공약은 현실성이 낮아 보인다"고 말했다.
[전범주 기자 / 정석환 기자 / 석민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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