헝가리에서 실종자 수색이 난항을 겪는 가운데 진상 규명 과정에서 핵심 단서가 될 추가 영상이 공개됐습니다.
사고 당시 크루즈선이 후진했다는 주장까지 나오면서 오히려 궁금증이 커지고 있는데 김근희 기자와 자세한 이야기 나눠보겠습니다.
【 질문 1 】
김 기자, 이번에 추가로 공개된 영상은 어디서 어떻게 나온 것인가요?
【 기자 】
어젯밤 헝가리 현지 유람선 협회에서 공개한 영상입니다.
이 협회에는 사고를 당한 허블레아니의 선사도 속해있습니다.
사고가 난 머르키트 다리 아래에서 촬영된 영상으로 두 배가 향하는 상류 쪽에서 다리 아래 기둥을 바라보는 각도입니다.
왼쪽에서 오른쪽 방향으로 찍혔기 때문에 허블레아니 쪽 방향에서 사고 당시 모습을 볼 수 있습니다.
바이킹 시긴에 밀리면서 허블레아니가 물속으로 빨려가듯 침몰하는 모습이 담겨 있습니다.
두 배의 중량 차이가 워낙 크다보니 쾅하고 부딪힌 게 아니라 일방적으로 허블레아니가 가라앉는 모습이 확인된 겁니다.
【 질문 2-1 】
그런데 앞서 기사에도 나왔지만, 바이킹 시긴이 추돌한 이후에도 앞으로 이동합니다.
왜 부딪힌 이후에도 멈추지 않고 앞으로 이동한 걸까요?
【 기자 】
사고 전후 바이킹 시긴의 속도를 보면 추돌한 이후에 앞으로 갈 때는 굉장히 천천히 갑니다.
전문가들은 사고가 난 직후 바이킹 시긴 선장이 배의 레버를 바로 후진으로 돌렸을 가능성이 있다고 합니다.
하지만 앞에서부터 오던 관성 때문에 바로 멈추지 못하고 서서히 밀려서 앞으로 나간 것으로 보인다는 거죠.
전문가 이야기 들어보겠습니다.
▶ 인터뷰(☎) : 정운채 / 전 SSU 해난구조대장
- "자동차하고 배하고 다른 점이 뭐냐면, 배는 브레이크가 없습니다. 그리고 후진 기어가 없어요. 엔진을 다시 뒤로 돌려야 해요. 그럼 배가 전진 타력이 있기 때문에, 엔진을 뒤로 돌렸다고 해도 배는 계속 앞으로 가는 거예요."
【 질문 2-2 】
그런데 혹시 바이킹 시긴이 물살에 밀려서 저절로 후진한 건 아닙니까?
【 기자 】
일단 바이킹 시긴은 허블레아니와 달리 규모가 커서 그럴 가능성은 적다고 합니다.
전문가들에 따르면 이 정도 크루즈선을 물살에 휩쓸릴 정도로 몰지는 않는다고 합니다.
이 때문에 사고가 난 후 바이킹 시긴이 뭔가 문제가 있다는 걸 알고 뒤로 돌아오려했지만, 앞으로 가던 관성 때문에 잠시 밀려났다 후진했다는 게 대체적인 추론입니다.
【 질문 3 】
만약에 사고를 알았다면 사실상 뺑소니로 봐야하는 거 아니겠습니까?
희미하긴 합니다만 화면에 물에 빠진 사람 모습도 보이는데 구조 조치를 제대로 안 한 거잖아요?
【 기자 】
두 배가 가까워질 때 보면 바이킹 시긴 갑판 위 사람들이 허블레아니 쪽으로 몰려있는 듯한 모습이 보입니다.
추돌 이후에는 명확히 보이지는 않습니다만, 다리 아래쪽 흰색 웅덩이처럼 보이는 부분이 있는데 헝가리 언론은 물에 빠진 사람들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앞서 기사에서 언급한 것처럼 바이킹 시긴에서 누군가 물속으로 뭔가를 던져주는 모습도 선명하게 담겨 있습니다.
바이킹 시긴이 후진해서 사람들이 물에 빠졌다는 걸 알고도 제대로 조치하지 않았을 가능성을 보여주는 겁니다.
【 질문 4 】
이런 가운데 오늘 새벽에 바이킹 시긴 선장에 대한 구속영장이 발부됐습니다.
앞으로 선장 수사는 어떻게 되는 겁니까?
【 기자 】
헝가리 법원은 부주의와 태만에 의한 인명 사고 혐의가 충분히 인정된다며 해당 선장에 대한 영장을 발부했습니다.
구속 기간은 한 달로 보석금 1천500만 포린트, 우리 돈 6천1백만 원을 내걸었는데요.
다만 보석으로 풀려나도 재판이 끝날 때까지는 부다페스트를 벗어날 수 없습니다.
하지만 선장이 추돌 당시 사고를 알고도 제대로 조치를 취하지 않은 게 확인되면 향후 재판에서 혐의가 더 무거워질 수 있습니다.
현재 우리 법무부는 이태원 살인 사건 당시 피의자 패터슨을 소환했던 검사 2명을 법적 지원을 위해 현지에 급파했습니다.
향후에도 헝가리 수사 당국과 진상 규명을 위해 긴밀히 공조해나가겠다고 밝혔습니다.
【 앵커멘트 】
수색 작업이 속도를 내지 못하면서 많은 분들이 안타까워하고 있습니다.
이번 추가 영상 공개를 통해 명확한 진상 규명이 하루빨리 이뤄지기를 바라겠습니다.
정치부 김근희 기자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