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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송철호 시장 [사진 출처 = 연합뉴스] |
이제 또다른 업무수첩 하나가 정국의 변수로 떠올랐다. 송병기 울산시 경제부시장의 수첩이다. 검찰이 지난 6일 압수한 그의 수첩에선 지난해 6·13 지방선거 전후 일들이 고스란히 기록돼 있다고 한다. 2017년 가을 송철호 울산시장 후보 캠프에 합류한 그가 청와대 인물들과 선거 공약을 협의한 정황도 기록으로 드러나고 있다.
김경수 경남도지사, 조국 당시 대통령 민정수석 등도 '송병기 수첩'에 이런저런 형태로 등장한다. 이 수첩의 내용이 하나둘 드러나면서 청와대와 친문 인사들이 2018년 울산시장 선거에 조직적으로 관여한 의혹은 점점 더 커지고 있다.
심지어 송철호 울산시장의 유력한 당내 경쟁자였던 임동호 전 최고위원에게는 더불어민주당 후보 경선을 포기하는 조건으로 공기업 사장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의혹까지 제기됐다. 임 전 최고위원이 곧바로 입장문을 내고 "울산시장 경선 포기 조건으로 청와대 쪽에서 높은 자리를 제안받았다는 내용은 사실이 아니다"고 반박했으니 좀 더 지켜봐야할 일이다.
송 부시장 등이 2017년 10월 청와대 사회정책비서관 A씨를 만난 사실은 면담한 인물·날짜까지 차곡차곡 기록돼 있다. 2017년 10월은 송 부시장이 청와대 측에 김기현 전 울산시장의 비위 첩보를 넘겼다고 알려진 시점이다. '송병기 수첩'은 검찰이 18일 국무총리실 민정실을 전격 압수수색하는 동력도 됐다. 김 전 시장에 대한 청와대의 첩보 입수경위와 첩보내용을 놓고 수사가 탄력을 받고 있다.
업무수첩, 일기장, 메모 등은 그동안 주요 사건의 수사흐름을 좌우해 왔다. '박근혜 정부의 사초(史草)'라고까지 불린 '안종범 수첩'이 대표적이다. 국정농단 수사의 스모킹건이 됐다. 문화계 블랙리스트 사건에서는 김기춘 전 비서실장의 지시사항을 꼼꼼히 적은 고(故) 김영한 전 청와대 민정수석의 메모가 스모킹건이 됐다.
'안종범 수첩'의 증거능력을 놓고 법원 재판부는 1심과 2심에서 다소 엇갈린 판단을 내놓기도 했다. 그러나 올해 8월 대법원 전원합의체는 박 전 대통령이 직접 지시한 사항을 기록한 안종범 수첩의 내용에 대해 증거 능력이 있다고 인정했다. '울산시장 선거개입 의혹'에 조국 당시 청와대 민정수석은 직간접적으로 연루될 수 밖에 없는 위치다. 이 사건을 수사중인 서울중앙지검 공공수사2부도 조 전 민정수석을 상대로 곧 수사에 나설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타고난 '기록의 전문가'들도 있지만 국정농단 사태와 여야 정권교체를 거치면서 '적자생존'을 실천하는 공무원들이 부쩍 많아졌다. 윗사람이 시키면 시키는 대로 움직여야 하는 서슬퍼런 시대일수록 '적자생존'은 삶의 지혜다. 꼼꼼히 적어야 지시사항을 제대로 이행할 수 있고 책임소재도 분명히 해둘 수 있다. 어영부영하다간
[최경선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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