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전 대통령이 걸어온 지난 63년은 시련과 도전으로 점철된, 그야말로 파란만장한 삶이었습니다.
가난한 농부의 아들로 태어나 대통령의 자리에까지 올랐지만 결국 비극적으로 삶을 마감했습니다.
노 전 대통령의 삶을 한성원 기자가 돌아봤습니다.
【 기자 】
해방 이듬해인 1946년 경남 김해 봉하마을에서 빈농의 아들로 태어난 노무현 전 대통령.
끼니조차 잇기 어려웠던 7식구의 궁핍한 생활 속에 가난은 그의 인생 초년기를 지긋지긋하게 쫓아다녔습니다.
학창시절 성적은 매우 우수했지만, 서서히 현실 정치에 반감을 갖기 시작합니다.
▶ 인터뷰 : 선상규 / 진영중학교 동창(2003년)
- "아마 그 당시 이(이승만) 대통령으로 기억되는데 생일 때 축하 작문을 쓰라고 했는데 그런 작문을 쓸 수 없다고 해서 교무실까지 불려가서 혼이 난 경험도 가지고 있는 친구입니다."
군 제대 후 농협에 입사 시험을 보고 과수원도 운영해보지만 결국 큰 뜻을 품고 사법시험에 도전하기로 결심합니다.
아내 권양숙 여사를 만난 것도 이 즈음.
5년의 독학 끝에 1975년 사법고시에 합격하면서 세상을 향한 야망이 첫 결실을 이룹니다.
하지만, 잘 나가는 조세전문 변호사 생활도 잠시, 1981년 부림사건의 변론을 맡으면서 현실 정치의 부조리에 눈을 뜹니다.
▶ 인터뷰 : 최도술 / 청와대 전 총무비서관(2003년)
- "군사 독재, 그런 시국에 상당한 불만을 느끼고 사회에 소외되거나 우리가 해야 할 일, 공해문제나 노동문제에 관심을 두고…"
진지하고 성실한 변론.
이 사건을 시작으로 노 전 대통령은 평범한 법조인에서 인권변호사로 항로를 변경합니다.
이후 6월 항쟁에서 부산 지역 투쟁을 주도하면서 파란만장한 정치 역정이 시작됩니다.
▶ 인터뷰 : 김재규 / 전 부산민주공원관장(2003년)
- "여러 가지 어려운 조건들을 노무현 변호사가 앞장서서 해결해 주셨습니다. 책임지는 그런 모습을 보여주셨죠."
김영삼 당시 통일민주당 총재의 권유로 정계에 입문하고 나서 5공 실세였던 허삼수 후보를 누르고 부산에서 처음으로 국회의원에 당선됩니다.
그리고 5공 청문회.
▶ 인터뷰 : 노무현 / 전 대통령(1988년)
- "절대 권력을 가지고 있는 권부에는 5년 동안 34억 원이란 돈을 갖다주면서 내 공장에서, 내 돈 벌어주려고 일하다가 죽은 노동자에 대해서 4천만 원 주느냐, 8천만 원 주느냐를 두고 그렇게 싸워야 합니까? 그것이 인도적입니까? 그것이 기업이 할 일입니까?"
청문회를 통해 일약 한국 정치의 새 희망으로 떠올랐지만 이후 정치 행보는 가시밭길의 연속이었습니다.
지역주의 타파를 외치며 부산으로 내려갔지만 네 차례 선거에서 연거푸 고배를 마십니다.
'바보 노무현'이라는 별명이 붙었고, 이런 도전과 좌절은 이후 그를 대통령으로 만든 정치적 자산이 됩니다.
▶ 인터뷰 : 노무현 / 전 대통령(취임식 연설)
- "국민 여러분의 위대한 선택으로, 저는 대한민국의 새 정부를 운영할 영광스러운 책임을 맡게 되었습니다. "
대통령 재임 기간에도 탄핵이라는 사상 초유의 사태를 겪는가 하면 이라크 파병 등 실용주의 정책으로 '좌회전 깜빡이를 넣고 우회전했다'는 진보 진영의 비판을 받기도 합니다.
퇴임 후, 고향으로 내려간 노 전 대통령은 전직 대통령들과는 다른 행보를 보입니다.
카우보이 모자를 눌러쓴 채 자전거를 타고 벼를 베며 동네 하천을 청소하는, 대통령의 위엄을 벗어던진 평범한 시민의 모습이었습니다.
하지만, 이런 생활도 잠시.
친형이 구속되고 아내와 아들, 딸이 검찰 조사를 받으면서 참여정부 통치의 근간이었던 도덕성에 씻을 수 없는 상처를 입습니다.
그리고 태어나고 자란 곳, 봉하마을에서 자신을 던져 생을 마감했습니다.
MBN뉴스 한성원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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