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해로 간행 150주년을 맞은 대동여지도는 그간 김정호 혼자서 발품을 들인 지도로 널리 알려져 왔습니다.
하지만, 조선 중·후기 민중 지리학이 그대로 녹아있다는 사실, 대동여지도 현존 6종이 한자리에 처음 공개된 현장에서 갈태웅 기자가 취재했습니다.
【 기자 】
18세기, 대구와 충남 공주지역을 나타낸 조선지도와 해동지도.
축척을 의미하는 사각형의 격자들이 세밀하게 표시돼 있습니다.
이 같은 지방지도는 고산자 김정호가 대동여지도를 만들기 전, 습작품에 해당하는 청구도에 그대로 반영됩니다.
책의 형태로 제작된 이 청구도는 훗날 병풍처럼 접고 펼 수 있는 형태로 발전합니다.
역시 가로로 쭉 펼칠 수 있는 지도 22개로 구성된 대동여지도의 초기 형태입니다.
목판 작업 등 수정을 거치는 대동여지도는 시간이 흐를수록 옛 지방지도 축척기술 등을 발전시킵니다.
군·현 지도마다 달랐던 축척을 통일시키고, 직선으로 표시한 도로엔 방안을 넣어, 거리 개념을 추가했습니다.
이처럼 조선 중·후기 지도 기술이 모두 투영된 대동여지도, 때문에 김정호는 지도 창안 대신 집대성한 인물에 가깝습니다.
▶ 인터뷰 : 노태돈 / 서울대 규장각한국학연구원장
- "조선 후기에 많이 제작된 지방지도들이 있습니다. 각 읍을 중심으로 한 지도들, 그리고 도회지에 관한 지도들, 각종 지리학 서적들, 이런 것들을 바탕으로 해서 대동여지도가 만들어질 수 있었습니다."
제국주의 일본이 경탄했던 대동여지도, 고산자 개인의 창작이 아닌, 조선 중·후기 대중의 역작이었습니다.
MBN뉴스 갈태웅입니다. [ tukal@mk.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