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서울 회기역 부근 원룸에서 7개월째 자취생활을 하고 있는 직장인 김연정 씨(가명ㆍ23). 그는 최근 불쾌한 일을 겪었습니다. 퇴근길에 화장품 택배가 도착했다는 문자메시지를 받고 들뜬 기분에 집에 왔지만 택배 물건은 현관문 밖이 아니라 떡하니 방 안에 놓여 있던 것. 김씨는 집주인에게 항의했지만 "집 밖에 두면 누가 가져가지 않겠느냐"며 대수롭지 않다는 듯한 대꾸를 들었습니다.
#2. 모 여대 2학년에 재학 중인 최수연 씨(가명ㆍ21)는 더 위험한 경험을 했습니다. 지난주 토요일 아침, 속옷만 입은 채 늦잠을 자던 중 갑자기 `딸가닥`하고 문을 여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50대 남성 집주인이 사전 예고도 없이 부동산 관계자와 집을 보러 온 사람들을 데리고 들어온 것. 20대 여대생이 사는 9.9㎡(3평)짜리 좁은 방에 주말 아침 들이닥친 불청객 4명 중 3명은 남성이었습니다.
젊은 여성들이 거주하는 원룸과 오피스텔에 일부 집주인이나 관리인이 무단 침입하는 일이 많아 사회문제가 되고 있습니다. 사생활 침해는 물론 성범죄 위험에까지 노출돼 있어 대책이 요구되고 있지만 세입자들은 사실상 `을` 위치에 있을 수밖에 없습니다. 그러다보니 피해를 주장하더라도 사소한 일로 치부되는 경우가 대부분이라고 여성 세입자들은 입을 모았습니다.
김씨는 "언제 들이닥칠지 몰라 불안하지만 사실 이런 일은 자주 일어나지 않기 때문에 불만을 제기하기도 난감하다"며 "실제 피해를 입어도 집주인을 비롯해 주변 사람들이 해프닝 정도로 취급해버려서 답답하다"고 하소연했습니다.
최씨도 "계약 당시 방 열쇠를 다 받은 줄 알고 안심했는데 주인이 따로 열쇠를 갖고 있었다는 사실에 어이가 없을 뿐"이라고 덧붙였습니다.
여성 세입자들의 불안감은 지난해 10월 경기개발연구원이 발표한 `수도권 주민 안전사회 의식조사 및 개선 방향`에서 간접적으로 드러났습니다.
이 자료엔 수도권 주민 1808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설문조사 결과가 나와 있는데, 이에 따르면 주민들은 범죄 유형 중 주거 침입을 가장 두려워하는 것(25.7%)으로 나타났습니다. 오피스텔과 원룸 거주자들은 성폭력에 대한 두려움이 가장 큰 것으로 나왔습니다.
김씨와 최씨처럼 피해 경험이 있어도 유야무야 넘어가는 일이 대부분이지만 사실 법적으로 따지면 무단 침입한 집주인은 엄연한 `범죄자`라고 전문가들은 지적합니다.
공인중개사 안 모씨(44)는 "임차인은 임대차계약을 하고 나면 해당 주택을 점유해 사용할 권리가 있다"며 "임대인이라고 해도 허락 없이 들어갈 수 없다"고 강조했습니다. 그는 이어 "허락 없이 들어간 집주인은 `주거침입죄`에 해당돼 3년 이하 징역 또는 500만원 이하 벌금에 처해진다"고 덧붙였습니다.
◆ 정부 여성주거안전 대책, 가스검침원·택배방문땐 사전에 통보해야
정부도 여성들의 주거 안전을 보호하기 위해 대책을 내놨습니다.
안전행정부는 14일 올해 핵심 업무계획 중 하나로 `가정방문서비스 안전대책`을 제시했습니다. 택배원과 검침원 등을 가장한 주거침입 범죄가 잇따르자 대책을 세운 것입니다. 올해부터 전기ㆍ가스검침원이 점검을 위해 가구를 방문하기 전에 사진을 미리 문자메시지로 보낼 계획입니다. 방문자 얼굴을 미리 확인해 검침 등 가정방문 서비스를 가장한 범죄를 예방하자는 취지입니다.
내년부터는 택배원에 대해서도 사전 알림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입니다.
혼자 사는 여성들에 대한 성폭력 사건이 빈발하는 원룸 건물
388개 여성범죄 취약지역 원룸건물별 담당 경찰관을 작년 2827명에서 올해 3500명으로 늘리고, 버스정류소와 지하철역에서 골목까지 경찰이 집중 순찰하는 여성 안심 귀갓길을 확대합니다.
[매일경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