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가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 사건 재판에 관여했던 판사들의 실명을 공개하기로 하면서 논란이 확대되고 있습니다.
해당 판사들에 대한 도덕성 논란이 거세지고 있는 가운데 여론몰이식 과거 청산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습니다.
취재기자와 함께 자세한 내용 알아보도록 하겠습니다.
사회부 정규해 기자 나와있습니다.
(앵커1)
과거사 위원회가 논란이 돼왔던 '긴급조치' 판사들의 실명을 최종 공개하기로 결정했죠?
(기자1)
네, 그렇습니다.
진실화해를 위한 과거사 정리위원회는 어제 긴급 전원위원회를 갖고 참석위원 9명 전원일치의 의견으로 실명 공개 방침을 확정했습니다.
사실 과거사위원회는 관련법에 따라 매년 두차례 대통령과 국회에 보고서를 제출하도록 돼 있는데요.
이번에 논란이 됐던 긴급조치분석 보고서는 2006년 하반기 조사보고서의 참고자료로 포함돼 공개될 예정이었습니다.
문제는 보고서에서 가해자와 피해자의 경우 사생활 보호를 위해 익명 처리된 반면 사건을 담당한 판사이름은 그대로 포함
돼면서 논란이 확대돼 왔습니다.
결국 과거사 위원회는 임시 전원위원회를 통해 공개방침을 최종 확정했는데요.
긴급조치 위반사건은 위법, 부당한 공권력 행사로 인한 인권침해의 대표적 사례인만큼 공개하는 당연하다는 것으로 의견을 정리한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과거사 위원회 관계자의 말을 들어보시겠습니다.
인터뷰 :유한범 / 과거사위원회 대변인
-"위원들 15명 중 9명이 참석해서 모두 일치된 의견으로 공개하기로 결정을 내렸습니다."
(앵커2)
오늘 오후쯤 공개될 것으로 보이는데요. 어떤 내용들이 담겨있나요?
(기자2)
오늘 오후 과거사 위원회는 대통령과 국회에 관련 자료를 제출한 뒤 인터넷과 보도자료를 통해 공개하기로 했습니다.
보고서에는 유신시절 긴급조치 위반과 관련된 재판이 1412건, 재판에 관여한 판사는 492명인 것으로 나타났습니다.
이 가운데는 특히 대법관 4명과 헌법재판관 2명 등 현직 고위 법관 10여명이 포함돼 있습니다.
이 중 한 헌법재판관은 유신헌법 폐지를 주장하며 시위를 주도한 대학생에게 징역 및 자격정지 2년6월을 선고했고, 술에 취해 박정희 당시 대통령을 비방한 목수에게 모 대법관은 징역 1년을 선고했습니다.
긴급조치 판사 가운데는 지법원장 이상 고위 법관을 지낸 뒤 변호사로 개업한 이미 판사도 100여명에 달하는데요.
전직 대법원장이 4명, 대법관이 29명, 헌재소장 1명이 포함돼 있고, 고등법원장을 끝으로 퇴임한 판사도 14명이나 되는 것으로 알려졌습니다.
(앵커3)
공개여부에 대한 시민단체와 학계 등의 반응도 엇갈리고 있죠?
(기자3)
네, 공개방침이 확정되면서 찬반 양론이 첨예하게 엇갈리고 있습니다.
먼저 일부 시민단체와 학자들은 과거 권력의 시녀로 전락했던 사법부의 불행한 역사를 되풀이되지 않도록 반성의 기회로 삼아야 한다며 환영의 뜻을 밝혔습니다.
판결문이 사실상 공개되는만큼 국민의 알 권리 차원에서 명단공개는 지극히 당연하다는 것입니다.
인터뷰 : 임지봉 / 서강대 법대 교수
-"이번 공개는 판사 명단이 아닌 판결 내용의 공개에 초점이 있다. 판결 내용을 주권자인 국민들에게 공개해 국민적 비판의 자료를 제공한다는 의미이다."
하지만 실명공개가 정치적 의도로 악용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도 높습니다.
지금의 잣대로 과거 시대상황을 해석하는 것은 위험할 뿐 아니라 여론몰이식 인적 청산은 오히려 엄청난 부작용을 가져올 수 있다는 주장입니다.
인터뷰 : 장영수 / 고려대 법대 교수
-"긴급조치 위반 사건에 대한 유죄 판결은 성격도 차별화 돼 있다. 보다 적극적으로 가담한 것과 어쩔 수 없이 법을 적용한 경우도 있는데 옥석 구분 없이 획일적으로 취급하는 데 문제가 있다."
(앵커4)
숫자도 숫자지만 전현직 고위 법관이 상당수 포함돼 있는 법조계가 크게 술렁이고 있는데요. 도덕성 논란이 갈수록 커지고 있죠?
(앵커4)
네, 먼저 긴급조치 판결에 참여한 법관들의 전면 공개를 앞두고 법조계는 하루종일 뒤숭숭한 모습입니다.
대법원은 일부 대법관 후보를 제청할 당시 이미 이 문제를 검토한 뒤 이같은 형식의 인적청산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결론을 내렸다고 밝혔지만 도덕성 논란이 확대될까 우려하는 모습입니다.
일부 일선판사들 사이에서는 격앙된 반응도 나오고 있습니다.
사법부는 정해진 법 테두리 안에서 판결할 수밖에 없다며 실정법에 따라 판결했는데도 돌을 던지는 것은 법치주의와 사법부의 존재 의미를 부정하는 것이나 다름없다는 반응입니다.
상당수의 변호사가 포함된 대한변호사협회도 공식논평을 통해 국론 분열을 초래할 위험이 크다며 공개에 대한 반대입장을 분명히 했습니다.
인터뷰 : 대한변협 공보이사
"과거의 진상규명은 필요하지만 역사를 단절시키거나 국론을 분열시켜 미래를 향한 국가 발전을 저해하는 과거사 처리는 국민의 이름으로 자제돼야 한다. 현재의 시각으로 과거를 재단할 경우 판사들의 소신있는 판결이 어려워진다. 이럴경우 사법부의 권위가 심각하게 훼손될 수 있다."
다음달 법원을 떠나는 김진기 대구고법원장은 직접 소회를 밝히기도 했는데요.
김 법원장은 '긴급 조치 내용이 과하다고 생각해 안타까웠지만 실정법에 따라 재판할 수 밖에 없었다'고 말했습니다.
또, '현직 법관들은 대부분 배석이었는데 판결문에 이름을 올린 이유만으로 일률적으로 비판하는 것은 적절치 않다'고 덧붙였습니다.
하지만 이같은 법조계의 우려에도 불구하고 도덕성 논란은 갈수록 확대되고 있습니다.
당시 비양심적 판결을 내렸던 판사들은 승승장구하며 법원 고위직까지 올랐지만
이에 따라 고위 법관들에 대한 도덕성 논란은 이들에 대한 거취 논란으로까지 확대될 가능성도 커 파장이 일파만파 확대될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는 상황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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