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학생 김슬기씨(가명)는 지난해 8월 국가근로장학생으로 일하다, 학교 교직원 A씨에게 부적절한 신체접촉과 성희롱을 당했다.
슬기씨는 A씨에 대한 징계를 요구했지만 학교측의 미온적인 대응으로 극심한 2차 충격에 시달렸다.
이후 경찰수사가 한참 진행됐지만 슬기씨는 학교 시설을 당당하게 이용하는 A씨와 마주쳐야 했다. 학교측이 사건이 발생한 지 4개월이 넘도록 A씨와 슬기 씨를 격리하기 위한 조치를 제대로 취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지난 12월 마주친 성추행 가해자 A씨는 학교 식당에서 당당하게 점심을 먹고 있었다.
더욱 슬기씨를 기막히게 한 것은 학교 내 양성평등상담실이 A씨의 사과를 받아들이라며, 무리하게 ‘사과 동영상’을 재생한 일이다.
직원은 슬기씨가 그토록 떨쳐내고 싶었던 성추행 가해자의 얼굴과 목소리, 몸짓이 생생히 담겨 있는 핸드폰을 들이밀었다. 학내 성폭력 문제에 관해 유일하게 자신을 보호해줄 것이라 생각해 찾아간 양성평등상담실 마저 슬기씨 편이 아니었던 것이다.
국내 대표적 예술대학인 한예종이 학내 성추행 피해 여학생 앞에서 가해자의 사과 동영상을 무리하게 재생하는 등 비상식적인 대처로 빈축을 사고 있다.
A씨는 결국 지난해 12월 강제추행 혐의로 기소됐지만 이 과정에서 보여준 학교 측의 대처는 슬기 씨에게 상처로 남았다.
도움을 줄 것이라 기대했던 학교 측은 피해자 보호는 뒷전이고, 어떻게든 사건을 무마하려고만 했다.
사건 바로 다음날 슬기씨는 양성평등상담실을 찾아 이후 A씨와의 공간 분리와 징계를 요구했지만, 상담실 직원에게서 돌아온 대답은 “현실적으로 생각하라”는 것이었다. 이것도 모자라 해당 직원은 A씨의 사과를 받고 싶지 않다는 슬기 씨에게 다양한 방식으로 사과 내용을 전달하고, 급기야 가해자가 만든 ‘영상편지’까지 재생했다.
상담실 행태에 좌절한 슬기 씨는 8월말 한예종 ‘총장과의 대화’ 게시판에 가해자에 대한 징계없이 사표를 수리하지 말아줄 것을 호소하는 글을 올렸다. 그동안 성폭력 가해 교직원의 사표 제출은 학교의 징계 없이 사건을 조용히 마무리하기 위한 수단으로 악용돼왔기 때문이다.
슬기 씨의 게시글에 김봉렬 총장은 “사표는 제출하지 않는 것으로 얘기를 들었습니다”라는 답글을 달았다.
하지만 김 총장은 올해 3월 A씨의 사표를 제출 이틀만에 수리했다. 본격적인 징계가 시작되기도 전이었다. 게시판 답변 이후 형식적인 조치만으로 시간을 끌다가 A씨의 사표를 수리한 게 김 총장이 보여준 ‘책임 있는 모습’의 전부였던 셈.
학교 측은 매일경제의 취재가 시작되자 지난 5월 말 슬기 씨의 피해 구제를 위해 모인 학생연대와 김 총장 간 대화 자리를 마련했다. 이날 모임 참석했던 학생연대 소속 학생은 “가해자의 사표 철회 후 징계절차 진행은 법적으로 불가능하다는 기대이하의 답변만 들었다”며 “사건이 외부로
한편 학교 측은 피해자에게 사과 동영상을 들이민 일에 대해 “뒤집은 채로 재생했기 때문에 피해 학생이 가해자의 얼굴까지 볼 수는 없었다. 목소리만 들었던 것”이라고 해명했다.
[박창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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