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동호흡기증후군(메르스) 사태가 진정세로 돌아섰다고 판단했던 방역당국이 감시망 밖에서 환자가 잇따라 발견되자 판단을 유보했다. 관리 대상이 아니던 환자가 속속 발생하고 건국대병원, 강동경희대병원, 구리 카이저재활병원 등 격리 병원이 늘어나자 상황 판단을 유보한 것으로 보인다.
방역당국은 건국대병원에 대해 신규 외래·입원 중단 등 부분폐쇄 조치를 단행했다. 또 24일까지로 예정됐던 삼성서울병원 부분폐쇄 조치를 종료기한 없이 연장하기로 했다. 이날 메르스는 추가 사망자 없이 확진자가 4명 늘어나 총 179명이 됐다.
권덕철 중앙메르스대책본부 총괄반장은 24일 정례브리핑에서 “지난 주말까지 대책본부는 (메르스가) 진정세라고 보고 있었지만 현재로서는 (진정세 판단에 대해) 답을 하기 어렵다”고 언급했다. 권 총괄반장은 “강동경희대병원에 환자 돌보미로 갔던 분이 다시 메르스 바이러스에 노출돼 강동성심병원을 방문한 이후 많은 의료기관 등에서 추가 노출이 발생했다”며 “추가적으로 확산이 되느냐 안되느냐 하는 큰 갈림길에 있다”고 밝혔다.
지난 21일 보건당국은 ‘신규 확진자 제로(0)’라는 사실에 고무돼 메르스 발병 후 처음으로 ‘메르스 종식’을 언급할 정도로 낙관적 전망을 보이기도 했다. 그러나 사흘이 지나지 않아 분위기는 180도 바뀌었다. 상황이 이렇게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이번주 초부터였다. 메르스 의심환자와 접촉한 뒤 최대잠복기 2주를 넘겨 확진 판정을 받는 환자들이 잇달아 등장하기 시작했다. 일부 환자들의 경우 보건당국이 감염경로를 제대로 파악하지 못하는 상황도 벌어졌다. 정부의 구멍 뚫린 방역망이 화를 부르고 있다.
23일 확진판정을 받은 174번 환자(75·남)의 경우 지난 4, 8, 9일 삼성서울병원에 내원한 환자다. 이 환자는 슈퍼전파자인 14번 환자(35·남)가 삼성서울병원 응급실에 체류하던 지난달 27~29일에 병원을 방문한 적이 없다. 일각에서 병원 이송요원인 137번 환자와의 접촉 가능성을 제기하기도 했지만 당국은 이를 일축했다. 정은경 질병관리본부 질병예방센터장은 “CC(폐쇄회로)TV 등을 통해 환자 동선을 파악한 결과 174번이 외래나 병원을 방문했던 시간에 137번 환자는 비번이었기에 두 분이 마주친 적이 없다”고 강조했다. 정 센터장은 “174번 환자의 경우 삼성서울병원에서 노출됐을 가능성은 굉장히 높다”며 “나머지 확진환자 등과의 접촉력을 계속 조사 중”이라고만 밝혔다. 사실상 174번 환자가 어디서 어떻게 메르스에 감염됐는지 여부를 파악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건국대병원 같은 병동에서 76번 환자(75·여)와의 접촉으로 감염된 것으로 추정되는 170번 환자(77·남)와 176번 환자(51·남)도 정부 관리 대상 밖에 있던 환자였다. 이들은 76번 환자 역학조사 과정에서 보건당국이 격리범위를 지나치게 좁게 잡아 결국 감시망을 벗어나게 됐다.
정 센터장은 “76번 환자는 병동에 머물렀던 시간이 5시간 정도로, 짧았기에 병동 중심으로 격리범위를 정했는데 그 범위가 상당히 좁았다”며 “격리범위에서 벗어난 170, 176번 환자가 최근 발견돼 격리범위를 6층 전체로 확대하게 된 것”이라고 설명했다. 당국은 뒤늦게 170, 176번 환자 동선을 파악해 건국대병원에 부분폐쇄 조치를 내렸지만 많은 접촉자들이 능동감시 또는 자택격리가 진행 중이라 이 중에서 또 다른 환자가 발생할 가능성도 있다.
178번 환자(29·남)도 마찬가지다. 이 역시 관리 대상에 포함돼지 않았다 확진 판정을 받았다. 이 환자는 메르스 환자가 발생했던 평택박애병원, 평택성모병원에 입원한 환자 가족이다. 증상 발현 후 엿새 동안 병·의원 2곳을 5차례 들르고 일터에도 나간 것으로 확인돼 지역사회 감염도 우려된다. 일단 보건당국은 평택박애, 평택성모 두 병원 중 한 곳에서 감염됐을 것으로 추정하고 있으며 감염경로에 대해 역학조사를 진행하고 있다.
강원도에서도 추가 환자가 발생했다. 179번 환자(54·여)는 강릉의료원 간호사로 96번(42·여), 97번(46·남), 132번(55·남) 환자의 진료에 참여했다가 메르스에 감염됐다. 환자를 접할 당시 개인보호구를 착용했으나 확진판정을 받아 당국이 감염 원인을
이날 현재 국내 메르스 확진자는 모두 179명이며, 이 중 사망 27명, 퇴원 67명을 제외하고 85명이 치료를 받고 있다. 이 가운데 16명은 불안정한 상태다. 격리자는 전날보다 298명 증가해 모두 3103명이 되면서 6일 만에 다시 증가세로 돌아섰다.
[이영욱 기자]
[ⓒ 매일경제 & mk.co.kr,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