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7년간 구슬땀 흘리며 일용직에서 5급 사무관까지 오른 분입니다. 교육 가기 전날까지 자정까지 근무하던 모습이 선한데...”
지난 1일 중국 지린성에서 발생한 버스 추락사고로 8개 시·도 지방공무원 9명의 귀한 목숨이 스러졌다. 또 한국인 여행사 사장과 중국인 기사도 목숨을 잃어 사망자는 모두 11명에 달했다. 사고를 당한 공무원들은 20~30년간 행정 현장에서 서민들과 호흡하며 어려운 일을 도맡아 하던 일선 공무원들로 안타까움을 더하고 있다. 희생된 공무원들은 모두 50~55세로 공직 끝자락에서 사무관 승진 꿈을 이룬지 얼마안돼 참변을 당했다.
이번 사고로 숨진 한금택 인천시 서구청 사무관(55)은 일용직에서 5급 사무관까지 오른 입지전적인 인물로 통했다. 1979년 전남 여수고를 졸업한 그의 첫 직업은 공고문 등을 직접 손으로 쓰는 ‘필경사’였다. 그는 1985년 인천시에서 일용직으로 직장 생활을 하다 1990년 9급 시험에 도전해 당당히 합격했다. 2003년 6급에 오른 뒤 능력을 인정받아 9년만에 사무관으로 승진했다. 지방 공무원 사회에서 사무관 승진(6급->5급)은 평균 12년이 소요돼 올라가기 가장 어려운 단계로 손꼽힌다.
어려운 행정 현장을 앞장서 찾아 2002년 모범공무원표창(인천시장), 2007년 경제자유구역 발전 유공 표창(재정경제부장관) 등을 탔다. 참사 소식을 접한 구청 동료들은 “장기 교육 떠나기 전날까지도 새벽까지 일하던 모습이 선하다”며 “‘(나만) 교육가는게 너무 미안하다’고 말씀하신게 마지막이 됐다”면서 말을 잇지 못했다.
한 사무관 둘째아들은 ‘평소 나라를 위해 할 수 있는 것을 찾아보라’는 아버지 권유로 최근 소방공무원 시험에 합격한 것으로 전해졌다.
남양주시에서 근무하던 김이문 사무관(54)은 후배에게 승진 기회를 주기 위해 장기 교육을 지원했다 변을 당했다. 36세에 늦깎이로 대학에 입학해 만학 열정을 불태운 학구파로 통했다. 그는 2002년 고려대에서 광고홍보학 석사학위를 받았고, 올해에는 추계예술대 문화예술과 박사 꿈을 이루기도 했다.
발군의 업무 능력을 발휘하던 지역 인재들도 아까운 목숨을 잃었다. 정광용 경북도청 사무관(51)은 평소 별명이 ‘아이디어 뱅크’일 정도로 기획력이 뛰어났다. 농림축산식품부 장관상과 국무총리 표창 등을 받았고, 최근까지 굵직한 농촌 개발 국책사업을 추진하는 능력을 발휘했다.
김태홍 부산시 사무관(55)은 꼼꼼하면서도 세심한 스타일로 주위의 칭찬이 자자했다. 한 부산시 동료 사무관은 “김 사무관이 청백봉사상 등을 탈 정도로 모범적인 공직생활을 했다”며 “지난해 사무관으로 발탁 승진해 정말 기뻐했는데 1년여만에 이런 일이 벌어져 가슴이 아프다”고 말했다.
중상을 입은 하덕이 부산시 사무관(53·여) 동료들은 “고3인 딸이 바깥 밥을 잘 못 먹는다고 매일 저녁밥을 갖다줄 정도로 아이에게 정성을 보인 엄마였는데 크게 다쳤다니 너무 안타깝다”고 말했다. 하 사무관은 2003년 국무총리가 주는 모범공무원상을 받았을 만큼 모범 공직자로 전해졌다.
이와 관련해 2일 정종섭 행정자치부 장관은 대국민 사과를 발표했다. 정 장관은 “지방행정연수원 차량 사고 유가족들께 깊은 위로 말씀을 드린다”며 “현장학습 중 안전사고가 발생한 점에 대해 국민 여러분께도 진심으로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린다”고 고개를 숙였다.
정부는 이번 사고로 사망한 공무원에 대해 공무상 상해 사망 규정에 따라 보상한다. 행자부는 버스 추락 사고
김성렬 행자부 지방행정실장은 행정연수원 측 안전사고 예방 매뉴얼이 제대로 작동했는지 묻는 질문에 대해 “안전교육 매뉴얼을 교육한 것으로 알고 있다”고 답했다.
[박동민 기자 / 지홍구 기자 / 김정환 기자 / 우성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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