초중고 학교와 가까운 곳이더라도 학생들에게 악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면 호텔을 세울 수 있도록 허가해야 한다는 법원 판결이 나왔다. 경직적인 규제 적용에 법원이 제동을 건 셈이다. 이번 판결 내용이 대법원에서 확정되면 학교 인근에 호텔을 짓지 못하도록 한 학교보건법 등 규제를 대폭 개선하는 계기가 될 것으로 기대된다.
서울행정법원 행정14부(부장판사 차행전)는 사업자 고 모씨가 서울시중부교육청장에게 제기한 ‘금지행위및 시설해제신청거부처분취소’ 소송에서 원고 승소 판결했다고 16일 밝혔다.
고씨가 관광 호텔(지상 16층, 지하 4층)을 세우려던 장소는 서울시 종로구 이화동의 주택 단지다. 부지는 306.8㎡(약 92.81평) 넓이로 110m 떨어진 곳에 초등학교와 여자중학교가 있다. 고씨는 이 땅에서 왕복 4차로 도로만 건너면 대학로 상권이 형성돼 있어 수익성이 충분하다고 봤다. 더구나 이곳은 창덕궁, 경복궁에서도 2~3㎞ 밖에 떨어져 있지 않아 중국인 관광객이 머물며 관광지에 접근하기 쉽다는 점도 고려했다. 중국인 관광객을 상대로 한 관광호텔을 세우기 좋은 입지 여건을 갖춘 것이다.
이런 고씨의 계획을 가로막은 것은 학교보건법이었다. 이 법은 대한항공이 서울 송현동에 7성급 호텔을 세울 수 없도록 막아 대표적 ‘손톱 밑 가시’로 꼽히는 규제다. 이 법은 학교 경계에서 50m 안을 ‘절대적 정화구역’으로 지정해 호텔 자체를 세울 수 없도록 한다. 다만 50~200m 안에는 서울시 교육감이 판단해 세울 수 있는지 여부를 결정할 수 있다. 고씨가 호텔을 세우려던 부지는 ‘상대적 정화구역’ 안에 위치한다. 고씨는 관광객과 비즈니스맨만 이용하도록 설계했다며 지난해 7월 규제를 풀어달라고 했지만 최종적으로 거부되자 지난 2월 소송을 제기해 이번에 승소했다.
이화동 부지 인근에 위치한 여자중학교는 호텔을 세우면 연쇄적으로 노래방, 술집 등 유흥업소가 들어와 학생에게 악영향을 준다며 반대했지만 재판부는 이를 받아들이지 않았다.
재판부는 “이 부지에 호텔을 신축해 운영한다고 해도 학생들의 학습과 학교 보건에 나쁜 영향을 준다고 보기 어렵다”면서 “이 사건 처분은 달성하려는 공익 목적에 비해 원고에게 지나치게 불이익을 가하는 것이라 위법하다”고 밝혔다. 재판부는 이어 “이 사건 호텔은 외국인 관광객 등을 위한 객실 위주로 설계됐다”면서 “위치나 구조상 유흥주점 등이 들어설 가능성은 크지 않다”고 덧붙였다.
재판부는 또 “부지 앞 도로는 학생들의 주 통학로가 아니고 호텔이 대규모 숙박시설이라고 보기도 어렵다”면서 “이미 부지 뒤편에 모텔이 들어서 있고 호텔과 모텔이 모두 들어선다고 해도 학생들의 학습과 학교보건위생에 악영향을 끼치게 될 것이라고 단정하기 어렵다”고 밝혔다.
다만 이같은 법원 판단에도 대한항공이 송현동에 호텔을 세울 수 있는지는 미지수다. 송현동 부지는 고씨가 호텔을 세우려는 곳과 달리 전체 넓이 40% 가량이
[김규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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